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악한 지주에 저항하는 민초들을 대신해 싸워주는 의적들을 그린 이야기들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문학에도 <홍길동전> <전우치전> <임꺽정> 그리고 <장길산> 같은 작품들이 남아있죠. 이런 문학들은 억압받는 민중들이 자신들의 고된 삶을 버텨나갈 수 있는 '희망'으로 작용하곤 했습니다. 현실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영웅에 의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희망을 품고 살아갈 수 있도록 말이죠.
사회적으로 민주화가 진행되고 자본주의가 정착화 된 대다수의 현대국가에서도 거대 권력에 저항하는 인물들을 다룬 영화가 있습니다. 또 악에 맞서 싸우는 <배트맨> <아이언맨> 같은 만화에서 기반한 히어로물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 것을 보면 영웅 이야기는 시대와 사회를 뛰어넘는 공감대를 형성하고 계속 읽히는 듯합니다.
우리에게는 형제의 나라로 널리 알려진 터키에서도 이런 영웅을 다른 이야기가 국민 애독서로, 40여 개 나라에서도 번역되고, 영화로도 제작됐다고 합니다. 아직 우리에게는 익숙하지 않은 터키의 영웅 이야기 <의적 메메드>가 열린책들에서 새롭게 번역돼 나왔습니다.
민초들의 <은신처>를 꿈꿨던 작가작가 아샤르 케말은 터키에 사는 쿠르드족 가정에서 태어나 5살 때 아버지가 원수 집안에 의해 살해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현장에서 오른쪽 눈을 잃었다고 합니다. 그 충격에 12살까지 말을 더듬기까지 했지만 이후 생업을 위해 여러 일에 종사하면서도 정치적인 표현을 지속적으로 해왔다고 합니다.
현재는 터키 리얼리즘 문학의 거장으로 추앙받고 있는 작가의 대표작인 <의적 메메드>는 20세기 초반 터키 남부의 한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가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 이 작품은 고통받는 민중들에게 '은신처' 삼아 버틸 수 있는 영웅 서사시를 지향합니다.
"사람들은 왜 신화와 꿈을 창조하여 그곳에서 은신하고 싶어 할까? 사람들은 환희를 유지하고 살아가는 데서 오는 모든 고통을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신화와 꿈의 세계를 창조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그렇게 해줄 수가 없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고통과 질병과 죽음에 대한 두려움, 파괴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인간은 여전히 저항하고 있다.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죽임이지만, 그것에도 역시 나름대로 저항하고 있는 것이다."(작가의 말, 본문 576쪽)작품은 모든 땅이 지주 압디의 소유인 한 마을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지주의 폭압에 시달리던 어린 소년 메메드는 고통을 피해 도망치기도 하지만 이내 잡혀오고 그의 가족은 더 큰 고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런 메메드가 어느 날 친구와 함께 몰래 도시구경을 갔다가 지주가 없는 자유로운 세상을 목격하고 희망을 얻습니다. 메메드는 살인자의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연인 핫체도 구하고 탄압받는 민중을 구하기 위해 산적이 됩니다.
작품은 이후 메메드를 중심으로 민중들을 대신해 불의에 맞서 싸우는 영웅의 서사시와 그 사이사이에 자리잡은 메메드와 핫체의 러브스토리가 긴장감있게, 균형있게 섞여 전개됩니다.
쿠르드족에게 희망을 줄 영웅은 언제 나타날까아샤르 케말은 터키 내에서도 정치적으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가 정치적인 표현을 하는 것을 멈추지 않아왔고 그의 작품들이 터키 정부의 아픈 구석을 깊게 건드려왔기 때문이겠죠.
제1차세계대전 이후 세계 열강의 이해관계 때문에 터키·이란·이라크 그리고 시리아 등으로 쪼개져 독립국가를 형성하지 못했던 쿠르드족은 시리아와 이라크 등지에서는 제한된 자치권을 인정받았지만 여전히 중앙정부의 간섭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최근 이라크에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내분이 벌어지는 혼란한 시점에 자치 정부를 형성하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습니다. 이는 여러 나라에 흩어져있는 쿠르드족들을 아우르는 독립국가를 수립하기 위한 움직임으로 발전할 수 있어 쿠르드족이 다수 거주하는 터키를 비롯한 주변 국가에서는 매우 긴장하고 있습니다.
터키 정부가 쿠르드족의 독립에 반대하는 이런 모습은 지주 압디가 민중들을 억압하는 모습은 1955년에 출간된 이 오래된 소설이 현재 진행중인 역사적 사건과 묘하게 겹치며 이 책을 단순한 소설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게 합니다.
아샤르 케말은 이후 <메메드 시리즈>에 해당하는 세 편의 후속작을 1969년, 1984년, 1987년에 발표했습니다. 아흔줄에 접어든 지금에도 다섯 번째 후속작의 출간을 향한 문학적 열정을 드러내고 있다고 합니다. 부디 국내에도 온전한 메메드 시리즈가 번역 출간되는 그 날을 기다려 봅니다.
덧붙이는 글 | [서평] <자연을 거슬러> (토마스 에스페달 씀 / 손화수 옮김 / 열린책들 / 2013.03 / 11,800 원)
열린책들 신간서평단으로서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를 제공받았습니다.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mimisbrunnr.tistory.com)에도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