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와 함께 치른 전국 교육감 선거가 끝났다. 지난 2010년 전국적으로 치러진 6·2 교육감 선거에 이어 두 번째로 진행된 전국단위 직선제 교육감 선거였다. 전국 16개 시·도 교육감을 뽑은 2010년과 달리 올해에는 세종시가 추가되어 전국 17개 지역에서 교육감이 선출되었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후보는 모두 72명으로 평균 경쟁률이 4.2대 1이었다.
2010년 교육감 선거에서는 전국 16개 시도에서 보수 후보 10명, 진보 후보 6명이 당선되었다. 수적으로만 보면 진보 후보의 열세였다. 하지만 진보 성향의 후보들은 전국 최대 지역인 서울·경기를 거머쥐었다.
이밖에 강원·전북·전남·광주 등지에서 당선되는 영광을 얻은 진보 후보들은 이른바 '진보 교육감 벨트'를 만들었다. 이 같은 진보 후보들의 선전에는 후보가 난립한 보수 진영과 달리 단일화를 통해 표를 결집한 전략이 주효했던 것으로 평가되었다.
지난 4년간 진보 교육감들은 뚜렷한 존재감을 과시했다. 진보 교육 정책의 '삼두마차'인 '혁신학교', '무상급식', '학생인권조례' 등이 속속 도입·확대되었다. 특히 김상곤 전 경기교육감의 트레이드 마크인 무상급식 정책은 보편적 복지를 시대정신으로 끌어 올리면서 2012년 대선에까지 영향을 줬을 정도로 그 파급력이 거셌다. 일제고사로 불린 전국단위 학업성취도평가와 자율형사립고 정책 등 정부의 획일적인 교육정책에 대해서도 진보 교육감들은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다.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도 진보 진영은 발빠르게 단일화 작업을 추진했다. 반면, 보수 진영은 4년 전과 마찬가지로 극심한 분열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시·도에 따라 '보수 단일 후보'를 자처하는 후보들이 없지 않았으나 비슷한 성향의 다른 보수 후보들이 사퇴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 결과, 대구, 대전, 울산, 경북 등 4곳을 제외한 전국 13곳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들 진보 교육감들은 박근혜 정부의 보수적인 교육 정책에 어떤 식으로 맞서게 될까. 이들은 대한민국의 학교 현장에 어떤 새로운 '진보 바람'을 불러일으킬까.
13명의 교육감들이 불러일으킬 '진보 바람'
지난 5월 19일, 전국 진보 교육감 후보들이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조희연(서울), 이재정(경기) 후보를 비롯하여 이청연(인천), 민병희(강원), 김지철(충남), 최교진(세종), 김병우(충북), 김승환(전북), 장휘국(광주), 장만채(전남) 정만진(대구), 정찬모(울산), 박종훈(경남) 후보 등이 함께했다.
그 자리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 입시고통 해소와 공교육 정상화 ▲ 학생 안전 및 건강권 보장 ▲ 교육비리 척결 등을 공동 3대 핵심공약으로 제시했다. 입시고통 해소와 관련해서 이들은 ▲ 고교평준화 확대 ▲ 고입선발고사 폐지 ▲자사고 폐지 및 특목고 정책 전면 전환 등을 내세웠다. 이명박 정부 이후 강력하게 추진되어 온 이른바 수월성 교육과 학교 다양화 정책 등에 강한 제동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는 대목이다.
학생 안전과 건강권은 보편적인 교육복지 구현 차원에서 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진보 교육감 후보들은 이미 학교안전 종합시스템 구축과 친환경 무상급식 확대, 학교폭력 없는 안전한 학교 등을 공동 공약으로 제안하였다.
이에 따라 한때 논란이 됐던 학교주변 유해업소(호텔, 도박장, 유흥시설 등) 설립 문제는 공동 '금지' 공약에 따라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것으로 보인다. 친환경 무상급식은 '무농약, 무방사능, 무GMO'의 '3무(無)급식'으로 한층 업그레이드 된 형태로 확대될 전망이다.
학교폭력과 관련해서는 회복적 생활교육, 피해·가해 학생의 치유와 회복을 위한 지원시스템 등이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밖에 보편적 교육복지 강화 차원에서 유아교육 공교육화와 학교비정규직 정규직화 및 호봉제 실시 등도 적극 추진될 전망이다.
'혁신학교', 장밋빛 미래 보장될 듯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뜨거운 쟁점들 중 하나였던 혁신학교 정책은 장밋빛 미래가 확실하게 보장된 것으로 보인다. 기존 혁신학교는 서울·경기를 비롯해 강원·전북·전남·광주 등 이른바 진보 교육감 벨트 지역에 국한되었었다. 하지만 이번 선거에서 새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등장함으로써 혁신학교가 여타 지역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이미 이청연(인천), 김지철(충남), 김병우(충북), 최교진(세종) 후보 등이 각각 '인천형 혁신학교', '충남형 혁신학교(혁신교육 100프로젝트)', '충북형 혁신학교', '세종형 혁신학교' 등을 도입하기로 공약한 바 있다. 진보 성향의 김석준, 박종훈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부산, 경남 지역에서도 혁신학교 바람이 일 것으로 보인다. 김석준 부산교육감 당선자는 임기 내에 '부산형 혁신학교' 30곳을 지정하겠다고 공언했다. 박종훈 경남교육감 당선자도 진주 혁신도시에 '경남형 혁신학교'를 운영하겠다고 약속했다.
기존의 혁신학교 지역 또한 그 구체적인 성과를 바탕으로 혁신학교 확대 정책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혁신학교 성공의 관건은 양적 성장에 걸맞은 수준과 질의 보장에 있다. 이와 관련하여 혁신학교가 가져온 교육현장의 새 바람에 기대 학교혁신을 이루기 위한 진보 교육감들의 노력이 얼마나 뜨겁게 펼쳐질지 주목된다.
본격적인 학교혁신을 위한 좀 더 구체적인 안은 공동 공약에 이미 제시되어 있다. 선진국형 창의학력 신장과 협력형 수업 전면화, 기초학력 보장을 위한 초등 협력교사제 도입, 중·고등학교 학급당 학생수 25명 이하 감축 등이 그것이다.
이들 공약들이 성공적으로 추진된다면 진보 교육감의 '아킬레스건'이랄 수 있는 학력 신장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할 수 있다. 미래 핵심 역량을 중심으로 하는 수업 혁신이 가능해짐으로써 학력관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교육부를 포함한 정부 부처와의 정책 조정 및 예산 협의 문제가 걸려 있긴 하다. 하지만 전국 교육감들이 힘을 합친다면 얼마든지 실현할 수 있는 정책들이다.
이와 관련하여 새로 들어서는 교육감들이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교육감협의회)를 어떻게 꾸려나갈 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진정한 교육자치 실현을 위해서는 교육감협의회의 위상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국회 및 교육부 등 중앙부처와의 정기 협의회를 통해 법 제도 개선과 교육예산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 대학입시제도 개선을 위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도 협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진보 교육감', '진보'보다 '진짜' 교육에 힘써야
진보 교육감의 대거 등장은 교육 현장에 참여와 소통이라는 새 바람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공동 공약에서 제안한 대로 교육청 정책자문위원회와 주민참여 예산제를 활성화하고, 교직원회·학부모회·학생회 등 학교자치기구의 법제화가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학생자치활동도 얼마나 활성화할지 주목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 의제인 민주시민교육에도 더 많은 품을 들여야 한다.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에 관한 문제도 눈여겨볼 지점이다. 작년 한 해 우리 사회 전체를 뜨겁게 달군 교학사 <한국사> 사태 이후 교육부를 중심으로 하는 보수 진영에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태세를 공공연히 드러내고 있다.
반면 진보 교육감들은 예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친일독재 미화 역사교과서에 대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대안적 역사교과서 발행을 약속했다. 교육부 및 보수 진영과 진보 교육감들 사이의 상충하는 입장이 장차 어떤 모양으로 맞설지 주목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짚어볼 지점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과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 등 교원노조·교원단체와의 관계 설정 문제다.
경남과 충남, 충북 지역에서는 보수 성향의 후보들이 진보 성향의 후보를 '전교조 출신 후보', '전교조 출신 교육감' 등으로 물고 늘어진 혼탁한 선거전을 치렀다. 새로 당선된 진보 교육감들이 반(비)전교조 성향의 유권자들(교사, 학부모)에게 '전교조 출신 교육감'이라는 꼬리표를 어떻게 처리할지 관심 있게 지켜볼 일이다. 보수 교원단체로 분류되면서 국내 최대 교원이 가입해 있는 교총과의 관계를 어떻게 맺을지도 주목할 만하다.
직선제 교육감은 해당 지역의 '교육 대통령'으로 불릴 만큼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예산 편성권과 교원 인사권, 교육 관련 각종 조례 제정 등의 권한이 교육감에게 있다. 학교를 세우거나 없애고, 학교 유형 및 형태를 결정하는 것도 교육감 몫이다. 야간자율학습이나 방과후 보충 수업 등 학생과 교사들의 학교 생활을 좌지우지하는 각종 교육 활동이 교육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육감이 누구이며, 그가 어떤 정책을 펼치느냐에 따라 학생과 학부모, 교사, 말하자면 우리 국민 대다수의 일상이 크게 달라진다는 말이다. 전국 교육감들의 하루하루의 행보가 대한민국의 내일을 설계하는 데 큰 힘을 미치는 것이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상투적인 말을 새로 단단히 새겨보아야 하는 이유다.
새로 등장한 이른바 진보 교육감들이 '진보' 교육이 아니라 '진짜' 교육에 매진해야 하는 까닭도 바로 여기에 있다. 4년 뒤, 전국 17개 시·도교육감 자리를 진보 교육감들이 차지하는 비결 역시 마찬가지 아닐까.
이를 위해 이번에 당선된 13명의 진보 교육감들이 한층 업그레이드된 진보 교육에 대한 유권자들의 바람과 기대를 잊지 말고 막중한 책임감과 소명 의식을 가져야 함은 물론이다.
덧붙이는 글 | 제 오마이뉴스 블로그(blog.ohmynews.com/saesil)에도 실릴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