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 새벽,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 한 통에 잠이 확 달아났다. '현장상황'이란 머리말로 시작한 문자는 밀양 송전탑 '카톡방'에 올라온 글이었다. 장문의 글에서 다급함이 느껴졌다. 불길한 예감에 서둘러 인터넷과 SNS를 떠돌며 밀양 관련 정보를 찾아 헤맸다.
트위터에 올라온 사진을 통해 목격한, 쇠사슬을 몸에 칭칭 묶은 이는 분명 내가 아는 그 '덕촌할매'였다. 곁에 있던 수녀님의 허리춤에도 쇠사슬이 돌돌 감겨 있었다. 그 시각,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공유된 사진이었다. 순간, 숨이 '턱' 막혔다. 걱정도 앞섰지만, 두려움에 몸이 파르르 떨렸다. 그때, 포털 사이트에 이런 제목의 기사가 떴다.
'송전탑 농성장 경찰 2000명 투입... 주민 극렬 반발'지난 10일 회오리바람이 일산을 강타한 다음날, 경남 밀양 송전탑 건설예정지엔 공권력 '토네이도'가 휘몰아쳤다. 11일 오전 6시께 밀양시와 경찰, 한전 등이 행정대집행을 단행했다. 곧이어 경찰의 강제진압 과정을 담은 사진이 온라인에 주르륵 올라왔다. 그 사진을 내 눈으로 마주하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5개월여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하는 밀양의 얼굴들난 지난 1월 한 달 동안 밀양에 머물며, 송전탑 갈등 문제를 취재했다. 기억하건대 밀양은 '송전탑 갈등'만 빼면, 참 살기 좋은 동네였다. 지명 그대로 햇볕이 잘 들어서 한겨울임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졌다. 덕분에 내가 바리바리 챙겨간 내복은 짐 가방만 무겁게 만든 무용지물이 됐다.
시골의 정을 경험할 수도 있었다. 이따금 찾아간 도서관 근처 커피숍 아저씨는 얼굴을 알아보고 반겼고 허기를 달래준 식당에선 주인장의 후한 인심에 배가 불렀다. 고장 난 휴대폰 케이블을 새로 사러 갔다 물건이 없자 명함 한 장 달랑 받고 자기 것을 빌려준 휴대폰 대리점 아줌마, 파전을 부쳐주고 "갈 때 묵으라"며 주머니에 사과까지 찔러 넣어주던 할매 등... 모두, 5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하는 얼굴들이다.
특히 승객이 오를 때마다 안부를 묻던 버스기사의 얼굴은 송전탑 갈등을 빚기 전, 화목했던 마을주민들의 모습을 보는 듯해 가슴이 뭉클했다. 밀양에 가기 전 언론 등을 통해서만 본 밀양의 모습과는 달랐다.
밀양에 가서야 비로소 내 눈에 씌여 있던, '송전탑 갈등' 문제의 콩깍지가 벗겨졌다. 많은 이들이 '보상금을 더 받으려고 할매할배들이 떼를 쓰고 있다'고 헐뜯는다. 고백하건대, 나도 비슷한 마음과 생각을 품고 밀양으로 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없는 어르신들의 확성기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약 한 달 동안, 난 영화로만 보던 잔혹한 상황이 현실이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됐다. 할매와 할배들은 수십 년 동안 피와 땀으로 일군 재산을,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일방적으로 빼앗길 위기에 놓여 있었다. 사유재산권이 인정되는 나라에서 국가가 헐값에 국민재산을 거의 강제로 빼앗는 일을 아무렇지 않게 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갑질'이 횡행한 상황이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침몰하는 세월호를 넋 놓고 바라보던 그 정부와는 많이 달랐다. 같은 정부와 공권력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정반대였다. 공권력은 그 이름이 무색하게 할매들과 할배들에게 '폭력'에 가까운 칼날을 휘두르고 있었다.
끝나지 않은 밀양 잔혹사... 인권도 예의도 없던 그곳경찰과 주민들의 마찰이 빚어지는 날이면, 들것에 실려 병원으로 후송되는 주민이 부지수였다. 오죽하면 지정병원이 있었을까. 그 현장엔 인권은 고사하고 어르신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조차 없었다. 땅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할배, 사지가 붙들려 한참을 옴짝달싹 못하는 할매 등 경찰의 강제진압엔 남녀노소 구분이 없었다. 심지어 기자까지 경찰에 제압 당하기 일쑤였다.
아직도 생생하다. 할배에게 눈을 부릅뜨며 위협하던 그 경찰의 얼굴이, 할매를 향해 욕을 내뱉던 경찰의 입이, 어르신들을 짓밟고 누르던 경찰의 손과 발까지... 상상할 수 없는 이 잔인한 장면은 밀양-송전탑-경찰이란 단어와 함께 오버랩되는 모습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슴을 미어지게 하는 것은 5개월이 지난 지금, 밀양에서 더 잔혹한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밥 묵은나?"라며 볼 때마다 끼니를 챙겨주던 할매가 알몸 상태로 남성 경찰에게 연행되고 "추분데(추운데) 뭐 하러 또, 올라 왔노"라며 걱정해 주던 '덕촌할매'가 몸에 쇠사슬을 묶고 저항하는 '잔혹사'가 11일 새벽부터 이어졌다. 찾아가면 "요, 따순대로 오소"라며 전기장판 위로 이끌던 115번 움막의 어르신들, "들어와 뭐라도 묵고가라 카이"라며 손을 잡고 이끌던 129번의 움막의 어르신들에게 아마도 11일은 생에 가장 끔찍한 시간이었을 것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자정이 가까운 시간에도 계속해 밀양 '카톡방'은 바쁘게 울려댄다. "카톡왔숑"이란 알림소리가 버벅거릴 정도로… 늦은 밤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에선, 잔혹사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알리는 문자를 올렸다.
"101번 연대 1인 갈비뼈 심각하게 아파서 급히 헬기를 띄운 상황이며, 동화전 박은숙님은 의식이 없으신 상태입니다. 같이 후송될 것 같습니다. 농성막 주변으로 모든 사람이 끌려나와 고착되었으며, 한전직원이 주변 벌목과 철거를 동시에 하고 있습니다."11일 새벽, 밀양에 휘몰아친 공권력의 회오리바람이 당분간 지속될 것 같아 잠이 오지 않는다. 제발, 부디... 모두가 무사하길 간곡하게 바랄 뿐이다.
덧붙이는 글 | 정대희 기자는 2013년 12월 31일부터 2014년 1월 25일까지 밀양시에 머물면서 송전탑 갈등 문제를 다룬 '밀양리포트'를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