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수정 : 23일 오전 8시 47분]강원도 22사단에서 총기 난사사고가 발생했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5명이 사망하고 7명이 부상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2005년 28사단에서 발생한 '김일병 사건' 후 9년 만에 또 다시 일어난 군대 내 참사이다.
2005년 사고에서는 김 일병이 근무를 마치고 돌아와 내무실에 수류탄과 K-1 소총을 난사하여 여러 명의 부대원이 숨졌다. 사망자와 부상자들은 대부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국군수도병원'으로 후송되었다. 시신은 '영현실'로 불리는 시체안치소로 옮겨지고, 부상자들은 병동에 입원수속을 밟고 치료를 받았다. 사고를 겪은 당사자 뿐만 아니라 전 국민에게 있어서도 이 사건은 충격적이었다. 사상자의 수로 본 사고 규모도 컸지만, 국군이 아군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수류탄을 투척한 사실은 그 자체로 큰 파장을 낳을 만 했다.
당시 사고는 이전까지 만연했던 군부대 안의 구타와 가혹행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이기도 했다. 김 일병이 부대 내에서 선임에게 반항하고 적응을 못한 것이 원인이었다고 군 수사결과 발표에 나왔지만, 김 일병이 고참의 질책에 앙심을 품고 사건을 일으켰다는 점도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 최소한 이전까지 '군대는 원래 그런 곳이니까' 라는 당위성을 갖고 자행되던 폭력이 조금이나마 움츠러들기 시작했다. 8명이 죽고 나서야 간신히 일어난 변화였다.
군병원에서 내가 목격한 것들
나는 2005년 당시 해당 군병원에서 복무 중이었다. 병원에서 의무병으로 일하면서 외래와 수술실을 오가며 의사인 군의관을 돕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그러면서 다양한 상황을 만났고, 많은 환자를 목격했다.
축구를 하다가 코뼈가 내려앉은 환자도 보았고, 차량 밑에 들어가 정비를 하던 도중 전신화상을 입어 온 몸을 붕대로 감은 사람도 만났다. 여름철 불어난 강물에 휩쓸린 동료를 구하러 들어갔다가 같이 익사한 병사의 시신도 안치되었고, 전역을 한 달 앞두고 사고로 팔이 절단된 소령도 보았다. 그리고 2005년 문제의 사건을 일으킨 용의자 '김일병'도 정신과병동에서 치료중인 것을 스치듯 지나가며 볼 수 있었다.
선임에게 폭행당한 병사도 많이 보았다. 뺨을 맞아 고막이 파열되었는가 하면, 온 몸에 멍이 들거나 심지어는 성폭행을 당한 경우도 있었다. 감정이 주된 원인이었지만 어느 병사는 '군기를 잡기 위해서'라고 폭행의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 '지위'와 '역할'이라는 것이, 때로 인간을 얼마나 망가뜨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하겠다.
온갖 사고를 당한 환자를 매일 봤었는데, 뉴스에 일일이 다 나오지 않을 뿐, 사망자는 매달 발생한다는 것을 그때 알게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매일 구급차 사이렌이 울려도 무심히 살아가듯이, 다들 잊고 지낼 뿐이랄까. 눈앞에서 벌어지는 일이 아니니 우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고 느끼는 것이다.
또한 자살시도도 많았다. 건물 옥상에서 뛰어내린 시신도 보았고, 총기를 사용해서 자살을 시도한 것도 흔했다. 어느날에는 턱 밑에 M-16 소총을 겨눈 뒤에 방아쇠를 당겼으나 공포탄이 발사되어 목숨을 건진 병사의 수술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수술이 끝난 뒤 군의관이 고충을 묻자 환자가 울음을 터뜨리며 죽고싶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당시에도 원인은 구타와 집단 따돌림이었다.
반복되는 군대 내 사고, 책임은 개인에게만?
사례는 그 외에도 수없이 많지만, 군대는 근본적인 해결보다는 부정적 이미지의 축적을 막고자 임시방편적 수습에만 매달리는 모양새였다. 2005년 총기사고 이후에도 구타가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군부대 안에서는 계급간의 권위를 악용한 폭행과 성범죄가 일어난다.
때로 폭로가 나오거나 사건이 드러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추측컨대 소수에 불과하고 전체적인 분위기는 입막음과 의도적인 무시에 가깝다. 군대라는 공간이 폐쇄적이고 원하는 순간에 떠날 수 없는 환경이기에 다들 내부고발 후폭풍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자신의 복무기간에만 별 탈이 없기를 바라며 시간이 얼른 흘러서 벗어나기만 하면 된다고 여기는, 마치 '시간폭탄 돌리기' 같은 나날이랄까. 군에서 지난 수십년 간 이어진 여러 건의 의문사들도 이런 요인들이 만들어낸 끔찍한 결과물인 셈이다.
매년 많은 병사와 장교들이 죽어나가도 단순한 사고로, 혹은 소양이 부족한 개인의 우발적인 범행으로 처리될 뿐 군과 정부는 시스템과 운영의 문제라고 스스로 인정한 적이 없다. 개선을 위한 노력은 여름철 잡초제거 하듯이 겉으로 드러난 부분만 다듬는 선에서 그치고, 문제는 다시 같은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서 반복된다. 원인을 덮어놓고 모른체하니 결과는 늘 비슷한 것이다.
결국 힘없는 한국 청년들만 처량한 신세로 덩그러니 남는다. 시간이 흐르고 사건은 잊혀지지만, 사고는 닮은 꼴로 다시 나타난다. 또 누가 희생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무사히 '만기 전역'하는 일은 '생존', 혹은 '살아남았다'라는 탄식과도 같은 뜻으로 연결된다.
권위를 빙자한 폭력이 자행되고, 그런 태도가 자연스럽게 벌어지도록 묵인되고, 사고가 터지면 당사자들만 처벌된다. 그리고 정작 고위층인 책임자들은 국방부 시계만 바라보는 격이다. 시침과 분침이 서둘러 움직이면서 사건이 잊히기를 바랄 뿐인 듯 보이는 것이다. 그것이 의문사로 귀결되든, 아니면 가해자와 피해자의 구도가 선명하게 드러나든 결과는 늘 마찬가지이다. 집단에 소속된 것은 개인의 선택이 아닌 의무였건만, 사고의 책임은 집단이 아니라 개인에게 전가되는 격이다.
김일병의 데자뷔, 이제는 그만21일 오후에 발생한 22사단 총기난사 사고의 소식을 접한 순간, 나는 2005년 보았던 김 일병을 떠올렸다. 짧은 순간 본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는 없는 것이지만, 내가 본 그는 검은 뿔테안경을 쓰고 까까머리를 한 평범한 한국의 20대 청년이었다.
소심하고 주눅들어 보였지만,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에 그를 차가운 살인귀처럼 그려냈던 언론의 묘사와는 달리 뿔달린 악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어찌 보면 김 일병 역시도 군대라는 비정상적인 환경에 놓인 약한 개인이었고, 상황의 무게를 못 견딘 희생양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것이 그가 저지른 범행을 정당화하진 않는다. 분명 당시 사건에서 책임은 김 일병에게 있다. 설령 선임들이 그를 심하게 질책하고 구타했다 해도, 그것이 총기를 난사한 행동에 면죄부를 주지는 못한다. 다만 이런 사건이 한 번으로 그치지 않고 수차례 비슷한 양상으로 반복된다면, 그건 분명 집단과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반증이 아닐까?
군대 내의 정신교육에서는 늘 "군인은 '영광스러운'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는 논리를 설파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정부와 군은 모든 국민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마땅하다. '인민을 소모품으로 생각하는' 북한과 한국을 비교했을 때, 가장 큰 차이점이 한국은 사람의 가치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전시와 같은 상황이 아닌 불필요한 희생일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더 이상 이런 사고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전과는 다른 해결책이 필요하다. 그 해결책이라는 것은 군 내부의 비리척결 및 투명화를 위해 유럽연합의 독일처럼 군인노조를 결성하는 것일 수도 있고, 군 징병을 점차적으로 완화하며 모병제를 고려하는 방향일 수도 있다. 이를 위해서는 북한과의 평화로운 상황이 필수적이고, 강경책만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적절히 추진하는 태도가 더 필요할 것이다.
2005년 11월의 어느날, 나는 아침밥을 먹고 나서 뉴스에서 김 일병의 사형선고 보도를 들었다. 그리고 어느샌가 그와 관련된 소식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그 뒤로 다시 마주할 일이 없을 것만 같던 사고가 2014년에 발생하니, 마치 김 일병의 데자뷔를 보는 것 같다. 이제는 이런 사고로 아찔한 감정을 겪는 일은, 희생된 사람의 수가 그렇듯이 이미 충분히 많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정부와 군이 이번만큼은 '비정상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제도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문제를 근본적으로 고쳐나가는 모습을 확실히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것은 '비정상인 부분을 정상적이게끔' 믿게 만드는 일이 아니라 사고의 원인을 구체적이고도 세밀하게 파악해야 가능한 변화일 것이다. 그리고 부탁하건대 사건이 잊혀지기를 바라며 입을 다물고 국방부 시계만을 바라보는 태도만큼은, 이제 그만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