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비게이션을 찍어보니 목적지인 병천 아우 내까지 100km가 조금 넘는다고 안내된다. 친구와 만날 일이 있으면 그 먼 곳에서 달려왔고, 늦은 밤 또 그렇게 돌아간 친구를 생각하니 미안하다.
다른 이유는 없었다. 나는 직장에 매여있는 몸이고, 친구는 대안학교(아힘나평화학교)를 운영하면서 나름 자기의 시간을 나보다는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늘 그렇게 직장에 매여있는 친구들 때문에 만남의 장소는 서울이었던 것이다.
말년 휴가, 말이 휴가지 이미 휴직상태고 사무실에서 모든 짐을 정리해서 나왔으므로 실직자가 된 것이다. 그런데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일들과 해야 할 일들을 하나둘 진행하다 보니 출퇴근할 때보다 더 바쁜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 바쁨은 자발적 바쁨이므로, 느릿느릿과 통하고 그래서 행복하다.
출퇴근을 쉰 지 10여 일이 지났으니 예의상 그곳에 한 번 갈 때가 되었다. 친구는 수업 중이었고, 나는 학교를 둘러싸고 있는 숲으로 들어가 숲 그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참을 산들바람의 시원함을 느끼며 앉아있으니 이런저런 산새들이 경계를 풀고 다가온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딱딱한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었던 김 부장, 이젠 그가 그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숲에 앉아있다. 그러니 천국이 따로 없다.
하루 일과 중에서 학생들이 노동의 소중함을 나누는 시간이 있단다. 학생들이 가꾸는 텃밭을 정리하고 잡초도 뽑는다. 친구는 제초기를 들고 주변의 잡풀을 정리한다. 생소한 모습이다. 저 모습은 내가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모습인데, 친구에도 잘 어울린다.
그렇게 노동이 끝난 뒤, 등목한다. 등목, 그래 참 오랜만에 보는 모습이다.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그랬다. 사무실을 숲으로 옮기고 나니 오랜만에 보는 것들이 한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