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07년 기타 제조업체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은 정리해고를 당했습니다. 그 뒤로 계속된 투쟁과 농성. 지금도 그들은 인천에 있는 옛 콜트악기 부평공장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습니다. 해고자 임재춘씨는 오늘도 그곳을 지키며 굵고 거친 손으로 펜을 꾹꾹 눌러 글을 씁니다. 임재춘씨가 농성장 촛불문화제에서 낭독한 '농성일기'를 연출자 최문선씨의 해설과 함께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시작한 지 벌써 2주일이 지났다. 시작한 지는 어제 같은데, 참 시간이 빨리 지나가네. 시간이 지나면서 별별 생각이 다 드네. 지회장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인근, 오랜만에 불러보는 이름이네. 우리하고 대화 한 번 안 하는 사람이 어떤 생각으로 24시간 1인시위를 결심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다. 지회장 위치가 나 같은 노조원 생각과 다를 수도 있겠지만 많은 생각은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인근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여 보았다. 인근과 나하고는 나이가 비슷하다는 점 밖에 공통점이 없다. 어릴 때부터 가정환경과 학교생활이 전혀 다르니. 그만큼 다른 면도 많겠지. 우리 나이가 중년이다 보니 사회생활은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여럿이 더불어 배려하면서 사는 게 좋은 것 같은데….

인근 생각은 나하고 다르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종종 혼자 결정하고 통보를 하는 것 같다. 나는 몸 생각을 무척이나 중요하게 생각하여 먹은 것과 운동으로 건강을 지키려고 하는데, 인근이 너는 먹는 것과 움직이는 것을 너무 싫어한다. 움직이는 것도 운동인데…, 그래서 네가 걱정이다. (대법원 앞) 노숙농성을 하면서도 내가 '아침 먹고 올 테니 빵이라도 사다 주냐(줄까)'라고 하면 너는 무뚝뚝하게, "싫어, 커피만 사와"라고 한다.

나는 살면서 힘들고 괴로우면 술이라도 많이 먹고 혼자 속상해하고 푼다. 그런데 인근은 세상 살면서 싫은 말 한 마디 못하는 성격이다. 그러니 그 속이 오죽할까. 몇 달 전 얼마나 괴로웠으면 인근이 너는 혼자 죽을 생각을 하였을까 생각해본다. 농성하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게 얼마나 큰 불효이고, 무모한 생각인 줄 알아? 힘들면 힘들다고 대화를 하면서 해결할 수 있는 것을…. 말을 해, 말을!

앞으로 대법원 불철주야 24시간 1인시위 하면서 우리(금속노조 콜텍지회) 조합원 3명과 대화 좀 많이 하고, 같이 결정하여 끝맺음은 잘 했으면 좋겠어. 건강을 생각하여 담배 좀 줄여. 가수(콜트-콜텍 해고자들은 '콜밴'이라는 밴드를 만들어 활동한다)가 담배를 그렇게 피우니 목이 좋을 리가 없지. 나도 술 많이 줄일게.

우리 서로 마지막 판결이 잘 되길 기원해야겠지? 대법원 1인시위 하면서 좋은 식당도 차차 다니면서 먹고 싶은 것 마음껏 먹고 다니자, 응? 무더운 날씨에 몸 건강하게 잘 지내자. 딸, 아들 좀 생각하고. 넌 혼자 몸이 아니야. 성격도 조금만 바꿔봐. 세상이 다르게 보여.

2014년 6월 3일 콜텍 해고자 임재춘

6월 12일 대법원 선고... 그들이 함께 보낸 8년이 바로 '기적'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금속노조 콜텍지회 이인근 지회장 ⓒ 최문선

8년째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온 사람들. 임재춘 조합원의 말처럼 농성자들은 서로에게 수다스럽지 않다. 그러나 무심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이다. 오히려 불편을 피하고 싶어서 그럴 때가 많다. 그것은 또 불신과는 다르다. 서로가 서로를 슬퍼하는 쪽에 더 가깝다. 여전히 동지인데, 여전히 남이기도 한 그 간격이 평행선으로 유지된다고 해야 할까. 상대의 슬픔도 너무 큰데, 내 슬픔을 꺼내버림으로써 공연히 슬픔을 보태주는 건 아닐까 겁낸다고 해야 할까.

임재춘 조합원의 말버릇 중 하나가 "아, 심심해~"이다. 또는 "아, 답답해!"이다. 그런데도 임재춘 조합원은 멍석을 깔아주면 말을 주저한다. 고민거리를 가지고 혼자 끙끙대다, 뒤늦게 다른 농성자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는 경우도 많았다. "왜 진작에 말하지 않은 거야!"라는 말은 서로가 서로에게 주거니 받거니 반복되었다.

이인근 지회장은 조합원들이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고 답답해할 때가 있다. 그래서 자신의 말대로 곧 결정이 되는 순간엔 외로움을 느낀다고 했다. 알이 먼저인지 꿩이 먼저인지 그것은 알 수 없다. 어쨌든 수다 없는 그 고요함에는 관계와 관계들, 그리고 콜트-콜텍의 정리해고와 8년의 상호작용이 있다.

그 상호작용 속에 작년 10월 30일 새벽, 이인근 지회장은 홀로 차를 몰고 콜텍 본사로 가 자살을 시도했다. 8년의 요구가 담긴 현수막을 하나 걸어두고, 짤막한 유서 같지 않은 유서를 누군가에게 보낸 후 그는 떠나려 했다. 다행히 그의 행적은 우연의 덕과 묘한 예감 속에 빨리 알려졌다. 밧줄에 감겨 매달린 그의 몸뚱이를, 농성자들은 떨리는 손으로 바닥으로 내렸다. 맥박이 뛰었고, 그는 입원 치료를 받았고, 작년 늦은 가을부터 올 봄까지는 목티를 입고 다녔다.

5월 19일부터 콜트-콜텍 해고자들은 대법원 앞에서 공정한 심리를 촉구하는 24시간 노숙 1인시위를 하고 있다. 오늘(6월 3일) 대법원은 정리해고와 징계해고 무효 소송에 대한 최종 선고일을 알려왔다. 6월 12일 각각 오전 10시와 오후 2시. '심리불속행'은 아니라지만 불길하고 의심스런 빠른 선고. 

이런 상황에서 임재춘 조합원은 자꾸 이인근 지회장이 눈에 밟히나 보다. 또 말하지 않고 행할까, 또 그 속에 무슨 슬픔이 자라나고 있지는 않을까…. 

선고가 어떻게 나오든 그들이 함께 싸우며 보낸 8년이 바로 기적 아니겠는가. 대법원 선고 후 인천 천막 농성장으로 돌아가면 조금은 작은 기적도 보여주길. 서로에게 먼저 말하고, 여유 있게 들어주는 기적. 못 마시는 술이라도 한 잔 받아놓고 귀 기울이는 기적.

임재춘 주방장이 식사 준비할 때 이인근 지회장도 나서서 거드는 기적. 각자의 핸드폰으로 게임 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기적. 그 대신 그 시간에 누가 말하지 않아도 유랑문화제 유인물도 접고, 집회 일정도 스스로 챙기는 기적. 회의 있을 때 각자 보고할 거 먼저 생각해보는 기적. 그 모든 기적 중에 한 개라도 이루어지는 아주 작은 기적. 그리고 오래 오래 살아가며 서로 지켜봐주는 더 큰 기적, 뭐 그런 것들.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콜텍 노동자들. 오른쪽이 임재춘.
대법원 앞에서 1인시위 중인 콜텍 노동자들. 오른쪽이 임재춘. ⓒ 박남규



#콜트콜텍#부당해고#위장폐업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