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랬으면 좋겠다"던 염원이 현실로 이뤄졌다. 지나온 과정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6·4 지방선거에서 민주 진보 단일 교육감 후보로 출마한 조희연(서울), 이재정(경기) 후보가 모두 당선된 것이다.
특히 선거 초반 낮은 후보 인지도로 인해 지지율 10%에도 채 미치지 못했던 조희연 당선인이 서울 교육감으로 당선된 것은 이번 지방선거 중 반전 중에 반전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한 보수진영 후보가 난립했던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는 이재정 당선인이 내내 안정적인 1위를 고수하며 '경기 진보 교육감 시즌 2'를 열었다. 4년 전 서울에서 곽노현 후보가, 경기에서는 김상곤 후보가 교육감으로 당선된 후 다시 열린 '진보 교육감' 시대다.
이는 2012년 12월, 서울 교육감 보궐선거에서 보수 진영을 대표한 문용린 후보가 압도적인 승리를 기록했던 사실을 상기하면 정말 대단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선거의 기쁨을 한가하게 누릴 여유는 그리 많지 않다. 당선된 날부터 사실상 임기가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잘 준비하지 않으면 선거 과정에서 유권자에게 내놓은 공약을 임기 내에 제대로 해 내기 쉽지 않다.
이에 서울, 경기 지역 교육감 당선인에게 꼭 당부하고 싶은 몇 가지 교육 개혁 기대를 전하고자 한다. 지금 제대로 하지 않으면 오늘은 달콤하겠지만 다시 4년 후인 2018년 선거일, 우리는 또 다른 아픔을 각오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2010년보다 훨씬 좋은 성적표
사실 경기도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재정 당선인에게 있어 가장 큰 위기는 본선보다 경선이었다. 참여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당선인은 '본선용' 주자였다. 민주·진보 단일 교육감 경선에 나섰던 다른 후보에 대해 높은 인지도를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경선 통과 여부였다. 교육감 후보 출마 결심도 늦었고 이로 인해 단일화 경쟁 상대였던 최창의 교육의원과 이재삼 교육의원에 비해 선거인단 모집도 현저히 적었다. 이로 인해 과연 이재정 당선인이 경선을 통과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변수는 역시 '세월호 참사'였다. 애초 예정되었던 경기도 교육감 진보진영 단일화 경선이 세월호 참사 때문에 연이어 두 차례나 연기되면서 상당한 변수가 발생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출마 선언이 늦어 조직력을 제대로 갖출 수 없었던 이재정 당선인이 경선을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을 벌었고, 이를 통해 비록 경쟁 후보보다 적은 선거인단을 모집하고도 우월한 성적으로 민주·진보 단일 경기 교육감 후보로 선출될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본선은 사실상 조용했지만 큰 어려움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본선용 후보답게 높은 인지도를 기반으로 보수 진영 후보가 난립한 경기도 교육감 선거에서 여론 조사 내내 1위를 고수해 왔다. 그렇기에 이재정 교육감 당선은 많은 이들의 예상에서 크게 어긋난 것으로 볼 수는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하지만 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인은 달랐다. 그 누구도 조희연 후보가 서울시 교육감으로 최종 입성하게 되리라 자신하지 못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최종 결과는 조희연 후보의 당선이었다. 엄청난 반전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정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선거 결과였다.
어떻게 해서 이런 반전이 가능했는지는 이미 모두가 아는 과정이니 굳이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압도적인 1위 후보였던 고승덕 후보 딸의 '폭로'와 그 과정에서 문용린 후보의 '개입설'을 주장한 고 후보의 반발로 두 유력 보수 후보간의 진흙탕 싸움이 결국 진보 단일 교육감 후보였던 조희연 후보의 당선으로 이어졌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후보 인지도가 거의 제로 상태에 가까웠던 조희연 후보가 당선된 것은 그야말로 기적 같은 드라마로 기록될 듯하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울과 경기, 합쳐서 우리나라 인구의 거의 3분의1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조희연 후보와 이재정 후보는 명실상부한 교육감으로 당선되었다. 이뿐만 아니라, 대구, 대전, 울산, 경북 등 4개 지역을 제외한 13개 지역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 후보가 당선되었다. 이는 4년 전인 2010년 당시보다 더 좋은 성적이다.
2010년보다 더 좋은 또 다른 여건은 박원순 후보의 서울시장 당선이다. 2010년에는 서울, 경기 모두 보수 정당 소속 후보가 당선되어, 진보 교육감으로 당선된 곽노현, 김상곤 교육감과 이후 정책 추진 과정에서 적지 않은 파열음을 냈다. 물론 이번에도 접전 끝에 경기도지사는 여당 후보가 당선했지만, 서울시장에는 야당 후보가 당선돼 진보 교육감의 정책 추진에 있어 유기적인 협조와 협의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선거는 끝났다. 그동안 오직 선거에서 이기고자 그 방법만을 생각했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서 선거기간 중 유권자에게 약속한 결과물을 만들어 낼 것인지 책임있게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사실 이번 선거는 엄밀하게 말해 정상적인 상태에서 이뤄진 선거라고 말할 수 없다. 굉장히 아프고 고통스러운 가운데 치러진 선거였기 때문이다. 세월호 참사와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난 현 정부의 무능과 무책임이라는 실정만 아니었다면, 야당이 대거 승리하는 결과는 없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야당이, 또 진보 진영이 잘해서 국민이 표를 준 것이 아님을 솔직하게 인정해야 한다. 국민은 심판받아야 할 대상이 당선 되어서는 안된다는 분노로 야당에게 표를 준 것이다. 이는 진보 교육감 후보로 출마하여 선출된 조희연, 이재정 두 당선인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경기 교육감으로 당선된 이재정 당선인에게 거는 기대는 더 클 수밖에 없다. 참사가 발생한 지역을 관할하는 경기 교육감 자리에 앉았기에 더욱 그러하다. 무엇보다 당장 시급한 것은 안산 단원고의 정상화 문제다. 초유의 참사 앞에서 누구도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채 사실상 단원고 학생들과 학부모가 방치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생환한 단원고 학생들의 정서적 치유 문제, 1·3학년 학생들이 겪고 있는 여러 고통에 대해서도 아무런 대책이 없어 원성을 사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이재정 당선자가 단위 학교의 사안으로만 봐서는 안된다고 본다. 지금 사안 자체도 중대하지만 향후 유사한 비극이 발생할 시, 지금과 같은 무대책을 반복하지 않도록 제대로 된 대책과 계획을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서울시 교육감 조희연 당선자에게 있어 시급한 문제는 서울 교육 개혁을 위한 구체적 계획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기도 교육청에서는 전임 김상곤 교육감이 재선을 거치면서 일정한 진보적 정책이 마련되고 집행 중인 상황이다. 그것이 완벽하다고 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서울 교육청에 비한다면 안정적인 수준이다. 서울시 교육청은 사정이 다르다. 2010년 당선되었던 곽노현 전임 교육감이 약 2년 반에 걸쳐 진보 교육감으로서 임기를 수행했지만 어떤 성과를 낼 수 있는 시간이 아니었다.
야심차게 추진했던 여러 개혁적 정책들이 예상하지 못했던 사건으로 인해 곽노현 전 교육감의 중도 하차로 이어졌고, 서울 교육의 진보적 개혁 청사진마저 전부 다 중도 폐기 되었다. 2012년 12월 보수 진영의 문용린 후보가 새로운 교육감으로 당선되어 취임하면서 그가 1년 6개월간의 임기중 한 일은 전임 진보 교육감이었던 곽노현표 정책을 지우거나 취소하는 정책의 연속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는 조희연 후보가 교육감으로 취임하면 곽노현 전 교육감 시대에 일궈놨던 성과를 빠른 시일 내에 다시 효과적으로 이어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한다면 조희연 당선자의 임기는 보장된 4년에 머물지 않게 될 것이다. 곽노현 전 교육감 시대에 이뤄진 2년 반의 성과를 조화롭게 이어간다면 사실상 자신의 임기 4년을 합쳐 6년 반의 성과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곽노현 전 교육감과 조희연 당선인의 교육 개혁 방안 관련 입장이 크게 다르지 않다.
'교육 비리 근절' 과감하게... 아이들에게 따뜻한 교육감가장 중요한 것은 교육 사회에 만연해 있는 비리 문제에 단호히 대처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 보수와 진보를 표방하는 교육감의 차이를 보여줘야 한다. 보수진영이 자기의 것처럼 '장기 독점'해 온 교육청에 진보 교육감을 보냈는데도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전혀 다르지 않게 대처한다면 이는 매우 중대한 유권자 배신 행위다.
특히 이러한 교육 비리 근절을 위해 나는 교육청 내부에서 은밀하게 흐르는 '패밀리 지향 정서'를 배격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이른바 '서울 교육 가족' 운운하는 표현이다. 같은 직장에서 일하는 사람들끼리 화목하게 지내는 것은 좋지만 이른바 '교육 가족'이라는 표현은 그들 내부의 비리나 잘못을 덮어주고 감춰주는 잘못된 정서로 악용되고 있다. 특히 약 2년여 기간동안 서울시 교육청 감사 공무원으로 재직했던 경험에 비춰보면 더욱 그러하다. 나는 그 중심에 바로 이 '교육 가족'이라는 잘못된 조직 문화가 있다고 평가한다.
내부의 같은 교육청 공무원끼리 순환 보직제에 따라 일하고 있는 현행 감사관실 제도로는 결코 이 같은 내부 교육 비리를 근절할 수 없다. 이는 교육감이 아무리 청렴을 주장하고 또 비리 근절을 지시해도 마찬가지다. 감사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이 '교육 가족'이라는 카르텔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데 어찌 제대로 일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교육청 내부의 비리 근절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외부 감사 전문가를 감사관실 실무 직원으로 대거 영입해야 한다.
물론 외부에서 실무를 담당할 감사 전문가를 도입하려 할 경우 내부 반발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반발로 이러한 정책을 추진할 수 없다면 단언컨대, 교육 비리 근절은 절대 꿈꾸지 마라.
마지막으로 하나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같은' 교육감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가난한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따뜻한 교육감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적어도 학교에서는 가난한 아이든, 그렇지 않은 아이든 똑같이 밥 먹고, 같은 기준에서 공정하게 기회를 주고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감이 되기를 기대한다. 그것이 진짜 진보 교육감이고, 그래야 진보 교육감을 선택한 지지자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즉, '무상급식'과 '체벌없는 인권 학교'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다시 오늘로부터 4년 후, 우리가 오늘 선택한 진보 교육감에 대해 유권자들이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해 달라. 그래서 아이들이 행복하고 학부모가 당당하며 성실한 교사가 진짜 대우받는 좋은 교육을 만들어 달라. 그런 교육을 만들 권한을 지금 조희연 서울 교육감 당선인과 이재정 경기 교육감 당선인에게 유권자가 부여한 것이다. 그 권한을 유권자가 줬는데 무엇이 두려운가. 앞으로 4년, 두 진보 교육감의 멋진 화답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