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단 하나뿐인 기타를 만들고 가르치고... 후회는 없어요."국어 교사와 은행원이라는 직업을 뒤로 하고 기타를 선택한 사람들이 있다. 한 사람은 기타를 배우기 위해 저 멀리 미국에 유학까지 갔다 왔다. 그리고 몇 년이 흐른 지금 그들은 부산에서 터를 잡고 수제기타 공방과 함께 국내에서 처음으로 기타 제작자 양성 기관 설립을 꿈꾸고 있다.
바로 부산기타문화원의 변경훈(35) 대표와 최태진(37) 제작자 이야기다. 두 사람은 설립 2년째를 맞는 부산기타문화원을 기타제작자 양성 아카데미이자 소외계층에게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는 곳으로 키워나가고 있다. 부산기타문화원은 '나무공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부산에서 하이엔드 스틸스트링 기타(통기타)를 제작하는 곳은 부산기타문화원이 유일하다. 특히 고급 통기타를 제작하는 개인공방은 전국을 통틀어도 한손에 꼽을 정도로 드물다고 한다. 부산기타문화원은 국내 최초로 정식 기타제작학교 설립이 목표다.
그런 만큼 기타 제작은 일반인에게 생소한 분야다. 기자는 지난 20일 변경훈 대표와 최태진 제작자를 부산 만덕에 위치한 부산기타문화원에서 만났다. 변경훈 대표는 경영을 맡아 일반인과 기업을 상대로 하는 대외활동을 주로 담당하고, 최태진 제작자는 문화원에서 제작 및 연주 교육을 한다. 수강료가 있는 엄연한 아카데미다.
두 사람은 18년 전인 1997년 부산의 대학교 음악동아리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동아리는 순수창작음악을 추구했고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그 관계가 이어져왔다. 이후 최태진 제작자는 중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변경훈 대표는 은행원이 됐다. 하지만 마음 속에 음악을 하고 싶다는 갈증은 계속됐고, 결국 최태진 제작자는 현실보다는 음악이라는 꿈을 선택하게 됐다.
최태진 제작자는 기타 제작자의 길을 가기 위해 2010년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캘리포니아 유명 기타제작가인 마이클 피터스(Michael Peters)를 만나 정식으로 사사하고, LA 근교도시 한 주택 차고에서 제작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세계적인 기타 장인 케빈 라이언(Kevin Ryan)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변경훈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평범한 은행원 생활을 하며 젊은 나이에 팀장으로 승진까지 하고 인정 받았다. 하지만 틀에 박힌 금융권 생활이 몸에 맞지 않고, 뭔가 아이디어를 내어 새롭게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아 2008년 12월 건설IT 개발회사를 창업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릴 적 꿈을 좇아 독학으로 기타를 만드는 방법을 익히게 된 것이다.
결국 서로가 갖고 있던 꿈이 기타였고, 자연스레 공방을 함께 만들기로 의기투합했다. 이후 최태진 제작자가 2013년 초, 한국으로 귀국하면서 함께 부산기타문화원의 설립이 시작 되었다.
"한국 최초 정식 기타제작학교 설립이 목적"
최태진 제작자는 아예 부산기타문화원 공방에서 24시간 생활한다. 숙식하며 매일 12시간 이상 기타를 제작하고 있으며, 수강생들에게 제작 교육 및 연주 레슨을 한다. 또한 인터넷에서 'TJ기타'라는 카페를 운영하는데 깊이 있고 전문적인 기타 관련 칼럼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변경훈 대표는 부산기타문화원의 외형을 넓히는 일을 맡고 있다. 부산 문화 관계 기관을 만나 자신들의 취지를 설명하고 알리는 일에 열중이다. 변경훈 대표는 부산기타문화원을 기타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문 제작자 양성, 공유경제 개념을 도입한 작업장 공유, 통기타 공연기획,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제작체험교실, 관광자원 등을 부산지역에서 만들어가고자 한다.
변 대표는 "한국 최초로 정식 기타제작학교를 설립하는 것이 목적"이라며 "처음 기타 제작을 하기로 맘을 먹고 난 후, 기타 제작에 관련된 국내 인프라가 없음을 알게 돼서 놀랐다. 국내에서 기계장비와 재료를 구하는 것이 어려웠고, 외국 제작학교처럼 체계적인 커리큘럼을 갖춘 기관조차 없었다. 그렇기에 처음으로 이 같은 전문제작학교를 생각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때부터 두 사람은 척박한 상황에서 기계를 마련하는 것을 비롯해 재료를 구하는 일, 제작법 등을 하나하나 준비해 왔다. 이 같은 과정들로 쌓인 노하우를 다른 사람들이 접근하기 쉽도록 알리는 역할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부산기타문화원은 지난해 4월 부산 진구 전포동에서 임시로 문을 열었고, 그 해 6월 부산 북구 만덕동에 위치한 공방에서 정식으로 시작했다.
최태진 제작자는 "한때 전 세계 제작 물량의 상당수가 한국에서 생산이 될 정도로 기타제작이 활발한 시기가 있었는데, 제조산업 자체가 값싼 노동력을 기반으로 하는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국내 생산이 크게 위축되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많은 연주자들이 한국산 하이엔드 기타, 고 퀼리티 기타의 열망이 강하지만 그에 부응하는 제작자나 악기가 부족한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개인적으로 뛰어난 기타를 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수한 악기를 제작해낼 수 있는 제작자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기에 부산기타문화원을 만드는 데 동참하게 됐다. 전직 교사 출신이기에 좀 더 체계적인 교육과정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제작자 10명이 함께 쓰는 공장 만드는 게 목표현재까지 부산기타문화원에서는 2명이 수료했고, 현재 4명이 제작 과정을 배우고 있다. 배우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오는 상태라 더 많은 사람들이 효율적으로 수업을 받을 수 있게 좀 더 넓은 공간을 물색 중이다. 현재 위치한 공방은 더 많은 사람이 배우기엔 협소하기 때문이다.
부산기타문화원은 제작자 양성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그 이후 제작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인큐베이팅에도 신경을 쓰고 있다. 현재 배출된 제작자들 모두 각자 개인공방을 열고 창업하기에는 비용이 많이 들고 여건이 쉽지 않다. 그래서 생각해낸 게 바로 공방을 함께 쓰자는 것이다. 공장 시설을 공유하는 개념이다. 요즘 이슈가 되는 공유경제 취지와 부합하는 이른바 '공유공장'인 셈이다.
변 대표는 "이 방식은 제작자가 10명이면 그 모두가 공장을 만들 필요가 없다. 이미 구축된 공장 시설을 함께 쓰면서 자기만의 악기를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집중 시키는 방식이다. 실제로 부산기타문화원에서 배출한 제작자들이 이런 방식으로 지금 기타를 만들기 위해 준비 중이다"라고 말했다.
변 대표는 이어 "실제 외국의 경우 기타제작학교 수업료만 6개월에 약 2천만 원 가량의 비용이 든다"며 "국내에는 이렇게 큰 비용을 내고 제작 기술을 배우기엔 부담이 많은 게 현실이다. 부산기타문화원은 좀 더 합리적인 비용으로 제작희망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모색 중에 있다"고 말했다. 변 대표에 따르면 월 수업료는 30만 원 선이란다.
부산기타문화원은 전문가들만의 공간은 아니다. 기타와 우쿨렐레를 직접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DIY KIT을 활용한 제작법도 가르쳐 주는 체험교실도 운영한다.
이에 대해 최태진 제작자는 "실제로 자기만의 악기를 가지고 싶다는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변경훈 대표도 "(체험교실을 운영해 보니) 그 과정이 길고 힘들었을 텐데, 처음 하는 작업임에도 몰입하며 행복해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뿌듯했다"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제작 체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이 마련되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우리가 만든 기타, 에릭 클랩튼이 시연하는 날 올것"체험교실 참가자들은 직접 만든 악기로 연습을 해서 연주회도 열 계획이다. 즉, 참가자들이 악기제작을 시작으로 악기연주 강습을 거쳐 마지막 공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문화 활동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일련의 과정을 일반인들에게 제공하는 게 부산기타문화원의 꿈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부산기타문화원은 관광자원으로도 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변경훈 대표는 "세계 최고의 기타 브랜드인 미국 테일러사(Taylor Guitars)는 매일 기타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인뿐만 아니라, 전 세계 기타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도 부산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제작공장을 안내하고 기타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설명하는 등 관광자원으로 제공하려고 한다. 일반인들에게는 신선한 경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것을 두 사람의 개인이 부산에서 만들어 나가는 것은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부산에 기반을 둔 기관과 기업들을 찾아가서 공간과 후원을 요청하기도 했다고 변 대표는 귀띔했다.
또 부산기타문화원은 사회적 약자들인 장애인과 기댈 곳 없는 청소년들의 경제적 자립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 장기적인 목표를 세우고 부산에 기반을 둔 기관과 기업의 관심을 기대하고 있다.
변경훈 대표는 "얼마 전 한 지역의 한 고아원 원장이 찾아와 청소년들이 만 18세가 되면 30만원의 돈을 받고 퇴원을 해야 하는데 그 아이들이 갈 곳이 마땅히 없다며, 이 아이들을 받아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들은 후, 그 아이들이 와서 배우고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부산기타문화원의 궁극적인 목적 중에 하나가 되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울산, 경북 경산과 포항 등지에서 제작법을 배우기 위해 수강생들이 찾아왔다. 유명 기타공장 직원도 제작 기술을 배우기 위해 찾아올 정도다. 기타수리 전문점을 준비하는 사람도 기타제작과정 수업을 듣고 있다.
7080세대의 문화의 상징인 기타. 변경훈 대표와 최태진 제작자는 자신들이 만든 기타를 통해 희망을 본다.
앞으로 부산기타문화원은 외국인 유학생도 받을 계획이다.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름난 기타제작학교가 되는 게 목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 학교에서 배출된 제작자들이 실력을 인정받아 전문가로서 커 가는 것에 대한 지원도 아끼지 않을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변경훈 대표는 "우리가 만든 기타를 세계 최고의 기타리스트인 에릭 클랩튼(Eric Clapton)이 시연하고, 부산기타문화원 출신 학생들이 장인으로 인정받고, 외국인들이 찾아와 수업을 받는 그 날을 꿈꾸고 있다"며 기타에 자신의 꿈을 불어 넣었다.
덧붙이는 글 | 부산기타문화원 페이스북-https://www.facebook.com/namoofac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