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곽우신, 손지은, 조혜지, 송규호 기자정리: 선대식 기자서울시교육감 선거가 선거일을 이틀 앞두고 요동치고 있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서 '깜깜이 선거'로 치러질 위기였지만, 고승덕 후보의 딸이 "아버지는 교육감 자격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고승덕 후보의 딸인 캔디 고씨는 지난 3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자신의 아버지를 두고 "자신의 피붙이도 가르칠 뜻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한 도시의 교육 지도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라고 비판했다. 고 후보는 여기에 "부덕의 소치"라고 고개를 숙이면서도 전처의 고 박태준 전 포스코회장 일가와 문용린 후보 쪽의 공작정치 의혹을 제기했다.
고승덕 후보의 해명에도 서울시교육감 선거 결과는 예측하기 힘든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여론조사 공표가 금지된 29일 이전 서울시교육감 선거 여론조사에서 이미 고승덕 후보의 독주가 흔들리는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 28일 MBC와 SBS의 공동여론조사(유·무선 전화면접조사 방식, 표본오차 95% 신뢰 수준에 ±3.5%, 응답률 11.7%) 결과, 지지율은 고승덕(26.1%)·문용린(23.5%)·조희연(14.9%) 후보 순이었다. 부동층은 29.7%였다.
캔디 고씨의 글은 고 후보를 비롯한 문용린·조희연 후보의 지지율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오마이뉴스>는 2일 서울 시내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곳으로 알려진 강남구 대치동, 서초구 양재동,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을 찾았다. 고 후보 지지율이 높은 강남지역에서도 표심이 흔들리고 있었다.
[강남구 대치동] '고승덕 파문' 이후 흔들리는 표심
'대치동 학원가'에서 고시 3관왕인 고 후보의 지지율은 견고했다. 하지만 캔디 고씨의 폭로 이후 표심은 흔들렸다. 초등학교 1학년생인 아들의 손을 잡고 글쓰기 학원으로 향하던 이아무개(41)씨는 "고승덕 후보는 정치공세라고 해명하던데, 딸의 말을 더 신뢰한다"면서 "아직 누구를 뽑을지 결정하지 못했지만, 고 후보를 뽑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마아파트에 사는 한 주민(47)은 "(고 후보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졌다"라고 말했다. 그는 "아무래도 엄마의 입장이다 보니 자식을 버렸다는 것에 용납할 수 없다"면서 "조희연 후보의 아들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고 조 후보를 지지하기로 마음을 먹었지만, 이 동네 주민들은 문용린 후보에게 마음이 기운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날 오후 학원이 몰려 있는 6층짜리 건물 1층 카페에서 담소를 나누고 있던 중년 여성 3명을 만났다. 한 달에 한 번꼴로 만나 '교육 정보'를 나눈다는 이들에게 캔디 고씨의 폭로 내용에 대한 의견을 묻자, "개인사이기 때문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한 여성은 "연락을 끊었다고 하던데 부부가 불미스럽게 헤어져서 그런 것 같다"라며 "딸은 '아버지가 자신을 버렸다'고 말하는데, 알고 보니 재벌가 손녀더라"고 지적했다. 그는 "지지 후보를 정했느냐"는 물음에 "아직 지켜보는 중인데, 캔디 고씨의 폭로는 투표에 장애가 되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머지 이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대치동 학원가에서 만난 고등학생들은 캔디 고씨의 폭로 내용을 알고 있었다. 정수민(18)군은 학생은 "반 친구들과 객관적 사실만 주고 받았을 뿐, 주관적 견해를 나눈 적은 없다"면서 "안타깝다고 느꼈고, (고 후보의) 교육감 자격 여부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밝혔다.
고승덕 후보에 대한 지지를 철회한 학생도 있었다. 신정린(17)양은 "부모님께 고승덕 후보를 뽑아달라고 말씀드렸는데, 이번 사건으로 '문용린 후보에게 투표하시라'고 했다"라며 "자식 교육도 책임지지 못 한 사람이 서울시 교육을 맡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서초구 양재동] 고승덕 후보의 텃밭은 흔들리지 않았다
대치동과 달리, 서초구 양재동의 표심은 흔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고승덕 후보가 지난 2008년 총선에서 새누리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됐을 때의 지역구다. 양재동의 학교·카페·공원·찜질방 등지에서 만난 10명의 시민 중 7명이 고승덕 후보를 향한 변함없는 지지를 보여줬다.
언남문화체육센터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온 40대 중반의 한 시민은 "고승덕 후보에게 약간 실망했지만, 딸이 너무했다는 생각이 더 크게 든다"라며 "혈육지간에 그런 식으로 폭로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미묘한 시기에 이런 발언이 나왔다는 것은 다른 후보 쪽에서 손을 썼을 수도 있다는 얘기 아니겠느냐"고 덧붙였다.
언남고등학교 인근에서 만난 40대 시민은 "(고승덕 후보의) 딸의 말을 온전히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버지 나름의 사정이 있지 않겠느냐"면서 고 후보를 두둔했다. 그는 "양쪽의 말이 다른데 어떻게 한 쪽의 말만 사실이라고 볼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초등학생 자녀를 둔 30대 후반의 시민은 사생활의 문제를 정치의 영역으로 끌고 오는 것에 반대했다. 양재근린공원 벤치에서 채점된 자녀의 학습지를 살펴보던 그는 "정치를 잘 모르지만 개인의 사생활과 공적 영역은 다르지 않느냐"면서 "고 후보의 개인사 때문에 정치적 의사를 바꾸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전했다.
서울시교육감 선거 벽보를 살피던 한 시민은 "고승덕 후보가 제일 명망도 있고 믿음직스러웠는데 이제 누구를 찍어야할지 혼란스럽다"면서도 "아직은 고승덕 후보를 찍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 후보를 성토하는 목소리도 들을 수 있었다. 조희연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한 시민은 "고 후보가 정치인으로서 출마하는 것이라면 상관없지만, 교육감 후보로서는 부적합하다"면서 "자신의 딸을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딸의 글을) 정치 공작으로 모는 사람이 어떻게 교육자인가"하고 반문했다.
[양천구 목동] '부동층 엄마'의 마음이 움직였다
이날 오후 목동의 한 아파트 상가에 있는 카페에는 빈자리를 찾을 수 없었다. 아이들의 하교를 기다리는 엄마들이 왁자지껄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목동은 서울 서부 지역의 교육 1번지다. 선거 관련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테이블에 다가가 표심을 물었다.
한 시민에게 고승덕 후보의 딸이 밝힌 내용이 표심에 영향을 끼쳤는지 묻자 "원래 고승덕 후보를 지지했었는데, 철회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중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둔 그는 "딸 아이가 자라는 걸 보니 치열한 교육 경쟁보다는 인성교육이 더 중요하다고 느낀다"면서 "(고 후보를) 지지하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양천구민 문화센터 입구에 마련된 벤치에서도 고 후보를 성토하는 대화가 흘렀다. 한 엄마가 "고 후보는 문용린 후보와 전 장인어른과의 합작이라는 얘기는 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하자, 맞은편의 엄마는 "'쓰리 고시 패스'를 운운하는데, 공직자라면서 스펙보다 인간이 먼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목동은 이전부터 고승덕 후보를 지지하지 않은 엄마들이 많은 곳으로 알려졌다. 캔디 고씨의 발언 이후 이 같은 표심은 확실히 굳어졌다. 한 카페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 목소리로 "고승덕 후보를 지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들은 자녀들이 어린이집에 다닐 때부터 초등학교 3학년이 될 때까지 계속 모임을 해온 엄마들이다.
조희연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이아무개(37)씨는 "원래 고승덕 후보를 지지하지 않았지만 고 후보의 딸 발언 덕분에 더 확신을 가졌다"고 밝혔다. 박유정(38)씨는 고 후보에 대해 "변호사를 하던 사람이 교육감을 하겠다고 나섰다, TV로 끈 대중인기로 표 얻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머지 두 엄마들은 교육감 선거에 대한 불신을 나타났다. 신아무개(40)씨는 "그래 봤자 '고승덕 대 문용린'의 구도 아니겠느냐"라면서 "아이들 교육에 교육감의 역할은 굉장히 크지만, 지금 상황에선 누가 당선돼도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양영란(40)씨는 "목동 엄마들은 성적보다는 제대로 된 교육에 초점을 두는 사람들"이라면서 "요즘 선거전을 보면 투표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밝혔다.
[노원구 중계동] "4명 중 2명은 고승덕 후보 지지 철회"
'강북의 강남'이라는 노원구 중계동에서도 표심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날 오후 중계동 을지초등학교 정문 앞에서는 30여 명가량의 학부모들이 우산을 들고 자녀의 하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아들과 걸음을 옮기고 있던 박아무개(43)씨는 "어제(1일) 우리 학부모 그룹 4명이 고승덕 후보 딸의 글에 대해 얘기했는데, 2명은 '그래도 고 후보가 괜찮다'고 했다"면서 "딸을 보고 후보를 결정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나머지 2명은 '고 후보는 정말 아닌 거 같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조희연 후보를 지지한다고 밝힌 한 30대 주부는 "엄마들끼리 카톡으로 기사를 많이 공유한다"면서 "원래 고승덕 후보를 지지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들의 표심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계동 학원가가 있는 은행사거리에서 만난 김아무개(48)씨는 고 후보 지지자는 아니라면서도 캔디 고씨가 글을 올린 데에 의혹을 제기했다. 그는 "고 후보가 그동안 많은 활동을 했는데, 딸이 지금 글을 쓴 게 꺼림칙하다"면서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모르겠다"고 전했다.
캔디 고씨의 글을 보고 오히려 고 후보에게 투표해야겠다는 학부모도 있었다. 중계동 은행사거리에서 만난 김아무개(50)씨는 캔디 고씨에 대해 "딸은 철이 없다, 나는 오히려 고승덕 후보가 안타깝게 느껴진다"면서 "투표할 생각 없었는데, 고 후보에게 투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