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청소년 특별면 '너아니'에 실렸습니다. [편집자말] |
저는 필리핀 한국인 학교(Korean International School Philippines)에 다니고 있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입니다.
아버지 직장 때문에 일본에서도 살았고, 중학교 1학년을 마치고 가족이 필리핀으로 가게 되어 그곳의 사립학교를 다녔습니다. 한국에 3년 밖에 살지 않았지만 한국인의 자부심을 가지고 한류에 관심 있는 필리핀 친구들에게 한국의 문화를 알리는 데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대학만큼은 한국으로 진학하기 위하여 필리핀 한국인 학교로 전학하여 공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일을 마친 뒤 6개월 만에 필리핀 집에 오셨는데, 왼쪽 가슴에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45일이 지났는데 아직까지 노란 리본이 달려 있는 것이 의아해 아버지에게 그 의미를 물어보았습니다.
아버지는 기성세대의 잘못이 세월호 참사를 일으켰다고 하셨습니다. '빨리 빨리'에 익숙해진 기성세대는 고속성장의 주역이었지만, 그 이면의 관행과 부조리가 쌓여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제공하였다는 것입니다.
개인부터 국가까지 반성하고 생각을 바꾸는 노력이 없다면 제2의 세월호 참사는 또 일어날 수밖에 없기에, 아버지부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해 매일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면서 다짐을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필리핀에서 본 '세월호 참사'
4월 16일 수업이 끝난 후 친구가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세월호가 침몰했다는 기사를 알려주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대한민국은 배가 침몰하더라도 최첨단 기술과 장비로 금방 구조할 것이라고 생각을 하였고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이틀이 지나도 침몰한 배에 진입도 못하고, 해경과 해군이 아닌 민간회사가 주도가 되어 구조작업이 진행된다는 이해하지 못할 뉴스를 접했습니다. 4월 19일이 되어서야 구조소식이 아닌 내 나이 또래 학생들의 주검을 인양한 기사를 보고 매우 슬프고 화가 났습니다.
그토록 자랑스럽게 생각했던 대한민국에서 300명 이상이 바다에 빠졌는데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고, 배를 끝까지 지키면서 승객들을 탈출시켜야 할 선장이 제일 먼저 구조된 것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기관인 해경이나 해군이 구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회사가 구조를 하니, 많이 실망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3주 후, 필리핀 한국 대사관에 설치된 분향소에 한국학교 학생 전원이 가서 친구들의 넋을 위로하는 기도를 하였습니다. 교장 선생님께서는 "이번 사건을 교훈 삼아 안전한 나라를 만들자"고 말씀하셨습니다. 차가운 물속에서 죽어간 친구들이 너무 불쌍하고 슬펐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국가는 과연 나를 구해 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분향소에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들과 서로의 생각들을 나누었습니다. 한 친구는 "배의 개조에 문제가 있다"고 말했고, 다른 친구는 "화물칸에 너무 많은 화물을 실은 것이 문제가 되었다"고 말하였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삼등 항해사가 무리한 항해를 한 것이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건 정말 실망스럽고 안타까운 일이라고 공통적으로 밝혔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인해 한국에 대한 문제점과 좋지 않은 이미지가 머리에 남았지만 바쁜 고2의 일상으로 세월호 사건과 노란 리본의 의미는 점차 사라져 갔습니다.
노란리본의 의미, 마음 속에 새기겠습니다아버지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면서 교장 선생님의 가슴에도 아직까지 노란 리본이 달려있다는 생각이 났습니다. '교장 선생님도 또 다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노란 리본을 보면서 잊지 않고 다짐을 하고 계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신문기사를 보면서 깜짝 놀란 것은, 한국 정부의 무능과 한국 사회에 대한 실망으로 많은 사람들이 해외로 이민 가길 원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과연 '한국을 떠나는 것이 세월호 참사를 해결하는 방법일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대학 진학 후 한국에서의 삶을 꿈꾸며 설렘과 희망으로 고2 생활을 이기고 있는데,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한국을 떠나야 될 나라라고 생각하니 안타까운 마음이 앞섭니다.
저는 아버지와 교장선생님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의 의미를 마음 속에 새기고 그토록 살고 싶은 대한민국에 돌어가 세월호에서 죽어간 친구들의 꿈을 같이 이루어 나가는 삶을 살겠습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한국에서 다시는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부정과 부패가 없는 사회,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대한민국을 함께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