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복을 입고 앉아 있었다. 햇볕이 쨍쨍 내려쬐는 도로 위에서 내내 머리를 떨구고만 있었다. 간혹 지나가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놓인 피켓을 읽어보기도 했다.
어떤 사람은 음료수를 사들고 오기도 했다. 손을 꼭 잡고 어깨를 다독여주며 "힘 내세요"라고 말을 건네는 시민도 있었다. 그래도 어머니는 고개를 숙인 채 인사만 건네고 있었다.
30일 오후 경남 창원 정우상가 앞 상황이다. 한 어머니가 사흘째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펼침막에는 "고영진 교육감님, 진주외고 폭행사고로 죽은 내 아이는 왜! 돌보지 않으셨나요"라고 써놓았다.
지난 4월 11일 진주외국어고등학교(사립) 기숙사에서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던 아들의 어머니다. 어머니는 지난 28일 오전부터 이곳에서 '농성'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의 49재(5월 29일)를 맞아 시민들한테 호소하기 위해 거리에 나선 것이다.
<오마이뉴스>는 지난 28일 오후 어머니의 농성을 보도했다.(관련기사 :
"고영진 교육감님, 죽은 내 아이 왜 돌보지 않으셨나요") 당시 이곳을 지나가던 한 시민이 제보했던 것이다. 그 뒤 몇몇 언론들이 보도하면서, 어머니의 '소복농성'은 알려졌다. 어머니는 언론에도 알리지 않고 거리에 나섰던 것이다.
진주외고에서는 3월 31일과 4월 11일 학교폭력으로 학생 2명이 사망했다. 이 학교는 고영진 경남도교육감의 선친이 설립했고, 고 교육감의 부인이 1993년부터 이사장으로 있다가 2차 학교폭력 사망사건 뒤 사퇴했다.
고영진 교육감이 이번 경남도교육감 선거에 출마하자 진주여성회 등 여성단체들은 후보 사퇴와 함께 사과를 요구했다. 진주여성회는 기자회견 때 고영진 교육감 부인의 선거운동 장면이 담긴 사진을 사용했는데, 고 교육감 부인은 명예훼손으로 고소했던 것이다.
2차 학교폭력 사망학생의 어머니와 작은아버지는 지난 23일 경남도교육청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영진 경남도교육감과 부인은 우리 아들을 두 번 죽이지 말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그리고 어머니는 28일부터 이곳에서 '소복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학교폭력으로 사망한 학생은 집안에서 막내였다. 아버지(52), 어머니(43), 누나 둘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는 진주에 살다가 고성으로 이사해 지금까지 지내고 있다. 어머니가 '소복 농성'하는 옆에는 아버지가 지키고 있다. 다음은 아버지와 나눈 대화 내용이다.
학교폭력 2명 사망... 고영진 교육감 부인이 당시 이사장
- 이렇게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인데 어떻게 해서 하게 되었는지?"아들이 죽은 것은 경찰 수사나 언론 보도와 다른 점들이 있다. 아들이 죽고 나자 처음에는 경찰이 제대로 수사를 할 것이라 믿었고, 언론에도 어떻게 보도가 나갔는지 몰랐다. 장례를 치르고 나서 보니까 잘못된 게 있어, 기자회견을 열어 호소하고 거리로 나왔다. 아들은 분명히 학교폭력으로 죽었는데 '사고사'로 다루는 것 같아 진실을 밝혀야겠다."
- 진주외고 학교폭력 사망사건 뒤 교육부에서도 특별조사를 했는데."특별조사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는데도 아직 발표를 하지 않고 있다. 며칠 전에 교육부에 전화를 해서, 왜 발표를 하지 않느냐고 물어 보았더니 6월 초에 한다고 하더라. 선거 때문에 발표를 미룬다는 생각이 든다."
- 교육부가 유가족들을 조사한 적이 있는지."없다. 피해자 유족의 말을 한마디도 들어보지 않았다. 연락조차 없었다."
- 유가족들은 학교 관계자들의 처벌을 바라는 것 같던데."분명히 아들은 학교에서 일어난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다. 그렇다면 학교가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은 학생들만 죄를 물어 처벌을 한 것이다. 이사장과 교장, 교감 등 학교 관계자들은 처벌을 받지 않았다. 이사장은 사퇴하면 그만이고, 교장은 직무정지 되면 그만인가."
- 학교 책임이라면?"학교는 학생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학생이 학교폭력으로 사망했다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다. 아이가 고통 속에 죽어가는데, 학교 관계자들은 정당한 조치를 했는지도 의문이다. 먼저 이사장에 대해 책임을 물어 고발해 놓았다."
- 거리에서 농성할 때 시민 반응은?"안타깝게 여기는 것 같다. 사건의 진실을 모르고 있다가 이제는 알겠다는 반응을 보인다. 진주외고 학교폭력 사망사건이 터지고 나서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가 워낙 큰 사건이다 보니 학교폭력 사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고 본다."
- 가해 학생들의 재판이 있었다고 하던데."창원지방법원 진주지원에서 첫 재판이 29일에 있었다. 아이의 작은아버지가 가서 지켜보았다. 가해자 측은 국선변호사가 선임된 모양인데, 부모들은 사설 변호사를 통해 재판을 할 모양이다. 그래서 재판은 6월로 연기된 것으로 안다."
"아들은 분명 학교폭력으로 사망... 학교 관계자는 처벌 안 받아"
- 고영진 교육감 후보 측에서는 펼침막에 고 후보 이름을 적어 놓은 것이 공직선거법 위반이라 주장하던데."고영진 후보 측에서 그런 주장을 펴고 있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고 있다. 28일부터 이곳에 있는데 고영진 교육감 측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다. 우리는 선거에 영향을 주려고 이렇게 하는 게 아니다. 학교에서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 고영진 교육감이 책임이 있다는 것을 말하려고 한다. 그리고 고영진 후보의 부인이 여성단체를 고소했다는 소식을 들으니, 그 고소는 우리 아이한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참을 수 없었고, 그래서 집사람과 함께 여기로 가자고 했던 것이다."
- 사망한 뒤 장례식장에 고영진 교육감이 조문을 갔다고 하던데."조문을 왔다. 미안하다고 하더라. 그때는 형식적으로 조문을 왔다 갔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나는 '아이 일로 인해 누구 한 사람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그랬더니 '알았다'고 하더라. 잠깐 앉아 있다가 갔다."
- 아들의 학교폭력 사망에 있어 잘못 알려졌다는 말은?"아이의 스마트폰 카톡 내용을 보았는데, 그 일이 있기 전부터 지속적으로 폭력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괴롭힘을 계속 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학교 측은 제대로 (대처)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생각마저 든다. 그리고 아이는 '사고사'가 아니라 학교폭력을 당한 것이다."
- 일부에서는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고 한다는 말도 하는데."선거에 영향 준다는 말은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는 선거에는 관심이 없다."
- 진주외고 교사와 학교운영위원회, 동문들은 학교 정상화를 호소하고 있는데."그런 주장을 하는 동문들은 일부라 본다. 동창회 사람도 만나보았는데, 우리가 만나본 동문들은 가만두면 안 된다고 하더라. 사실이 제대로 알려지고, 학교 관계자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일 때 또 다른 학교폭력을 방지할 수 있다고 본다."
- 교육감 선거에 나선 후보들은 다녀갔는지."권정호, 박종훈 후보가 다녀갔다. 교육감이 될지 안 될지 모르지만 와서는 이야기를 들어보고 갔다. 선거와 관계 없이 순수한 마음에서 온 것이라 본다."
아버지는 "학교폭력에 대해 제대로 밝혀내고 관계자들이 책임질 때 또 다른 학교폭력을 막을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부모들은 31일까지 이곳에서 '소복농성'을 하고, 그 뒤에는 김해 등 다른 지역으로 옮겨 계속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