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유세였는지 분간하기 힘든 현장이었다. 최흥집 새누리당 강원도지사 후보를 위한 지원 유세에서 '최흥집'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최흥집을 최대한 부각해야 할 유세 현장에, 최흥집 대신 세월호 참사로 뼈아픈 눈물을 흘려야 했던 가엾은 박근혜 대통령과 강원도 예산을 확보하는 데 지원군 역할을 톡톡히 해줄 9명의 강원도 국회의원들이 있었다.
2일 오후 4시 선거 이틀 전, 춘천풍물시장에서는 최흥집 강원도지사 후보를 대대적으로 지원하는 선거유세가 있었다. 이 유세 현장에는 이재오 전 최고위원,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인 이완구 원내대표,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여성위원장인 김을동 의원, 그리고 전 KBS 아나운서인 정미홍씨 등이 참석해 강원도지사로 왜 새누리당의 최흥집 후보가 당선이 되어야 하는지를 역설했다.
이날 최 후보를 지원하려고 연단에 오른 사람들은 대부분 강원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누리당의 최흥집 후보'가 강원도지사로 당선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이날 지원 유세에서 나선 사람들의 입에서는 최 후보가 대체 어떤 능력이 있는 인물인지, 그리고 또 그가 어째서 강원도 발전에 꼭 필요한 인물인지는 언급이 없었다. 최흥집 후보 지원유세 현장에서 '최흥집'을 찾아보기 어려운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이런 상태로 만약에 최흥집 후보가 강원도지사에 당선이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박근혜 대통령과 아홉 명의 강원도 국회의원들의 '능력'을 등에 업고 강원도지사 자리에 오른 사람이 과연 강원도민들을 위해 얼마나 열심히 일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이날 지원유세의 진정한 주인공은 어디까지나 '박근혜 대통령'이었다. 최 후보가 강원도지사에 당선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로, 박 대통령의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해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박 대통령과 같은 편에 서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논리가 동원됐다. 어찌된 일인지, 지방선거를 위한 유세 현장에서 '지방자치'를 무색하게 하는 발언들이 숱하게 쏟아졌다.
"최 후보 당선되면, 국회서 예산 듬뿍 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어떻게 해서 이런 논리들이 가능했는지 이날 지원 유세 현장에 참석했던 사람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자. 먼저 연단에 오른 이재오 전 최고위원은 강원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미 새누리당 일색인 9명의 강원도 국회의원들은 물론이고, 강원도지사도 새누리당 소속이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지역 발전을 위해서는 "국회의원들과 도지사가 (서로) 죽이 맞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새롭게 큰일을 하기 위해) 지난 총선에서 사랑하는 강원도민이 우리 당에 9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다"고 말하고 나서는 청중들에게 "그런데 (이 국회의원들이) 일을 하려고 보니까 이 도지사하고 죽이 맞아야 하지 않나?"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러고는 곧이어 "이왕 죽이 맞으려면 확실하게 같은 당의 도지사를 당선시키는 것이 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는 답을 제시했다.
그의 말대로 하면, 적어도 강원도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강원도 내 모든 지자체장들이 모두 새누리당이 될 필요가 있었다. 그는 덧붙여 "나라 안이 아주 어려운데 정치라고 하는 것은 좀 잘 사는 사람보다 좀 못 사는 사람을 위해 정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그래서 이제 나라에 안정감을 주려면 강원도 도지사가 새누리당 정권 아래서 새누리당 도지사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완구 원내대표도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거의 같은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는 "충청도나 강원도 같은 곳에서는 중앙정부의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도지사가 아무리 열심히 하려고 해도 중앙정부의 지원이 신통치 않으면, 그 도의 발전을 가져오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는 고백 아닌 고백을 털어놨다. 중앙정부는 어느 쪽 편을 들어서도 안되는데, 도지사의 정치적 배경에 따라 중앙정부의 지원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이상한 논리였다.
그는 "2018년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해서 우리 강원도는 제2의 도약을 해야 하는 시대적 명제를 안고 있다"고 하고 나서는 또 "이게 대단히 중요한데,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야당 도지사, 그리고 9명의 우리 국회의원, 이게 뭐 좀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그는 "나 이완구 원내대표, 이번에 우리 당 최 후보를 여러분께서 당선시켜주신다면 대통령과 함께 국회에서 예산을 강원도 발전에 듬뿍 쓸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김을동 여성위원장은 강원도지사로 최흥집 후보를 뽑아줄 것을 여러 차례 읍소했다. 이유는 "우리 박근혜 대통령의 국가대개조 사업에 여러분의 동참"이 꼭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번에 우리 박근혜 대통령을 만들어준 것도, 우리 강원도 도민들이 일등공신이라고 생각"한다며, 이번 지방선거에서도 "기호 1번 우리 후보들, 몽땅 당선시켜서 박근혜 정부의 원활한 국정 운영에 동참해 줄 것을 다시 한 번 부탁"했다.
"이번 선거는 더 이상 볼 거 없다, 전부 1번을 찍어주면 된다"그 다음에는 전 KBS 아나운서로, 얼마 전 세월호 참사 사건과 관련해 사실과 다른 주장을 해서 여론의 지탄을 받았던 정미홍씨가 연단에 올라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도 세월호와 관련한 이야기로 대부분의 시간을 채웠다. 그는 먼저 "서울은 지금 온통 노란 물결에 연일 시위 때문에 경찰이 항상 수천 명이 거리에 깔려 있고, 차를 타고 왔다 갔다 하기도 힘들 만큼 정신이 없고 막혀 있다"는 말로 서두를 꺼냈다.
그러고는 곧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를 다섯 번이나 했다"며 박 '대통령의 사과와 눈물'을 주제로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그는 "(다섯 번이나 공식 사과한) 그런 대통령의 사과를 가짜라고, 진정성이 없다고, 끝없이 우기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하고, 청중들을 향해 "여러분, 더 이상 어떻게 더 사과를 하고, 더 이상 어떻게 더 이 나라를 바로세우겠다는 말을 해야 그들이 우리 대통령의 진정을 믿어줄까?"라며 한탄했다.
그는 또 "우리 대통령께서는 이제 비정상적인 것을 정상으로 돌려놓겠다, 잘못된 것을 바로잡고 대한민국을 개조하겠다 이렇게 외치고 있다"고 하고 나서는, "그런데 (박 대통령이) 슬픔을 공감하는 능력이 없다, 구조된 사람이 174명이나 되는데도 아무도 구조하지 못했다, 이렇게 우기면서 무조건 대통령 물러나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과연 대한민국 사람인가?"라며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매섭게 비난했다.
이어서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 그 사람들이 "이 사회를 더 혼란과 무질서로 몰아가고 있다"며, 춘천시민들에게 "이번 선거를 통해서 이들을 반드시 심판"해 달라고 부탁했다. 그는 계속해서 "이번 선거는 더 이상 볼 거 없다. 전부 1번을 찍어주면 된다"며, 유세 현장에 몰려와 있는 사람들을 향해 "그래서 대통령님의 그 처절한 눈물을, 여러분 그 눈물을 씻어주기 바란다"고 호소했다.
정작 이날의 주인공인 최흥집 강원도지사 후보는 그렇게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이날도 그의 선거 슬로건인 "지금 강원도는 일하는 도지사, 힘 있는 도지사, 책임지는 도지사가 필요하다"는 말을 재차 강조했다. 정미홍씨의 뒤를 이어 마이크를 잡은 그 역시 앞서 나온 연사들과 마찬가지로, "강원도의 발전을 책임질 수 있는 힘 있는 여당 도지사가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그는 "여당 도지사는 9명의 새누리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대통령과 소통하면서 강원도의 이익을 최고로 지킬 수 있는 절호의 찬스"라며 "이 기회 놓칠 것인가, 안 놓칠 것인가"라는 말로 춘천 시민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을 강조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또 난데없이 "춘천 속초 동서고속화철도 노선에 반드시 화천 양구를 경유하도록 만들어주겠다"는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춘천에서 속초로 가려는 철도가 화천과 양구를 거쳐 가려면 한참을 돌아가야 한다.
이날의 지원유세는 춘천풍물시장에서 약 한 시간가량 진행됐다. 유세 현장에는 최흥집 강원도지사 후보 선거운동원들은 물론이고, 춘천시에서 출마한 시장 후보와 시의원, 도의원 후보들의 선거운동원들도 잔뜩 몰려와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유세 중간 중간에는 최문순 강원도지사 후보를 비난하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청중들 사이에서 가끔 "나쁜X"라는 욕설이 양념처럼 끼어들었다. 누구를 위한 선거인지, 무엇을 위한 선거인지 알기 힘든 유세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