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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꽃대
연꽃대 ⓒ 이상옥

        물을 뚫고 서다
              -이상옥의 디카시 <연꽃대>

윤선도는 벼슬살이에 염증을 느껴 제주도로 은거하기로 마음 먹고 항해 중 태풍을 만나 우연찮게 산수 수려한 보길도 부용동에 머물며 세연정, 세연지 등을 조성하여 풍류를 즐기며 어부사시사 같은 불후의 명작을 남겼다. 윤선도가 권력이나 명예를 계속 추구했다면 우리가 아는 윤선도는 없었을 것이다. 

윤선도의 '세연지'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야 어찌 윤선도 같은 호사는 누릴 수 있겠는가. 윤선도의 세연지와는 비교할 수조차 없는, 그래서 연못이라고는 명명하기도 부끄럽지만, 주말 시골집에서 종일 칩거하면서 윤선도 흉내라도 내볼까, 하여 지난해부터 시골집 마당에 조그만 연못을 조성해 놓고서는 그곳에 물고기를 기르고 수초를 가꾼다.

 돌과 시멘트로 조성한 조그만 연못에는 여러 수초들이 자리한 가운데, 창포꽃이 피었고, 하늘도 담겼다.
돌과 시멘트로 조성한 조그만 연못에는 여러 수초들이 자리한 가운데, 창포꽃이 피었고, 하늘도 담겼다. ⓒ 이상옥

연못을 시공할 때 집 철거 때 나오는 주춧돌, 구들장 등의 돌과 시멘트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물고기가 살기에는 너무 열악한 환경이었다. 연못에 물을 채우고 바로 물고기를 넣으면 시멘트 독 때문에 죽는다고 해서, 마음만 조급하였다. 빨리 연못 속에 물고기가 노니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연못에 물을 채우니, 처음에는 물이 많이 빠져나가서 다시 시공해야 하나, 걱정도 했다. 시공자가 비닐을 깔고 흙을 많이 채우고 그 위에 돌과 시멘트로 조성했기 때문에 처음에는 흙이 물을 많이 빨아 머금기 때문에 물이 빠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니, 좀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것이라고 말해서 좀 기다려 보기로 했다.

연못에 차츰 물이 빠지는 양이 줄어들면서 서서히 정상화되었다. 우선 연못에 물을 채우고 잉어 두 마리, 금붕어 세 마리를 넣었더니, 잘 적응하는 것이다. 이후 수초를 사서 심고 했던 것이 지난해 가을 무렵이었다. 모기 유충 등을 잡아먹는 미꾸라지도 넣고, 추가로 금붕어를 더 넣고 마을 앞 하천에서 다슬기, 고동 등도 잡아 넣었다.

작은 연못이지만 물 깊이가 1.5미터 정도 되고 해서 고기들이 살아가기에는 별 지장이 없었다. 지난해 겨울에는 며칠간 물이 꽁꽁 얼기도 했지만, 올해 봄이 되니 죽은 것 같았던 수초가 새 싹을 틔우고 금붕어 등도 잘 견뎌서 이제 연못은 제법 수초와 물고기 등이 한데 어울러 살아가는 생태환경공간으로 제법 자리를 잡았다.

봄부터 돋아나기 시작한 연꽃잎들 사이로 얼마 전에는 연꽃대가 하나 비죽 올라와 꽃봉오리를 맺었고, 창포꽃까지 피었다. 연못 둘레에 심은 호박이 쑥쑥 자라 연못을 더욱 풍요롭게 한다. 연못에는 실잠자리가 와서 짝짓기도 하고, 이 공간을 중심으로 수많은 생명체들이 새롭게 깃들고 있다.

 실잠자리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연꽃 잎에 앉았다.
실잠자리가 짝짓기를 하기 위해 연꽃 잎에 앉았다. ⓒ 이상옥

주말에 하루 종일 시골집에 칩거하며, 작은 슬라브집 테라스에서 연못 수초 사이로 물고기 노니는 것을 보고, 창포꽃과 비죽이 물을 뚫고 솟는 연꽃대를 보며, 차를 마시는 낭만을 즐긴다.

미리 은퇴를 연습 중인지도

아직 현직에서 은퇴한 것은 아니지만, 언젠가는 윤선도처럼 훌훌 벗어 던져 버리고 이 공간에서 은거하고 싶다. 지금 나는 미리 은퇴를 연습 중인지도 모른다. 은거하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 같은 시 한 수 건질 수 있다면야 무엇이 부러우랴.

덧붙이는 글 |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디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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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디카시연구소 대표로서 계간 '디카시'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고 있으며, 베트남 빈롱 소재 구룡대학교 외국인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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