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4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 사설
2014년 6월 30일자 동아일보 사설 ⓒ 동아일보

오늘자(2014년 6월 30일) <동아일보>에 '친북·종북 군 간부 두고 북 위협에 맞설 수 없다'는 제목의 사설이 실렸다. 사설에서 <동아일보>는 지난 29일 한민구 국방부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서 "정확한 통계를 갖고 있지는 않지만 극소수 친북·종북 성향의 군 간부가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고 있다"고 말한 것을 두고 "이런 말을 공개적으로 할 정도로 군 내부가 붉게 물들었다니 경악할 일"이라고 평했다.

그러면서 <동아일보>는 "군의 대북관에 이상 징후가 나타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며 역대 정권의 국방백서에서 주적 표현이 없는 것과 2004년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들었다. 설문조사 내용은 육사 생도들이 주적으로 북한(33%)보다 미국(34%)을 더 많이 택하였으며 이들은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이 경악할 만한 설문조사 결과는 수구 보수 언론들이 자주 '안보관'과 '전교조'를 좌편향으로 비난할 때 쓰인다. <문화일보>의 '反대한민국적 교과서는 배제해야(2008년 9월 10일자)', <세계일보>의 '통일안보 교육에 등돌린 서울시교육청(2010년 11월 18일자)' 등 언론들은 연도를 막론하고 위의 설문조사 결과를 인용해 '안보관'과 '전교조'를 비난하고 있다.

'설문조사' 원 출처는 <조선일보> 인터뷰 기사

이 설문조사의 원본 출처는 어디일까. 2004년 당해 기사들을 검색해 보았다. 찾을 수가 없었다. 알고 보니 이 설문조사의 원본 출처는 <조선일보> 2008년도 4월 4일자 기사, '육사 교장이 기획한 국군 대안교과서'였다. 기사 내용은 김충배 전 육군사관학교 교장을 인터뷰한 것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기사에서 관련된 부분은 이렇다.

2004년 1월, 김충배(金忠培·사진) 육군사관학교 교장은 숨이 턱 막혔다. 육사에 들어올 가(假)입교생 250여 명에게 무기명 설문조사를 했는데 '우리의 주적(主敵)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다. 무려 34%가 '미국'이라고 대답했고, '북한'이란 대답은 33%에 그쳤다. … 어떻게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가? 그는 생도들과 면담하고 이유를 분석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는 대답들이 많았다.

이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은 정확한 '설문조사'를 근거로 한 것이 아닌 '증언'을 바탕으로 작성된 것이었다. <오마이뉴스> 2008년 8월 8일자 보도(4년 전 '주적 설문'으로 색깔론 덧씌우기)에 따르면 김 교장은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2004년 진행된 설문지와 설문 결과를 갖고 있지 않으며, 다만 전역 뒤인 2005년에 육사로 전화를 걸어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는 문항에 대해서만 응답 수치를 받아 적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문항 자체도 정확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 증언의 신뢰성도 흔들린다. 김 원장은 "'앞으로 우리의 주적이 누가 될 것인가'라고 물었는지, '우리의 주적이 누구냐'고 물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다"고 말했다고 <오마이뉴스>는 보도했다. 만약 김 원장의 말대로 '앞으로 우리의 주적이 누가 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경우 미래 상황을 어떻게 가정하느냐에 따라 답변 내용이 달라질 수 있다.

"전교조 교사들에게 그렇게 배웠다"고 답변하였단 것도 의구심이 든다. 주적이 미국이라 대답한 육사 생도의 34%가 전부 이와 같이 답한 것은 아닐 터. 대체 그들이 어떻게 선생이 전교조 소속이란 것을 알고 답한단 말인가. 만약 전교조 교사에게 그런 교육을 받았다 하더라도 다른 교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전교조 교사에게 배웠을 리도 없고 말이다.

'메이저 언론'으로서의 저널리즘, 어디 갔나

이렇듯 해당 설문조사 결과는 정확성과 신뢰성을 보장할 수 없다. 나름 한국에서 메이저로 취급받는 중앙 일간지에서 '설'에 불과한 말을 '사실'마냥 인용하여 기사를 작성하는 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저널리즘은 어디 갔나.


#동아일보#한민구#저널리즘#언론
댓글9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