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여름의 끝자락엔 일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1년 전 여름엔 완벽히 한국으로 돌아왔다. 11개월간 사진으로 남긴 기록은 서랍 한쪽에, 소중했던 추억은 마음 한쪽에 넣어두었다.
그리고 며칠 전, 1년 좀 덜 된, 아직은 어린 일기를 펼쳤다. 나가사키에 발을 디뎠던 그때 썼던 일기! 일기를 읽고 있자니 잊고 있던 기억이 하나씩 다가왔다. 좋아했던 곳, 그때의 결심, 결심이 무색하리만큼 빠르게 나태해졌던 나, 그래도 자유만큼은 확실했던 나날 등등…. 어떤 길을 가도 처음인 곳이 많았기에 걷기를 좋아했었다. 그래서 날 좋은 오늘 같은 날이면, 나가사키가 더 그리워진다.
내가 좋아한 길① 메가네바시
늘 다니지는 않았지만, 꽤 좋아했던 곳이 있다. 바로 관광지로도 꽤 유명한 '메가네바시'이다. 물에 비친 모습이 안경 같다고 해 지어진 이름이다. 볼 것은 그뿐이지만, 날씨에 따라 안경처럼 보이는 정도가 달라 여러 번 찾아도 매력적이다.
메가네바시 앞뒤로 이어진 몇 개의 다리를 따라 걷는 길이 좋았고옆에서 팔던 꽃 모양 치린치린 아이스크림도 좋았고메가네바시가 내다보이는 3대째 내려오는 오야지(죽) 정식 집도 좋았고혼자 여유롭게 걷던 그때가 좋았고내 두 번째 룸메이트랑 나가사키 분교 카타우치에서부터 걸어오던 그때도 좋았다.그다지 특별지 않기에 대단한 관광을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는 곳이지만, 소소한 여유를 즐길 줄 아는 이라면 분명 이곳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그곳에 갔다기보다 그곳이 가지고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왠지 걷고 있으면 생각이 정리되는 것도 같았다.
내가 좋아한 길② 미즈베노모리 코엔
나가사키에서 좋아했던 곳 중 하나가 미즈베노모리 공원이다. 탁 트인 넓은 느낌, 불어오던 바람, 그리고 그때 거기 있었던 혼자였던 나, 누군가와 함께였던 그 기억이 좋기 때문이다. 아무 이유 없이 좋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나 보다.
나가사키의 대표 마츠리(축제) 중 하나인 쿤치 마츠리가 열리기 하루 전, 미즈베노모리 공원을 찾았다. 우연히 알게 된 고마운 인연과 함께였다. 나가사키의 번화가 칸코도오리(관광 거리; 이렇게 직역해 놓으니 이름이 참 귀여운 느낌이다)의 옷집에서 일하시는 일본인 아주머니와 얼떨결에 친구가 되었다. 같이 간 친구와 나는 한국의 '이모'라는 단어의 개념을 설명했고, 그날 이후 그녀는 우리의 이모가 되었다. 그리고 밖에서 같이 밥을 먹고, 산책도 할 겸 미즈베노모리 공원에 가게 됐다.
첫 느낌은 왠지 미국 같은 데나 있을 공원 같은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가족끼리 주말 나들이에 나서기에도 좋아 보였다. 우리는 공원을 지나 나가사키 대표 관광지인 구라바엔(Glover Garden)까지 걸으며 우리만의 코스를 완성했다. 여유 있는 걷기를 좋아한다면 이 코스를 추천하고 싶다.
쿤치 마츠리가 시작된 날에도 미즈베노모리를 찾았다. 축제의 특성상 주전부리를 파는 포장마차(야타이)가 잔뜩 들어선다. 그곳에서 원하는 음식을 사와 공원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여유를 즐기면 '행복이 여기 있었네.' 싶을 거다. 나가사키의 대표 축제인 만큼 이날 공원은 굉장한 인파로 붐빈다. 아이와 함께 뛰어놀며 놀아주는 자상한 아빠의 모습도, 축제를 즐기러 온 학생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쿤치 마츠리뿐 아니라 나가사키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축제는 미즈베노모리와 거의 함께한다. 바자회가 열렸던 봄날에는 괜찮은 물건을 득템하기도 하고, 여름밤에는 잔디에 앉아 불꽃놀이를 즐기기도 한다. 이런 날은 유카타를 예쁘게 꾸며 입은 일본 학생들을 보는 것도 하나의 볼거리이다.
또 여름에는 잔잔히 물이 흐르는 곳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내는 꼬맹이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곳이라 경치도 끝내준다. 가보지 않을 이유, 없지 않은가?
덧붙이는 글 | ‘이렇게 내가 풋풋하게 희망을 부풀었을 때도 있었구나.’라고 생각해버리고 마는 때. 그때를 기억하면 쓴 글이다. 대단한 목표를 갖고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그때를 추억하며, 다시 한 번 시작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