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학생은 반년 사이 무관심에서 반성으로, 반성에서 저항으로 그 흐름을 함께하고 있다. 작년 12월 '안녕들하십니까'라는 물음이 그러했고, 세월호 참사의 화두인 '가만히 있으라'가 현재 저항으로 이어지고 있다. 공생이 힘든 사회 분위기, 가만히 있으면 정해졌던 길, 그 길을 가만히 걸었던 우리들에 대한 반성과 저항이 한데 어우러지니 사회에 크나큰 화두가 던져졌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이 나라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세월호 참사는 대한민국의 민낯이었다. 돈이 생명보다 중요한 사회, 추모마저 불법집회로 만드는 공권력, 정권의 앞잡이로 전락한 언론.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는 선내방송까지. 2년 동안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왔던 용혜인 학생에게 충격이었다.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제안한 '가만히 있으라' 침묵행진은 지난달 30일(수) 250명 참여를 기점으로 대한민국에서 세월호 참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화두가 됐다. 세월호 참사를 절대 잊지 말자며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용혜인 학생을 23일(금) 경희대학교에서 만났다.
용씨는 세월호가 침몰했을 무렵 '전원구조' 됐다는 오보에 연이은 자극적인 보도, 과장된 구조상황, 탄로 난 거짓말을 지켜보면서 무기력하고 괴로웠다고 한다. 심지어 당시 뉴스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는 침몰 현장을 뉴스 뒤 배경으로 하여 생중계하고 있었다. 잘못돼도 한참 잘못되었다는 생각을 하던 도중 용씨는 '가만히 있으라'는 선체 방송을 뉴스에서 들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 세월호에서 수많은 학생을 죽게 만든 말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용인됨과 동시에 사회적 명령처럼 생각하고 있던 말이기도 하잖아요. 단순히 세월호의 이야기가 아닌 한국사회가 가지고 있는 함의라고 생각했어요." 용씨는 우리 사회의 정해진 길을 이야기했다. 어린 시절부터 수능공부만 하다가 대학가면 취업준비, 취업 후에는 취집이라는 말까지 '삶'을 요구받는 우리사회에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은 낯설지 않다는 것이다. 이어 용씨는 세월호 사고를 사회적 시스템 문제로 빗대었다.
세월호 사건 초반에 선장이야기로 가득할 때, 적은 임금으로 1년 이하의 계약직으로 운영되는 선장, 선원의 고용계약 시스템을 먼저 봤다. 여객선 제한 선령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리면서 안전 보강한 것은 없는 현실, 54만 원의 안전교육비와 대비되는 6000만원의 접대비를 보면서 사고의 원인을 개인의 문제로 끝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그에게 맴돌았다. 비용 절감이 기업의 미덕, 경영자의 미덕이지만, 그 비용이 국민의 생명이라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크게 실감한 모습이었다.
그는 2년 동안 공무원 시험 준비로 휴학하다가 이번 학기에 복학해 4학년 1학기로 재학 중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현실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낮은 학점으로 인해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었다. 그러던 중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고 관심을 갖던 지난달 19일(토) 분노할 만한 사건이 터졌다.
"실종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려고 진도로 걸어갔었잖아요. 근데 그때 경찰들이 사고 현장에서 가장 '유능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죠. 경찰버스를 동원해서 실종자 가족들을 막아서고···. 그때 너무 충격 받았어요."용씨는 그 길로 가만히 있지 말아야 한다는 메시지를 한국 사회에 던지겠다고 생각하며 3-4명의 친구들과 준비했다.
그렇게 지난달 29일(화) 청와대 게시판에 침묵시위를 하자고 글을 쓰며 다음날인 30일(수) 모이자고 제안했다. 30명 정도 모이면 많이 모인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이날 침묵행진에 250명 가량이 참여했다.
"사회적 명령에 대한 화두를 던졌을 뿐인데, 이 같은 반응에 깜짝 놀랐어요. 침묵행진의 의미는 간단한데, 우선 추모의 의미와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가장 잘 보여주고 싶었어요."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침묵행진은 지난달 29일(수)부터 지난 24일(토)까지 매주 200여 명씩 꾸준히 함께하며 잊지 않겠다는 움직임을 이어가고 있다.
34년 만에 반복된 5·18의 기억매주 토요일마다 침묵행진이 열리지만, 지난주는 5.18을 기념하고자 예외적으로 일요일인 18일에 열렸다. 추모행진은 집회신고가 필요 없지만 경찰의 일정부분을 협조하려고 동화면세점 앞은 집회신고를 했다. 이후 청계 광장에서 공식 행진을 마무리 짓고, 용씨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전하러 청와대 앞으로 행진했다. 추모집회에 평화적 시위로 일관한 시위대를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그 날 함께 행진한 100여 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됐다.
연행 과정부터 유치장에서의 상황을 생각하더니 어이가 없는 듯 실소를 머금었다. 사지가 다 잡힌 연행과정에서 팔목을 아프게 꺾기에 꺾지 말라고 했더니 경찰이 웃으면서 더 꺾었다고 한다. 지금도 욱씬거린다며 팔목을 내비쳤다.
"땀을 흘린 상태에서 연행되니 연행된 날부터 씻게 해달라고 부탁했으나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틀 동안 못 씻게 했어요. 사식 또한 저희가 돈 내고 먹으려고 차감한 것을 적었는데 경찰이 저희에게 말 한 마디 없이 취소시키기도 하고···."조사과정에서는 유도심문이라 볼 수 있는 장면까지 등장했다. 알바노조 위원장이랑 어떻게 아는 사이며, 유령단체 '세월호 추모 청년 모임'의 회원인지 물어보는 등 사건과 상관없는 질문을 계속해서 했고 그는 진술거부 했다. 이에 형사가 '진술 거부한다는 것은 물어본 질문을 인정하는 것이냐'고 재 질의하며 압박하기도 했다.
"연행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마음에서 참여한 개인으로 보지 않고 단체나 조직으로 묶으려 한 것으로 보였어요. 심지어 18일 아침에 통화한 기자들이 '세월호 추모 청년 모임'을 언급하는 등 의심가는 징후가 있습니다."
공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시민들에게 있어2박 3일 동안 유치장에 있다가 연행된 사람 중 가장 늦게 풀려난 용씨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존재하지만 공권력은 두렵지 않다고 말했다. 공개적으로 채증을 당하기도 하고 침묵행진을 하면 항상 사복경찰이 따라붙으며, 경찰이 '당신은 불법집회를 하고 있다'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대꾸조차 안 한다.
"공권력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은 시민들에게 있다고 생각해요. 공권력이 시민들의 몸짓, 눈치를 봐야 하는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않으니 권력자들이 공권력을 움직일 수 있죠. 사복경찰이 유가족을 미행하다가 걸리고, 시위 곳곳에 사복경찰들이 기자인 척, 행진 참여자인 척 하면서 따라다니는 등, 공권력이 국민을 통제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어요."경찰에 대해서도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한국의 집회는 허가제가 아닌 이상 신고집회와 미신고집회로 나뉜다. 폭력과 공공의 안전질서를 위반하지 않는 한 미신고집회도 허용되며, 불법집회의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인데 현장에서 경찰이 불법집회라고 하면 그렇게 돼 버리는 자의적 법집행을 꼬집었다. 주말 동안 200여 명을 연행 하지 않는 선에서 해산시킬 수도 있었기에 말이다.
"경찰들이 윗선에서 지시하는 것을 따라야 하는 입장인 점을 이해하지만, 그럼에도 역사적 책임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역사 속에서 스스로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어야 하며, 후대에 어떻게 평가받을지 생각한다면 행동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16일(금) 대통령은 유가족대표를 만나 사과한 뒤 이틀 동안 200여 명을 연행했다. 다음 날 대통령은 연출된 눈물을 흘리며 대국민담화를 발표했다. 그는 너무나 큰 이 간극을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유치장 안에서 대담화 소식을 들은 용씨는 제대로 된 답변을 받았다고 한다. 그 답변은 사과가 아닌 200명에 이르는 시민들의 연행이었다며, 대통령에게 가만히 있지 않겠다고 세월호를 절대 잊지 않겠다고 다짐으로 남아있단다.
세월호, 해프닝이 아닌 역사지방선거와 월드컵이 다가오고 있는 한편, 세월호 사건이 채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지금, 관심은 점점 떨어져가고 있다. '생계비 지원이나 추모 공원 같은 거 다 필요 없다. 우리 애가 어떻게 죽었는지 밝히는 게 제일 중요하다'는 유가족의 말을 용씨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침묵행진은 계속해서 해나가며, 세월호가 잊혀지지 않도록 어떻게 가만히 있지 않을까에 대해서 구체화시킬 계획이라고 한다.
"유가족들의 요구는 대단한 것이 아니에요. 돈도, 추모 공원도 아니에요. 진상조사를 철저하게 해달라는 것, 그리고 잊혀지는 것이 두렵다는 거예요. 내 자식이 죽어서 국민들을 슬프게 해드려서 너무 죄송하다고 말씀하세요. 국가시스템에 의해 자식을 잃은 분이 내 자식이 죽어 국민들께 슬프게 해서 죄송하다고 하는 게 말이 안 되더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잊혀지는게 가장 두렵다고 말씀하시거든요. 절대 잊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만히 있으라'를 가지고 정치적이다는 말부터 선동하지 말라는 이야기도 종종 들리곤 한다. 용씨는 "선동하지 말라는 선동이 가장 선동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세월호를 잊지 말고 기억하자는 저희의 말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효과적인 선동이 아니라는 거죠"라고 말한다. 그러한 프레임에 얽매이지 않은 채 오히려 한 발자국 더 나아갔다. 세월호는 해프닝이 아닌 역사로 기억되어야 한다고.
"광주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군부정권이 다시 시민을 학살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거잖아요. 역사적 교훈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전제라고 생각해요. 광주가 역사가 될 수 있었던 것 역시 그 당시를 기억했던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죠. 세월호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4월 16일 세월호를 기억하는 것, 그래서 해프닝이 아닌 역사가 되게 만드는 것, 그것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대학생의 과제가 아닐까요." 덧붙이는 글 | 가톨릭대학교 학보사 배도현 기자입니다. 비록 27일(화) 발행된 신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