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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들에 따르면, 지난 15일 SBS는 오는 6월 13일 개막하는 '브라질 월드컵' 경기 중계방송 관련 서울시내 한 SO(System Operator, 종합유선 방송사업자)에 공문을 보내 추가 협상을 요구했다. SO와 SBS가 이미 체결한 월 약정 송신료 외에 별도의 송신료를 요구한 것이다. KBS와 MBC도 최근 SBS와 마찬가지로 SO 등에 월드컵 중계 프로그램 재전송에 대한 협상 공문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방송법시행령에 의하면 올림픽이나 월드컵 같은 국가 주요 이벤트의 경우 국민 전체가구 수의 90% 이상이 시청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도록 명시되어 있다. 이 시행령은 과거 지상파 방송 사업자들이 스포츠 마케팅 회사들의 중계권 독점을 견제하기 위해 만든 규정이다.

전체 가구 중 현재 순수 지상파방송만 이용하는 비율이 6.8% 수준이기 때문에 유선방송, 위성TV 등 유료방송 시스템을 통해 재전송이 되지 않는다면 보편적 시청권을 충족시킬 수 없다. 때문에 SO의 입장에서는 협상 자체가 부당하다고 판단할 수 있고 SBS 입장에서는 지상파 전파 커버리지(매체도달범위)를 근거로 제시하면서 SO에 대한 협상요구를 강권할 수 있다.

만약 이 협상이 결렬된다면 유선방송을 통해 지상파 방송을 수신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월드컵을 시청할 수 없게 된다. 이와관련 <미디어스>는 27일 '지상파, 월드컵중계권 '갑질'로 광고손실 만회하겠다?'를 통해 "IPTV사업자들은 금액을 조정하는 수준에서 협상을 벌이고 있고, 케이블협회는 한푼도 줄 수 없다는 입장이다"라며 "최악의 경우, 일부 시청자들이 월드컵 중계를 볼 수 없는 가능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무엇으로 사는가... SO의 과거와 현재

방송법에 의하면 종합유선 방송사업은 "종합유선방송국(다채널방송을 행하기 위한 유선방송국설비와 그 종사자의 총체를 말한다)을 관리·운영하며 전송·선로설비를 이용하여 방송을 행하는 사업"을 말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유선'이다.

지상파 방송사업은 '지상의 무선국'을 관리·운영하며 이를 이용하여 방송을 행하는 사업이고 위성방송사업은 '인공위성의 무선설비'를 소유 또는 임차하여 무선국을 관리·운영하며 이를 이용하여 방송을 행하는 사업인 것처럼, 종합유선 방송사업은 '유선=케이블'을 이용한 방송사업을 말한다.

즉, 지상파 방송이나 위성방송에서 보내주는 방송콘텐츠를 변경하지 않고 개별 시청자에게 보내주는 역할을 하는 사업자를 의미한다. 아래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지상파 방송을 정상적으로 수신하기 힘든 난시청 지역의 시청자들에게 유선을 이용해 방송콘텐츠를 단순 중계하는 역할을 수행해 왔다. 케이블을 개별 가구까지 연결하고 관리해주는 대가로 몇 천 원의 이용료를 받아 운영해왔다.
ⓒ 한국케이블방송협회

서울처럼 산지가 많은 도시에서는 SO의 역할이 중요하다. 지상파가 난시청 지역 곳곳마다 중계기를 설치하기 힘든 상황에서 SO는 일종의 공적 서비스를 대신 수행하는 곳이었다. 적어도 디지털 방송 도입과 인터넷의 발달 이전까지 지상파와 SO는 악어와 악어새처럼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었다.

물론 늘 평화로운 것은 아니었다. 일부 SO가 지상파 콘텐츠를 불법으로 녹화, 재편집한 프로그램을 송신하는 경우도 있었고 방송 콘텐츠가 아닌 일반 비디오 프로그램을 불법으로 송출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초기에는 이런 불법 콘텐츠 유통에 대한 사회적 인식도 부족했고 불법 콘텐츠 유통으로 인해 방송사에 미치는 경제적 손실 또한 미미한 편이라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지 않았다.

1991년 12월 종합유선방송법이 제정되면서 디지털 방송 환경 하에서 SO는 기존 지상파 및 위성 방송과 동등한 방송 주체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법의 목적은 "종합유선방송의 건전한 육성·발전과 이용자의 편의를 도모함으로써 국민문화의 향상과 공공복리의 증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로 되어 있다. 종합유선방송법은 최종적으로 2000년 초에 폐지되었지만, 존속하는 동안 지상파 방송과는 다른 법 규정을 받았다.

지상파방송이 방송법에 의해 규정 받는 것에 비하면 SO의 경우는 좀 특별하다고 볼 수 있었다. 방송법의 목적이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보장하고 방송의 공적 책임을 높임으로써 시청자의 권익보호와 민주적 여론형성 및 국민문화의 향상" 임을 생각하면 같은 방송이라도 종합유선방송법의 목적은 특별한 측면이 있다. 즉, SO의 경우 공공성과 상업성 두 측면을 고려한 법체제 하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처음엔 방송의 관점에서 SO에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방송관련 부대 사업자라는 인식이 강했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다. 2000년 1월 이후 기존의 방송법, 종합유선방송법, 유선방송관리법, 한국방송공사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방송법이 제정되면서 SO는 지상파, 위성, IPTV 등 다른 매체들과 디지털 방송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게 된다.

악어와 악어새에서 경쟁관계로

 서울처럼 산지가 많은 도시에서는 SO의 역할이 중요하다.
서울처럼 산지가 많은 도시에서는 SO의 역할이 중요하다. ⓒ SXC
SO가 종합유선방송이 되면서 기존 공영방송의 프레임이 조금씩 재구성되기 시작했다. SO는 다양한 PP(Program provider, 방송채널사용사업자 또는 프로그램 공급사업자)로부터 방송콘텐츠를 공급받아 전송하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지상파 재전송과 콘텐츠 비즈니스를 동시에 하기 시작했다.

지상파 재전송을 통해 지상파 수신자들을 묶어 놓을 수 있고 다양한 PP들을 확보, 송출함으로써 여러 장르의 방송 콘텐츠를 이용해 가입자를 늘려갈 수 있게 된다. 이런 환경 변화와 디지털 방송의 도입으로 SO는 오퍼레이터(Operator)에서 종합유선방송국으로 업그레이드됐고 지상파의 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지상파 주연의 연극 무대에서 엑스트라 역할을 하던 처지에서 이제 당당히 주연 자리를 넘보게 되었다.

지상파로서는 새로운 주인공의 등장이 반가울 리 없다. 여태껏 주연을 위한 엑스트라로 만족하던 영세업자들이 아니던가. 이후 지상파의 본격적인 반격이 시작됐다. 지상파들은 자신들의 콘텐츠를 재전송하지 말거나 사용료를 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기 시작했다. 지상파 방송을 위해 제작된 콘텐츠를 사용해서 수익을 올리면 그 수익의 일부는 자신들에게 귀속되어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지상파 방송이 전통적 의미의 방송에서 벗어나 콘텐츠 제작, 유통업체의 관점에서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지상파의 주장을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합리적 투자에 대한 정당한 요구라고 말할 수 있다. 한 줄로 요약하면 "남의 물건을 도적질하지 마라"다. 이 주장은 시장원리에 따르면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지상파 방송국용 콘텐츠 제작을 위해서는 막대한 비용이 들어간다. 국가에서 지원을 받거나 TV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나 EBS와 달리 SBS나 MBC는 그 제작비용을 광고수익으로 충당하기 때문에 투자금액 이상을 회수하여야 한다.

디지털 영상 제작 시스템은 하나의 콘텐츠로 여러 방식의 활용을 가능하게 할 수 있어 처음에는 방송용으로 사용되고 이후 해외 시장용, VOD(Video on demand, 주문자 영상) 서비스용, DVD용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된다. 최초 콘텐츠를 기획, 제작할 때 여러 시장을 고려해 투자 정도를 결정하기 때문에 합리적 투자와 그에 따른 예측 가능성은 중요한 요소다.

이런 합리적 판단이 SO의 무단 사용으로 어려움에 처해 있다는 주장은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더라도 동의할 수 있다. 이런 지상파의 주장에 대해 SO가 내세우는 것은 원론적 접근이다. 지상파 방송은 시장논리에 의해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공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된다는 것이다. 케이블TV방송협회에서 만든 자료를 보자.

○ 원칙적으로 지상파방송은 무료 보편적 서비스 대상
- 국내 방송체계에서 국민 자산인 주파수를 이용하는 모든 지상파방송에 공공성을 강조
- KBS : 방송법 상,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 (방송법 제43조, 제44조, 제56조)
- MBC : 방문진법에 의해 운영, 경영은 광고수익에 의존하는 공영방송
※ MBC 주주구성 : 방송문화진흥회 (70%), 정수장학회(30%) (MBC, 2012)
- SBS : KBS, MBC와 다를 바 없는 사회적 책무와 역할을 부여받고 실제 방송 정책 측면에서 공영방송과 동등한 대우를 받음
출처 : 지상파방송 의무재송신 제도개선 필요성 및 개선방안. 한국케이블TV방송협회. 2013.9

KBS나 MBC는 물론 실제 방송 정책 측면에서 공영방송과 동등한 대우를 받고 있는 SBS의 현실을 감안하면 지상파 방송은 국민 누구나 누려야 할 보편적 서비스 대상이라는 주장이다. 일반 기업처럼 적절한 영업행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부도가 나서 파산이 되는 경우와 다르다는 이야기다. 공영방송은 국가의 필요성에 의하여 존립하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 관계자들에게 대국민 서비스를 위한 충실한 공무를 수행할 의무가 있다는 것 또한 내포되어 있다.

또 KBS와 MBC 사장 임명은 사실상 국가에 의해 주도된다. 국가에 의해 주파수 특혜를 받고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지상파 방송에 대한 시청은 국민의 보편적 권리다. 따라서 현재 KBS1, EBS에 국한되어 있는 지상파 의무 재전송을 KBS2, MBC 까지 확대하라는 것이 SO의 주장이다.

중요한 것은 방송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

양측의 주장은 나름 설득력이 있다. 향후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디지털 시대 미디어의 본질과 관련해 생각해 보면 주요한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SO는 지상파 방송의 개념을 공공성에서 찾으려 하고 있고 당사자인 지상파 방송의 경우에는 공공성은 최소로 하고 시장원리에 기초해 자신들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서로 다른 주장의 배경에는 달라진 방송환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방송의 개념은 이전 지상파 위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방송보다는 미디어라는 용어가 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고 최근에는 SNS 등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정보가 특정 기관에 의해 독점, 유통되는 시대는 끝나가고 있고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정보에 접근할 수 있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방송의 개념은 이전 지상파 위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디지털 시대에 들어와서 방송의 개념은 이전 지상파 위주의 그것과는 질적으로 달라졌다. ⓒ SXC

최신 뉴스를 전 국민에게 신속하게 보내 누구나 정보소외 또는 정보격차에서 벗어나게 하려는 정보의 보편적 복지를 더 이상 지상파에 의해 수행할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방송의 공공성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사안이며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고 방송법에 의해 보호를 받고 있는 이상 보편적 서비스는 계속 되어야 한다'는 주장과 '이제는 모두가 같은 환경이니 공정하게 경쟁해야 한다'는 주장 사이에는 아직 큰 강이 있다.

이러한 갈등은 방송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관련 있다. 유럽 국가들은 대다수가 공영방송체제이고 위성이나 유선방송 등이 지상파를 재전송할 경우 대부분 무료다. 반면 상업방송체계인 미국은 우리나라처럼 재전송료를 받고 있다. 방송의 공공성과 상업성은 둘 다 포기할 수 없는 중요 요소다. 미국은 상업방송체계를 취하고 있지만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민주적이다.

상업성이 공공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니다. 또 공공성이 꼭 민주적인 것도 아니다. 정보가 막힘없이 흐를 수 있는 사회라면 공공성과 상업성은 갈등하지 않고 흐르겠지만, 만약 정부나 자본의 견제를 받는다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칠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방송을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다. SO와 지상파의 갈등은 우리나라 방송체계가 앞으로 유럽식의 공영방송체계가 될지, 미국식의 상업방송체계가 될지 또는 제3의 가능성으로 전개될지 예측 안 되는 상황에서 나온 논쟁적 이슈다.


#지상파 재전송#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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