누구보다 공정하게 지방선거 후보를 검증해야 할 언론이 '악마의 편집'으로 선거판을 흐리고 있다. 사진이나 제목으로 독자에게 왜곡된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을 '악마의 편집'이라 한다.
지난 23일 <중앙일보>는 5면에 정몽준·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사진을 나란히 배치했다. 정 후보는 안전모를 쓰고 있고, 박 후보는 손을 흔들며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제목은 <헬멧 쓴 정몽준... 배낭 멘 박원순>이라고 붙였다.
기자는 "22일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정몽준 후보는 강북, 새정치민주연합 박원순 후보는 강남에서 지방선거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했다"며 "정 후보가 성산대교 철골 구조 하부를 돌아보며 다리 안전을 살피고 있고, 배낭을 멘 박 후보는 삼성동에서 시민들에게 인사하고 있다"고 사진을 설명했다.
이 사진 기사만 보면 마치 정 후보가 강북과 안전을 챙길 때, 박 후보는 강남에서 배낭 메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날 박 후보는 사고가 났던 상왕십리역 안점점검에 나서며 공식 선거운동을 시작한 바 있다. 두 후보 모두 '안전'을 챙기는 모습을 보여줬지만 <중앙일보>는 정 후보의 모습만 부각해 보도했다.
바람직한 후보 선택을 방해하는 이 같은 언론의 행태는 26일 발표한 공정선거보도감시단 15차 보고서에 잘 드러나 있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민주언론시민연합과 전국언론노동조합이 6·4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정한 선거보도 행태 감시를 위해 결성한 조직이다.
여당은 선, 야당은 악(?)<동아일보>도 23일 8면에 <서울시장 여야후보 동행 24시>를 게재하며 서울시장 여야후보의 선거운동을 조명했다. 정 후보 동행기사에는 '지하철역 청소하고 강북표심 집중공략'이라 제목을 붙였고, '용산 재개발지구-성산대교 방문, 현장점검 통해 '안전시장' 부각'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박 후보 동행기사의 제목은 '지하철안전 챙기고 강남개발 맞불공약'이라고, 부제는 '강남역서 나홀로 첫 거리유세, 운동화 신고 상인들과 스킨십'이라고 적었다. 제목만 보면 정 후보 기사에서는 '청소-강북-안전'이, 박 후보 기사에서는 '강남-맞불-나홀로'라는 단어가 눈에 띈다. 전자는 약자를 위한다는 이미지가, 후자는 독불장군처럼 강하고 독선적인 이미지가 풍기는 말이다.
단어에서 연상되는 뉘앙스로 숨은 의도를 전한 기사는 <조선일보>에도 있다. <조선일보>의 23일자 <여 "아픔 딛고 희망 말하자" 야 "슬픔과 분노, 표로 심판"> 기사 제목을 보면, 은연중에 여당에는 치유라는 부드러운 느낌을 야당에는 분노와 심판의 거친 느낌을 덧씌웠다.
정몽준의 근거 없는 발언까지 보도한 <뉴스데스크>
<MBC>는 정몽준 후보의 흑색선전도 아무런 여과없이 보도했다. 지난 21일 <공식 선거운동 D-1 수도권 전운>기사에서 정 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 출범 소식을 전한 뒤, 정 후보의 발언을 인용했다. 정 후보는"박원순 후보는 무능하고 위험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국가관에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데…"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 후보의 의혹제기에 대한 근거는 언급되지 않았다. 이후 인용된 박원순 후보나 남경필 새누리당 경기도지사 후보, 김진표 새정치민주연합 경기도지사 후보의 발언은 모두 공약이나 정책과 관련된 내용이었다.
정 후보의 같은 발언은 21일 <TV조선> <선거팀 규모 다른 이유는>에서도 인용됐다. 기자가 "새누리당 정 후보는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도 늦추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한 후, 정 후보의 "박원순 후보는 무능하고 위험한 분이라고 생각합니다"라는 발언 일부가 전파를 탔다.
<MBC>는 또 22일 <선거운동 개시 '안전' 경쟁>에서도 정 후보의 "(박원순 후보가 뉴타운을) 이렇게 방치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유리하다고 판단해서 이렇게 방치한다면 그것은 저는 범죄라고 생각을 해요"라는 발언 내용을 인용했다. 뉴타운이 방치되고 있는지 아닌지 사실이 언급되지 않는 상황에서 박 후보의 시정결과가 '범죄'라 치부하는 정 후보의 주장을 그대로 보도한 것이다.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지나치게 부정적인 발언을 그대로 옮기면, 그 발언 대상이 부정적인 이미지를 얻기 쉽고, 결과적으로 한 후보의 편을 들어주는 불공정 보도가 된다"고 지적했다.
종편, 안대희 국무총리 내정자 향해 칭찬 일색한편, 22일 청와대는 안대희 전 대법관을 국무총리로 내정했다고 밝혔다. 이후, 종편채널은 안대희 내정자에 대한 칭찬 일색의 태도를 유지했다.
같은 날 <채널A>의 저녁뉴스 꼭지기사 <안대희 국모총리 후보자 기자회견 … 평가는?>에는 정준길 변호사가 출연했다. 정준길 변호사는 안대희 내정자를 두고 '대인춘풍 지기추상'과 어울리는 분이라면서 "일에 대해선 아주 엄격한 분이시지만 후배들과 함께 어울려 돼지껍데기에 소주 한 잔 하시는 걸 좋아하신다"고 덧붙였다.
이어 정 변호사는 "아들이 랩을 좋아하니까 유행하던 모든 랩노래를 익혀 아들과 같이 노래방에 가시는 분"이라고 말한 뒤, "딸은 '우리 아빠가 홍대 와서 물을 흐린다, 홍대 거리의 물을 버려놓는 미꾸라지다'라며 '홍미'라고 부른다"고 밝혔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을 안 내정자의 칭찬에 이용한 것이다.
<TV조선>도 23일 <돌아온 저격수다>에서 안대희 내정자 띄우기를 이어갔다. 고정 패널인 임재민씨는 "학교를 다니면서 시험 삼아 봤는데 사법고시에 붙었다고 한다"라며 "(안 내정자가) 똑똑하고 대쪽같은 이미지가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수긍할 수 있는 카드"라고 말했다.
함께 출연한 신혜식 <독립신문> 대표도 "지금까지 이미지가 국민검사, 소년검사이고 재산도 별로 많지 않은 것 같다"며 "소신적 이미지와 이런(청렴한) 부분이 겹치면서 만약 잘 된다면 차기 대선후보의 잠룡으로 기대할 부분이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와 달리 안 내정자는 대법관 퇴임 후, 5개월간 16억 원의 수입을 올리며 변호사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전관예우', '과도한 수임비' 등 문제가 일자 안 내정자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변호사 활동으로 늘어난 11억 원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밖에도 공정선거보도감시단은 이번 15차 보고서에서 뉴스에 보도되지 않는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양산 분회장의 죽음과 시신 탈취 사건에 대해 지적했다.
* 공정선거보도감시단 15차 보고서 전문 보기1) '헬멧 쓴 정몽준, 배낭 멘 박원순'…조중동의 '악마의 편집'2) '인신공격성 발언'까지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가3) 채널A와 TV조선의 찜찜한 보도들4) 세월호 관련 또 '막말'한 대변인, 청와대의 '의중'인가?5) 언론은 삼성의 '또 하나의 가족'이다6) 종편들의 '안대희 구애'…안대희가 구세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