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늘은 6·25전쟁 발발일이다. 발발일을 전쟁의 이름으로 사용하는 예는 세계적으로 없다지만, 우리는 1950년 6월 25일 한반도에서 시작된 전쟁을 '6.25전쟁'이라 부르고 있다. 그것도 본래는 '사변' 또는 '동란' 등 비사회과학적인 용어를 쓰다가 그렇게 바뀌었다. 물론 외국에서는 우리의 6·25전쟁을 한국전쟁이라 호칭한다고 한다.

사정이 그런 까닭에, 6·25가 언제 끝났는지를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명목상으로는 휴전 중이니 전쟁이 종료되었다고 말할 수도 없겠지만, 1953년 7월 27일은 잊혀진 날이 되고 말았다(필자가 2009년 6월 15일부터 22일까지 대구 시내 27개 중고등학교 학생 998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해보았을 때에도 휴전일을 아는 비율은 0.2%에 불과했다. 단 2명만이 알고 있었다. 6·25 발발 연도인 1950년을 알지 못하는 학생도 40.8%나 되었다).

 육군사관학교가 발간한 <전쟁사 부도>는 1950년 8월 당시의 유학산 일대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육군사관학교가 발간한 <전쟁사 부도>는 1950년 8월 당시의 유학산 일대 전투가 얼마나 치열했는가를 잘 보여준다. ⓒ 육군사관학교

12일 동안 주인이 15번 바뀌었던 유학산

대구에서 가까운 6·25 역사체험지는 단연 경상북도 칠곡군 다부동이다. 이곳의 유학산은 백마고지와 더불어 6·25 당시 2대 격전지로 여겨질 만큼 치열한 전쟁터였다. 대구에서 22km밖에 안 되는 유학산은 지리적 조건상 빼앗기면 이내 대구까지 점령당하게 되는 곳이었으므로, 1950년 8월 당시 12일 동안에 주인이 15번이나 바뀔 정도로 피비린내나는 싸움이 벌어졌다.

유학산 전투의 승리로 북한군은 더 이상 내려오지 못했고, 곧 이어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그들은 후퇴하기 시작했다. 유엔군과 국군은 낙동강 방어선을 뒤로 한 채 북진했고, 끝내는 압록강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이 유학산 전투를 담은 노래가 바로 1951년에 나온 <전우야 잘 자라>(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이다.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낙동강아 잘 있거라 우리는 전진한다
원한이여 피에 맺힌 적군을 무찌르고서
꽃잎처럼 떨어져간 전우야 잘 자라 

 유학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다부동, 전쟁의 상흔은 잊었는지 그저 평화롭게만 보인다.
유학산을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는 다부동, 전쟁의 상흔은 잊었는지 그저 평화롭게만 보인다. ⓒ 정만진

이곳에서는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먼저 둘러볼 일이다. 탱크 모양의 건물 자체가 특이하다. 건물 뜰에 있는 조지훈 시비도 빠뜨릴 수 없는 볼거리이다. 조지훈은 전쟁 당시의 강산을 '살아있던 사람이 간고등어 냄새로 썩고 있고, 죽은 자도 산 자도 편안히 쉴 수 없는 땅'이라고 절규하고 있다.

다부동 전적기념관을 둘러보는 것으로 이곳 답사를 마쳐서는 안 된다. 그래서는 '체험학습'이 못 된다. 유학산을 직접 올라보는 것이 핵심이다. 전적기념관에서 유학산 정상(839m)을 거쳐 반대편의 도봉사 도로까지 이어지는 등산로는 대략 6km 정도로, 평범한 걸음걸이로 오르내린다면 2시간 30분가량 걸린다. 어린 학도병을 중심으로 며칠 동안에 수 만 명이 죽은 이곳을 직접 걸어보는 일, 그것이야말로 역사체험이라 할 것이다.

 북한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 1950년 8월 3일 미군이 폭파했던 구 왜관 철교.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걸어서 오갈 수 있도록 재단장되어 있다.
북한군의 도강을 막기 위해 1950년 8월 3일 미군이 폭파했던 구 왜관 철교. 지금은 기차가 다니지 않고 사람들이 걸어서 오갈 수 있도록 재단장되어 있다. ⓒ 정만진

1950년 8월 3일 폭파되었던 왜관 '호국의 다리'

다부동 전적기념관과 유학산 등산을 마친 후 가볼 만한 곳은 왜관 '호국의 다리'이다. 물론 다부동과 다리 사이에 있는 왜관지구 전적기념관도 들를 만하다. 다만 전시 내용이 다부동의 것과 대동소이하기 때문에 크게 호기심을 자극하지는 못한다.

'호국의 다리'라는 영예로운 이름을 얻은 왜관철교는 지금은 사람들이 걸어다닐 수 있도록 재단장되어 있다. 이 철길을 걸어서 왕복해보는 것도 역사여행자다운 행동이다. 1950년 8월 3일, 밀려오는 북한군을 방어하기 위해 미군이 폭파했던 다리, 이곳은 기념촬영 필수지이다.

 계성학교 교정의 2군창설기념비
계성학교 교정의 2군창설기념비 ⓒ 정만진

대구 시내에는 6·25체험답사지라 할 만한 곳이 거의 없다. 전쟁 당시 북한군이 대구 시내까지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단 한 곳의 답사지도 없다면 서운할 터, 중구 대신동 서문시장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계성학교 교정을 둘러볼 일이다.

이곳에는 '2군 창설비'가 있다. 1950년 당시 이승만 정부는 7월 16일 대구까지 밀려왔고, 시내 곳곳의 학교 건물은 군대 막사로 사용되었다. 7월 21일에는 계성학교 운동장에서 북의 남침을 규탄하는 집회도 열렸다. 그리고 1954년 10월 31일, 이 학교 교정에서 2군사령부가 창설되었다. 학교 교문을 들어서서 50계단으로 올라가기 직전에 왼쪽을 바라보면 나무 아래에 창설 기념비가 서 있다.

포항 학도의용군 기념관, 꼭 가볼 곳

대구에서 조금 멀리 가자면 포항 학도의용군 전승기념관이 있다. 기념관 뒤편의 탑산을 오르면 기념탑 두 기가 세워져 있으며, 포항여고 정문 앞에도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이런 곳을 찾으면 1950년 당시 전쟁터에서 생활했던 학생들의 얼굴이 문득 <전선야곡> (유호 작사, 박시춘 작곡, 1950년)을 배경으로 아련히 떠오른다.

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
소리 없이 내리는 이슬도 차가운데
단잠을 못 이루고 돌아눕는 귓가에
장부의 길 일러주신 어머님의 목소리
아 아 아 그 목소리 그리워……

 포항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의 입구 광경
포항 학도의용군전승기념관의 입구 광경 ⓒ 정만진



#다부동#유학산#호국의다리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