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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 대통령은 마치 짐이 곧 국가라는 전제군주 같은 생각을 가진 것 같다. 혼자서 국가를 대개조하겠다고 하지를 않나, 수십 년간 바다를 지켜온 해양경찰을 없애버리겠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세월호 침몰로 300명 이상을 고스란히 수장한 정부의 무능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한 총리를 다시 유임시키겠다고 해서 말썽이다.

세월호 참사와 GOP 동료병사 사살이라는 엄청난 재난과 기강해이, 연이은 인사 오류에 대해서는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아니 누구도 책임을 지울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다. 국민들은 아우성이지만 청와대까지 그 소리가 닿지 않는다. 바꾸고 고치자는 여론이 비등하고 정치권이 반대하면 그것을 반영하여 바꾸고 고치면 될 일을 대통령은 한사코 거부하는 양상이다. 침대가 짧으면 긴 침대가 필요한 것이지 대신 환자의 다리를 잘라버려서는 안 되는데 말이다.

그러다보니 그 존재감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것은 결코 힘없는 야당만이 아니다. 오직 청와대만 쳐다보는 거대 집권 여당까지다. 삼권분립도 이미 사라진 느낌이다. 대법관 출신을 데려다 행정부 관리로 자주 쓰는 행태는 말할 것도 없다. 이른바 제왕적 권력을 가졌다는 대통령 중심제의 대통령에게 아집과 독선이 더해지면 나라가 끝장나기 전에는 고칠 길이 없어지는 예를 칼 뢰벤슈타인은 '신 대통령제'라고 비꼰 적이 있다. 무너진 남미 국가들을 가리킨 것이다. 우리의 지금은 그것과 다르다고 보려는 것은 알량한 자위일까?

지금은 1987년 6·10 이전처럼 젊은이들이 거리로 나서서 피투성이가 되고, 시민들이 일상을 최루탄 속에 살아갈 수만은 없다. 우리의 국격이 그 수준은 넘어섰다고 주장하자는 것이 아니다. 정권을 퇴진시키고, 대통령을 끌어내려 그 머리통을 시궁창에 처박는 챠우체스크 루마니아 같은 후진적 정치행태는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 된다. 지금은 지금대로의 시대정신이 있듯이 지금대로의 해법이 모색되어야 한다. 나는 그 해법이 법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그럼 어떻게 법으로 돌아갈 것인가?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의 행위를 하나하나 법과 원칙에 따라 평가하고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그것은 법보다는 정과 의를 따지는 우리 한민족이 생각건대, 결코 바람직한 것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시대상황이 그것을 요구하는데 어쩔 것인가.

아주 줄여서 말한다면 사법기관에게 정치행위를 그 판단의 대상으로 삼게 하자는 것이다. 말하자면 칼 맑스가 극단의 법치주의를 비꼬아 말한 '법물신주의'가 이 나라에 살아 춤추게 하자는 것이다.

이와 같은 주장에 설득력을 더해주고, 고무적인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사실 법을 매우 좋아 하고, 중히 여기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라든지, 대선 때부터 자주 쓰는 이른바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리자는 말이 그것이다. 법과 원칙대로 하자는 것 아닌가. 게다가 '우리가 남이가'로 유명한 전 법무장관이 지금 비서실장이다. 정홍원 총리도 검사출신, 실패한 총리지명자 안대희 씨도 대법관 출신이다. 그러니 대통령은 사실 법기술자들을 믿고 그들의 법적인 평가와 판단에 의존한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법으로 돌아가는 첫 단계로, 나는 이번 이른바 정홍원 총리 유임문제부터 법적으로 따져야 한다고 본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 대통령은 모든 것을 그 전과 달리 하겠다고 국민 앞에 눈물을 흘려가며 선언을 하였기 때문에 모든 것을 이전과 달리 보고 다르게 생각하리라고 믿었다.

박 대통령은 정홍원 총리의 사표 수리를 기정사실화 하면서 후임 총리에 안대희 전 대법관을 총리에 지명하고 국회에 임명동의안과 인사 청문 요청서를 제출했고, 안 후보가 낙마하자 다시 후임에 문창극씨를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가 역시 자진사퇴하자 정홍원 총리를 재신임한다며 유임이라고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두고 "정홍원 총리 유임이 아니라, '후임 총리후보를 지명한 것'으로 국회 인사청문회와 임명동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라 나온다. 판사 출신인 박범계 새정치민주연합 법률위원장과 이석현 국회 부의장이 제기한 논란이다.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박찬운 교수 역시 유임이 아니라 새로운 총리를 임명한 것이라고 한다. 법률가들로서 당연한 문제제기다.

세월호 침몰 후 정홍원 총리기 사의를 표명한 기자회견 6시간 뒤에, 청와대 민경욱 대변인은 "박근혜 대통령께서는 정홍원 국무총리가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한 것에 대해 수리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다만 "그러나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구조작업과 사고 수습으로, 이것이 최우선이기 때문에 사고 수습 이후에 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후 청와대는 5월 26일 안대희 총리 내정자에 대한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했으나, 그가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받은 고액수임료와 전관예우 논란으로 결국 5월 28일 자진사퇴하였다. 그러자, 청와대는 지난 6월 10일 국무총리 후보자에 문창극씨를 내정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문창극 지명자에 대해서 임명동의안과 인사청문요청서를 국회에 제출하지도 못했다.

모양새는 문씨의 자진사퇴지만 그것이 자발적이라고 보는 이는 있다 하여도 극히 적다. 그런데 청와대 윤두현 홍보수석은 26일 브리핑을 통해 "지금 시급히 추진해야 할 국정과제들이 산적해 있지만, 청문회 과정에서 노출된 여러 문제들로 인해 국정공백과 국론 분열이 매우 큰 상황"이라며 "대통령께서는 이런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어 고심 끝에 오늘 정홍원 국무총리의 사의를 반려하고, 국무총리로서 사명감을 갖고 계속 헌신해 줄 것을 당부했다"고 발표했다.

여기서 이 청와대의 이른바 '정홍원 유임' 발표가 사표만 내고 수리 안 된 총리를 주저 앉혀 계속 일하게 한 것이냐, 아니면 이미 사표가 수리된 정홍원씨를 다시 새 총리로 임명한 것이냐가 문제다.

이에 대한 쟁점은 정홍원 총리의 사의표명과 대통령의 '수리하겠다'는 국민을 향한 말, 그리고 그 뒤의 안대희 지명, 문창극 지명과 자진 사퇴를 기다린 일련의 행위가 정홍원 총리의 사퇴의사 표명과 어떤 관계에 있느냐 하는 것이 되겠다.

박찬운 교수가 적절히도 지적한 바와 같이, 대통령이 정홍원씨의 총리직 사표를 받아 들였는가에 아니면 사표를 아직 받지 않고 미루었던 것인가를 판단하는 가늠자이다. 만약, 박 교수의 말대로 그렇다면, 임명권자는 총리를 이미 경질하고 새로이 지명한 것이 된다. 그렇지 않다면, 다시 말해 박 교수 말과 달리 아직 수리하지 아니하고 머뭇거리고 있었던(?) 것이라고 한다면, 정홍원씨는 청와대의 말처럼 '장고 끝에 고뇌에 찬 결단으로' 유임된 것에 불과하게 된다.

사표낸 총리를 두 달 넘게 임시로 일하게 하고 사표를 되돌려 준 전례없는 경우가 되는 것이다. 나아가서 문제는 만약, 박 교수의 말대로 이미 사표가 수리된 것으로 본다면, 정홍원 씨에 대한 '유임'은 청와대의 의도나 표현과는 달리, 엄연한 법 위반이 된다. 즉, 국회 청문 절차를 건너 뛴 헌법위반이고 국회무시의 행위가 된다.

결국, 문제는 정홍원씨의 사표 제출 다음 청와대와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행위 과정이 이른바 사표의 수리행위에 해당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변에 귀착한다. 본래 강학상 어떤 의사표시는 표백(表白), 발신(發信), 도달(到達) 그리고 요지(了知)라는 단계를 거친다고 본다. 또 민법은 의사표시가 도달함으로써 그 본래적 효력을 발생하는 것을 원칙으로 정해 두었다.

공무원을 임명하는 행위 역시 본질상 민간 근로관계의 설정이나 종료에 크게 다를 바 없어서, 고용주와 근로자간에 의사의 합치로 시작되고 끝난다. 총리 임명은 임명장 수여로서, 해임은 사표 제출과 그것을 임면권자가 수리하는 행위로써 완성된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국무총리에 대한 대통령의 사표수리는 어떤 형식을 거쳐야 하는가.

문자 그대로 "당신의 사표를 수리한다" 라는 말을 해야만 끝난다고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임면권자의 다른 어떤 언행이 사회적이고 객관적으로 당신의 사표를 수리한다는 취지로 이해될 수 있는 수준일 때 그것은 완성되었다고 보면 되는 것이다. 이 사안에서는 정홍원 씨의 사퇴의사 표명 이후 대통령이 취한 일련의 조치들과 청와대의 행위가 이러한 수리한다는 의사를 미루어 짐작케 하는 행위에 해당하느냐가 결정적 기준이다.

이러한 쟁점을 최종적으로 판단할 주체는 법원이다. 물론, 사법부는 전통적으로 이른바 정치적 사안에 대하여 자기 제약적이다. 이른바 통치행위라는 것도 그렇고, 민감한 정치적 문제를 법원이 사법통제의 대상이 아니라 하여 재판하지 않고 차버리는 (이른바 각하) 경우는 흔했다. 더구나 지금 우리 법원이 총리 유임, 새로운 임명의 문제에 대하여 이런 소극적 자세를 취하지 않을 것이란 것은 속단일 수 있다. 그러나 법원은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존중하여야 한다. 재판에 회부된 사안을 법과 원칙에 따라 재판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정치권과 법원에 정중히 권고한다. 이 문제를 재판으로 가져가고, 법대로 재판하라고. 슬그머니 정치적으로 뭉개지 말기를 바란다. 그러면 조용히 문제가 풀릴 것이다.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결과에 따라서 책임질 일을 한 자는 책임을 지면된다. 그 책임은 국회의원들이 더 잘 알 것이다. 이 문제를 필두로 첨예하게 대립하는 정치적 사안 건 건을 하나하나 재판으로 풀어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보아서 나는 '대한민국, 법으로 돌아가라'고 외치는 것이다.


#박범계#총리 유임#청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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