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무원 브랜드 핵심은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기업, 로하스(LOHAS) 정신이다. 그 출발점에는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로 불리는 원경선 풀무원농장 원장의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정신이 있다. 풀무원 창립 30주년을 맞아 '로하스'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그 이야기가 '하필 지금'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지 살펴본다. [편집자말] |
풀무원에는 '철의 여인'이 있다. 그는 일에 파묻혀 한 주에 100시간을 일했다고 한다. 직접 지프를 몰고 주파한 거리가 연간 10만km에 달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렇게 밤낮 없이 일한 덕분에 풀무원 유기농 브랜드 '올가(올가흘푸드)'는 전국에 '통했지만', 그의 장기는 막혀 버리고 말았다. 장폐색(장유착), 그로 인한 세 번의 대수술. 김혜경 풀무원 부사장 이야기다.
그는 현재 풀무원 로하스 아카데미 본부장 직을 맡고 있다. 로하스 아카데미, 한국 유기농의 아버지 원경선 원장의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정신을 인큐베이팅 하는 곳. '밥상머리 교육'이나 생활 습관 교육 등을 통해 '어떻게 살아야 내 몸에 좋고 가족과 이웃 그리고 자연에게도 좋은가'란 답을 풀어내는 곳. 풀무원이란 회사의 미션,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로하스人(인)' 양성소다.
그래서 김혜경 부사장에게 '청진기'를 들이댔다. 풀무원 정신 교육 책임자, '교장 선생님'으로서 "풀무원이란 이름은 농장에서 시작했지만, 풀무원이 그 이름을 키웠으니 잘 써라. 다만 모든 제품에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의 정신이 깃들게 하라"는 원경선 원장의 '교훈'을 어떻게 풀어내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 이야기가 얼마나 '진하냐'에 따라, 풀무원이란 회사가 '초심을 대하는 농도' 또한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을 듯 했다.
안나푸르나에서도 통한 '원경선 정신'
"아주 성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동네 내과 의사를 한 분 찾으세요. 그 의사한테 정기적으로 혈액 검사를 받는 거죠. 더도 말고 6개월마다 그렇게 해서 건강 기록을 만들고 주기적으로 스스로 확인하는 겁니다. 그럼 뭔가 깨닫고 계획을 세우게 돼요. 운동이나 식이 조절을 게을리 했다면 반성하게 됩니다. 그럼 작심 삼일의 연속이 아니라, 뭔가 생활에 틀이 잡히게 돼요. 지금 4년 째 그렇게 하고 있는데, 진작 왜 이걸 하지 않았을까 해요. 그럼 더 건강하게 살았을 텐데 하고 말이죠."김 부사장은 마주하자마자 다짜고짜 건강 이야기부터 꺼내들었다. 그 다음 이야기도 뜻밖이었다. 얼마 전 "풀무원 임원으로는 처음 장기 휴가를 다녀왔다"며 안나푸르나 트레킹 이야기로 넘어갔다. 주치의나 가족 모두 불가능한 일이라며 붙잡았지만, "그동안 건강 관리 결과를 몸으로 확인하고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하루 10km 정도씩, 9일 동안 모두 21만보를 걸었다"고 했다. '철의 여인'다운 도전, 그런데 돌아오니 집이 편치 않았다고 한다.
"히말라야 가서 처음 만난 네팔 사람, 아주 잘생긴 청년이었어요(웃음). 스물 여섯, 애 아빠인데, 그 양반 하는 말이 이래요. '우리는 GNP 얼마 안 된다. 그런데 우리 행복지수는 한국보다 굉장히 높다', 까맣고 맑은 눈으로 그 이야기하는데, 뭔가 탁 느껴지는 것이 있었어요. 이번에 만난 네팔 사람들, 절대 내 배 불리려고 욕심부리고 자연을 해치지 않더군요. 폭이 1m 내외인 다랭이논(계단식 논), 새나 소가 와서 다 먹고 가도록 내버려두더라고요. 거둬진 만큼 먹으면 된다고. 왜 그렇게 최소한 개발하면서 먹고사는지, 네팔 사람들 마음을 알 것 같았어요. 아마 히말라야 같은 곳, 우리나라나 중국 같으면 시멘트로 도배했을걸요? 그리고 케이블카 달고 사람들 불러모았겠죠. 그런데 네팔 사람들은 왜 그렇게 하지 않을까. 돈이 없어서 그렇다? 그보다는 자연을 대하는 관점이 다르다고 느꼈어요. 히말라야에서 돌아오고 나서 저희 집이 편치 않은 것도 그래서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 쓸모 없는 것들이 많다고 느껴지더군요."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잡초 뽑기부터
말을 듣다보니 '건강론'부터 그냥 꺼낸 '수다'가 아닌 모양이었다.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 자신의 생명부터 존중하는 것이 먼저라는 걸, 그는 자신의 경험을 녹여 이미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네팔 사람들이 자연을 대하는 관점, 어쩌면 로하스 아카데미 '교장 선생님'이니까 보인 관점인 지도 모른다.
- 잡초를 뽑고 계셨다고 직원이 전하더군요."틈만 나면 그래요. 책상에만 앉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자주 돌아다니죠. 직원들에게도 자꾸 놀러가서 훼방 놓습니다(웃음)."
- 직원들이 싫어하겠습니다."히말라야 다녀와 보니까 (로하스 아카데미에 있는)단풍나무 새싹들이 나오다 오그라들어 있는 거예요. 단풍나무가 물을 좋아하는 수종이거든요. 자세히 살피지들 않은 거죠. 제가 막 난리를 쳤어요. 마침 그 날 비가 조금 왔었는데, 나무에 물 주라고 했죠. 강우량이 많지 않을 듯 해서요. 표면이 부드럽게 적셔지는 그런 날이 물 주기 좋거든요. 비 오는데 그러니까 직원들이 얼마나 싫었겠어요.
그런데 얼마 지나 보니까요. 오그라들었던 나무들이 화답하듯, 확 펴서 '쌩쌩하게' 자신의 색깔과 모양을 드러내고 있는 겁니다. 얼마나 정직한 화답이에요? 잡초 뽑는 것도 그렇죠. 애정을 가지면 보이잖아요. 한 3초만 지체해서 뽑으면 그걸로 많은 일이 끝나죠. 근원적으로 제거하는 것은 우리 일이잖아요. 조경회사 일이 아니죠. 무심하게 오가지 말라는, 자기 직무만 보지 말라는 무언의 시위인 셈이죠(웃음).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이란 것, 1차적으로 가족이나 동료 등 나와 가까운 사람에 대한 배려에서부터 출발합니다. 자꾸 들여다봐야 뭔가 보탬이 되고 어려울 때 서로 의지할 수 있잖아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뿐 아니라, 자연과 사람 사이에서도 그런 배려가 필요해요. 자연과 인간이 함께 공존하려면 이렇게 자꾸 들여다봐야 하는 거죠. 자연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해지는 거니까.
우리 인간이 너무 탐욕스러워서 해치는 것도 많고 잘 돌보지도 않죠. 내 이익 중심으로 모든 걸 판단하고 진행하잖아요. 그래서 자연인이란 말도 나오지만, 무슨 수염 기르고 산 속에서 도사처럼 살아야 자연인인가요? 나와 가까운 자연이 우리와 조화로운지 늘 살피는 것, 그렇게 자연을 바라보면서 나도 위로 받고 하는 것, 불과 몇 초면 되는 그것. 그게 자연인의 모습이죠. 자연으로 들어가야 자연인이 아니라, 나와 가까운 자연을 살피고 돌보는 사람이 자연인이라고 생각해요."
금연...왜? 셀프 리더십 강화하는 습관
물론 좋은 말이긴 했다. 하지만 일터에서 고유 업무를 하면서 '잡초'에도 신경을 쓴다? 정신적 노동 강도만 높이는 결과로 나타나기 십상이다. 몸에 좋은 약이 쓴 것도 맞지만, 울며 겨자 먹기가 고통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당위가 세상을 바꾸는 것 또한 '결코' 아니다. 로하스 아카데미의 '요체' 또한 이 지점에 있다는 것이 김 부사장의 말이었다. 그는 셀프 리더십을 강조했다.
"마음이 열려야 가능한 일이죠. 매일 가르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물론 태생적 자질이 큰 바탕이 되겠습니다만, 사회성을 갖춘 제2의 나, 이 부분은 교육으로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그 지점에 셀프 리더십이 있습니다. 리더십은 두 가지잖아요. 내가 타인을 끌고 가는 리더십이 있고, 동기 부여를 통해 스스로 자신을 끌어가는 셀프 리더십이 있어요. 한 개인으로 볼 때는 모두 자신의 리더잖아요. 여기(로하스 아카데미) 오는 사람들이 매년 5천∼6천명이 됩니다. 그들에게 바쁜 도시 생활에서 잠시라도 나를 찾고 새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기회, 적어도 자신의 살아가는 방식을 고민하게 만드는 기회가 생깁니다. 그럼으로써 셀프 리더십을 강화할 수 있고,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고 실행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일반적인 기업 연수원과 다른 지점이 그것입니다."왜 로하스 아카데미에서 엄격히 흡연을 금지하는지 알 것 같았다. 왜 '밥상머리 습관', '정리 정돈 습관', '스트레스 관리 습관' 등을 강조하는지도 짐작이 갔다. 좋은 습관은 사실 이기적(利己的)인 것이다. 생명 존중이나 이웃 사랑 또한 결국은 나한테 좋은 것이다. 그리고 좋은 습관만큼 셀프 리더십을 각성하게 만드는 '약'도 드물다. 이러한 '약'을 제공하는 직업인으로서의 소명 의식을 강조하는 바가 김 부사장의 '잡초 뽑기 시위'로 나타나는 셈이다.
"인간과 자연을 동시에 사랑하는 로하스, 건강과 지속 가능이란 두 단어로 표현할 수 있어요. 로하스의 의미를 우리가 먼저 찾고, 개인으로서 하나 둘 씩 실천하는 삶으로 바꿔 보자, 그 얘기죠. 그러려면 내가 먼저 실천해야 하잖아요. 실천하지 않는 말은 전달이 안 되니까요."그래도 기업이 더 빠르지 않을까요?
김 부사장은 "기업 구성원들이 본질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정신적 축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인으로서의 삶과 한 기업 조직원으로서의 조화를 이루는 축, 풀무원에게는 그것이 '로하스'가 되는 셈이다. 김 부사장은 "생명 존중과 이웃 사랑을 기본으로 자연인으로서 전문성을 가진 조직"이란 말로 풀무원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그리고 한 발 더 나아갔다.
"풀무원 직원들은 정기적으로 한 번씩 여기 와야 하니까, 그래서 깨달음을 얻은 풀무원 사람들의 가족, 형제, 이웃들도 그런 생각을 하는 계기가 된다면, 그것이 차라리 현실적으로 맞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무슨 뜻이죠?"우리 대부분 어딘가 소속돼서 일하잖아요. 로하스 아카데미를 많은 기업들이 벤치 마킹했으면 좋겠어요. 몇 십 만 평, 몇 천 억원 짜리 건물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거죠. 한 회사의 조직원으로서 내 삶이 사회적으로 어떻게 기여하는지 깨닫게 해 주는 것이 더 중요하잖아요. 정치적으로 또는 제도적으로 무슨 혁신을 해서 사회 문화가 조성되는 것보다는, 그게 훨씬 더 빠르지 않을까요? 내가 매일 많은 시간을 일하는 곳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 것 말이에요. 물론 경영자가 깨달아야 하는 문제이긴 하지만."
그래서 김 부사장의 마지막 이야기에는 동의하기 어려웠다. 기업의 덩치가 커질수록 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업 책임은 작아지는 듯 보이는 사회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김 부사장 이야기만으로 풀무원이 그런 회사는 아니라고, '초심을 대하는 농도'가 짙다고도 단정하기 어렵다. 그래도 풀무원의 '로하스'가 풀무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도 '이기적'인 것 또한 사실이었다. 풀무원의 기업 미션 '로하스 기업'을 주목하는 것도 그래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