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윤장현!!"6·4 지방선거 지상파 방송3사 출구조사가 발표된 4일 오후 6시, 새누리당 5곳 우세, 새정치민주연합 5곳 우세, 접전 7곳의 성적표를 받아들고 표정관리를 하던 새정치민주연합 지도부가 순간 술렁였다. '전략공천'으로 몸살을 앓았던 광주에서 윤장현 새정치연합 후보가 압도적으로 앞서는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윤 후보가 떨어질 경우 현 지도부, 특히 안철수 새정치연합 대표의 입지가 크게 흔들릴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던 상황이었던 터라 안도의 탄식이 나왔던 것이다.
그러나 환호는 여기까지였다. 수도권에서 서울을 제외한 경기·인천은 모두 새누리당에 내어줬다. 특히 세월호 참사가 휩쓸고 간 경기도에서마저 밀린 새정치민주연합은 사실상 새누리당의 선전을 인정해야만 했다. 그나마 승리한 서울은 "후보 개인의 역량 때문에 얻은 결과"라는 평이다. 기적을 바랐던 부산과 대구에서도 높은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다만, 새정치연합은 막판까지 각축전을 벌였던 강원도를 비롯 '중원'이라 불리는 충남·충북을 지켰다. 5일 오전 7시 현재 당선이 확실시 된 광역단체장 숫자로 보면 새누리당 8(부산, 대구, 인천, 울산, 경기, 경북, 경남, 제주) : 새정치연합 9(서울, 광주, 대전, 세종, 강원, 충북, 충남, 전북, 전남)다. 여야 모두 자신의 승리를 자신할 수 없는 구도가 만들어진 것이다.
광주, 안철수의 손을 잡아주다 광주의 전략적 선택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앞선 여론조사에서 윤장현 후보는 강운태 무소속 후보에 비해 10~15%p 가량 뒤처지고 있었다. 그러나 막상 투표장에 들어선 광주 시민은 큰 표 차이로 윤장현 후보를 지지했다. "안철수가 광주를 우습게 본다"며 돌아섰던 광주 시민들은 "윤장현을 살려내야 안철수를 살려낼 수 있다"는 지도부의 호소에 흔들린 것으로 보인다. '미워도 다시 한 번' 안철수 대표에게 기회를 준 셈이다.
더불어, 상대로 나선 강운태 후보의 경우 최측근이 구속되는 등 '구악' 이미지가 강했던 점도 윤 후보가 승기를 잡은 요인으로 분석된다.
'윤장현 승리' 결과를 받아든 지도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윤장현의 승리가 아닌 안철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겨도 매우 근소한 차이로 윤장현 후보가 이길 줄 알았으나 압승했다"라며 "이는 광주를 계속 찾아가며 애쓴 안철수의 힘"이라고 진단했다.
결국, 광주 시민들은 '안철수의 미래'에 한 표를 던졌다. 이와 동시에 '무공천 철회', '공천 지분 나눠먹기' 등으로 지도력에 상처를 입었던 김한길·안철수 지도 체제는 일단 재신임을 받게 됐다. 견고한 지지는 아니지만 뿌리째 지도력이 흔들리는 불상사까지는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기, 인천에서 패배한 것을 두고 책임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박지원 의원은 5일 오전 7시께 자신의 페북에 올린 글에서 "광주 전략공천, 당력 광주 집중으로 경기 인천 등지에서 효과적으로 지원하지 못한 게 패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광주 무소속연대 바람이 전남북 강타해 36개 기초단체장 중 15개 기초단체장을 무소속에 헌납했다"라며 "이런 공천은 안 해야 하고 7·30 재보궐선거 때는 파벌지분 공천을 없애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전략 없는 새정치연합, 후보 개인기에 의존"
8 대 9의 결과는 '세월호 참사'가 부른 성적표라는 데 이견이 없다. 세월호 참사 전까지만 해도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고공행진을 이어갔고, 정부 여당 심판론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여권은 지방선거 승리를 자신했다. 민주당은 이 상황을 타개할 유일한 방법이라며 '안철수와의 합당' 카드를 던졌다. 이로 인해 초반 반등했던 야당 지지율은 그러나, 기초공천제 폐지 철회 등의 후폭풍을 겪으며 빠르게 하락했다.
지지부진하던 상황은 세월호 참사 후 급변했다. 정부 여당의 무능함에 대한 민심의 분노가 들끓었다. 그럼에도 지방 선거 국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역할은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세월호 사태 이후 '반성'에는 앞장섰으나 '대안'을 보여주지는 못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계획서 채택 역시 국회 의원회관에서 노숙 투쟁을 불사한 세월호 유가족들의 압박이 큰 역할을 했다.
새정치연합은 유권자의 뇌리에 남는 캐치프레이즈 하나 남기지 못했다. 각 지역별로 각 후보 캠프에서 고군분투했을 뿐이다. 중앙당 차원에서 전국을 돌며 지원 유세에 나섰지만 '구심점'으로서의 명확한 모습을 보이지 못했다. 선거 하루 전, 김한길·안철수 두 대표가 광화문에 나가 투표를 촉구하는 마지막 호소문을 읽었지만 언론으로부터도 주목받지 못했다. 이미 선거는 '새정치연합 지도부'를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특히 안철수 대표는 '광주'에 몸이 묶여 수도권을 집중 공략하지 못했다. 경기도 패배가 새정치연합에 뼈아픈 이유다.
반면, 새누리당에는 '전략'이 있었다. 여권이 전패할 것이라는 절박감에 새누리당은 "도와주십시오"라며 읍소에 나섰다. '1인 피켓 유세'라는 새로운 시도도 도입했다. 여기에 박근혜 대통령의 눈물을 접목해 '박근혜 마케팅'도 함께 펼쳤다. 이 같은 새누리당의 전략은 주목받았고 미디어에 자주 노출됐다. 결국 야권에 흔들리던 부산과 대구를 '여당 텃밭'으로 묶어둘 수 있었다.
정한울 동아시아연구원 사무국장은 "새누리당은 박근혜 마케팅+1인시위 절묘한 조합을 이뤘지만 새정치연합은 선거 막판 전략이 없었다"라며 "후보들 개인기에 따라 선거운동이 이어졌지만 당 차원에서 움직임이 보이지 않았다"라고 진단했다.
그나마 새정치연합이 9곳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것도 세월호 국면을 통해 전체 판이 흔들린 결과이지,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두각을 드러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이 중론이다. 새정치연합 지도부가 7·30 재보선을 승리로 이끌 수 있을지 의문표가 남는 지점이다. 지도부 스스로 "경기도에서 이기는 자가 전체 판에서 승리한다"고 평하고도 경기도에서 패배한 이상, 지도부를 향한 혁신 요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순·안희정·김부겸...넓어진 대권 후보군선거를 통해 새정치연합이 얻은 성과가 있다면 야권의 차기대선주자군이 대폭 넓어졌다는 것이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대표적이다. 박원순 시장은 상대인 '거물 정치인' 정몽준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를 10%p 이상 따돌리고 재선에 성공하면서 야권의 유력주자로 떠올랐다.
이 밖에 재선에 성공한 안희정 충남지사 역시 대권후보로서 이름을 굳히게 됐다. 2기째를 맞는 도정에서 어떤 활약상을 보여주느냐가 핵심 변수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야권의 불모지 대구에서 40% 이상의 지지율을 얻은 김부겸 대구시장 후보도 대권 후보 반열에 이름을 오르게 됐다. 대구 내 지역구 하나에서 야권은 32(유시민, 18대 총선)~35(이강철, 17대 총선)% 정도의 득표를 한 게 최대치였다. 이를 뛰어넘은 김 후보는 지난 19대 총선에서 40.4%를 득표한 바 있다. 6·4 지방선거에서 이 수치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김 후보는 대구시 전체를 총괄한 투표에서 40.3%에 이르는 득표율을 보였다. 엄청난 이변이다. 철옹성 같던 지역주의에 균열을 낸 김 후보는 야권의 잠룡으로 분류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6·4 지방선거 전체 성적표에서는 무승부로 그쳤지만 새정치연합은 차기 대선에서 야권은 박원순·김부겸·안희정이라는 쟁쟁한 후보군을 마련한 성과를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