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하늘은 다 같은 모습이 아니었다. 특히 봉두마을이 그랬다. 지난 6월 29일에 전라남도 여수시 율촌면 산수리에 위치한 봉두마을을 찾아서 2박 3일 동안 머물렀다. 봉두마을 하늘에는 여러 개의 검은 줄들이 이어졌다. 푸르디 푸른 하늘을 기대하고 올려다봤지만, 눈에 보이는 것은 거대한 거미가 먹이를 잡기 위해 거미줄을 친 것 같은 흉물스런 모습뿐이었다. 봉두마을에서 만난 담터댁 할머니는 "이런 마을이 어디 있다요. 우리가 새다요?"라고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1970년대에 19개의 송전탑이 봉두마을에 들어섰다. 마을 뒤에는 15만4000V와 34만5000V 두 개 선로가, 마을 앞에는 15만4000V의 선로가 한 개 세워졌다. 그 거미줄로부터 40년 동안 벗어나지 못한 봉두마을의 주민들은 하나 둘씩 암과 백혈병 등으로 세상을 떠났다. 80세대 200여 명이 사는 마을에서 40명의 주민이 사망했다. 현재 암과 각종 질병으로 투병 중인 주민도 12명이다. 암 발병과 송전탑 사이에 명확한 인과관계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봉두마을 주민들은 불안에 떨고 있다.
그런 마을에 6개의 송전탑 증설이 결정됐다. 지난 2011년 정전으로 750억 원 이상의 피해를 입은 여수국가산업단지에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송전탑은 현재 모두 건설됐고, 탑 사이에 줄만 걸면 15만4000V의 전류가 추가로 흐르게 된다.
"성장과 발전이 절실했던 1970년대라면 이해가 가지만, 지금은 이렇게까지 성장하지 않았나. 그런데 여전히 국가는 국민에게 희생만을 요구한다."
불안에 떨고 있는 주민들, 모자 속에 은박지 넣고 다니기도...봉두마을은 500여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마을이다. 광산 김씨와 장흥 위씨 등 200여 명이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1970년대에 송전탑이 들어서게 된다는 말에 주민들은 '마을에도 전기가 들어오겠구나'라고 생각하며 두 팔 벌려 환영했다고 한다.
"그 당시에는 송전탑을 짓는 인부들이나 한전 직원들을 집에서 다 재우고 밥도 해먹였어. 새참까지 날랐다니까"라고 위상복(82) 할아버지가 말했다. 1932년에 태어나 지금까지 봉두마을에서 사는 위상복 할아버지는 2001년에 위암 판정을 받고, 2003년에는 위의 70%를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다. 옆에 있던 한 할머니는 "주민들이 착해서 뭘 몰랐지... 앞으론 더 세게 한다네. 무서워... 저것이 사람을 다 죽일 판이요..."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는가, 우리는 국민이 맞는가." 이성섭(79) 할아버지의 집과 밭에는 송전선로가 지난다. 일을 할 때는 불안해서 모자 속에 은박지를 가득 넣었다. 송전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전자파를 차단하기 위해서다. 과학적 근거는 없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일을 할 수가 없기에 모자 안에 구겨넣는 것뿐이다.
그는 17살 때부터 타향살이를 시작했다. 그러나 "장손이니까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야 한다"던 할아버지의 말씀을 잊지 않고 살았다. 서울에 살다가 2013년 5월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60여 년 만에 돌아온 마을에는 송전탑이 삐죽삐죽 서 있었다.
이성섭 할아버지가 송전탑을 반대하는 이유는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할아버지의 말씀과 연결되어 있다. 이 할아버지는 "나는 선산과 조상을 지키러 다시 고향으로 왔다. 근데 송전탑 때문에 소도 죽고 땅도 죽고 사람도 죽는다. 후손에게 우리 마을을 물려 줘야 하기 때문에 계속 싸울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할아버지는 미안함과 책임감이라는 말도 여러 번 언급했다.
"이런 땅을 물려줄 수 없다. 나처럼 고향에 돌아오고 싶어 하는 후손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정말로 폐형광등이 켜질 줄이야지난 4월 9일에 원진노동연구소가 봉두마을의 전자파를 측정했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전자파가 측정된 곳은 34만5000V의 선로가 지나는 밭이었다. 깜깜한 밤이 되었을 때 폐형광등을 들고 그곳으로 갔다. 비가 오지 않은 청명한 날씨임에도 전류가 흐르는 '지지직' 소리가 들렸다. 폐형광등을 꺼내 위로 들자마자 불이 켜졌다. 원진노동연구소의 자료에 의하면 이 부근에는 13.5밀리가우스(mG)의 전자파가 흐른다.
1970년대에 설치한 송전탑은 지금처럼 높지 않았다. 기껏해야 전봇대 높이였다. 마을 주민 위성산(60)씨는 "낚싯대를 내밀면 닿을 정도였다"고 했다. 다른 주민은 "그 당시에는 가축들이 그 밑으로 들어가지 않으려고 했다"고 덧붙였다. 지난 2006년에야 지금처럼 송전선로를 30m로 높였다. 송전선로는 높아졌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전자파의 위력은 폐형광등 실험으로도 알 수 있었다.
마을 주민 위성무씨에 의하면 "한전은 전자파의 위해성은 아직 밝혀진 바가 없으며, 송전탑과 암 발생간의 상관관계 역시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했다. 한전에서 말하고 있는 전자파 기준은 833밀리가우스(mG)이다. 한전이 안전의 근거로 주장하는 기준은 국제비전리방사선방호위원회(ICNIRP)의 권고치이다. 그러나 이 기준은 순간적인 노출만을 고려한 것일 뿐, 봉두마을 주민들처럼 일상적인 삶의 공간에서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상황에 대한 기준치가 아니다.
전자파의 위해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세계보건기구(WHO)는 전자파를 발암 가능물질을 뜻하는 '그룹2B'로 지정했다. '전자파 노출에 대한 사전예방의 원칙'에 따라 전자계 노출을 줄이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전자계 노출의 인체영향에 대한 연구, 저비용의 노출저감 기술개발 등을 권고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도 비슷하다. 스웨덴은 인체안전기준을 2밀리가우스(mG)로 선정했고, 네덜란드도 아동의 노출이 4밀리가우스(mG)가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기준치는 스웨덴보다 400배 높은 셈이다.
"마을 한가운데 있는 송전탑을 산 위로 옮길 수만 있다면 우리들은 산의 소유권을 넘길 의향이 있다."
위성초(66) 봉두마을 송전탑건립반대투쟁위원장은 "생명보다 소중한 것은 없다"고 말하며 마을 주민들을 대표하여 한전을 향해 4가지 사항을 요구하고 있다.
하나, 마을 한 가운데에 설치되어 있는 송전탑(345kV,154kV) 원거리 이전. 둘, 주민건강을 위한 역학조사.셋, 현재 공사 중인 송전선로 지중화. 넷, 위 사항이 어렵다면 마을 전체의 집단 이주. 특히 마을 주민들은 마을 뒤쪽에 설치되어 있는 송전탑(154kV, 345kV)을 다른 지역처럼 산 위로 이전해 달라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만일 한전이 그것에 동의한다면 송전탑이 들어설 부지를 줄 의향도 있다고 말했다. 열정적으로 말하면서도 위성초 위원장은 "우린 여수 시청, 한전 본사, 국회, 밀양까지 안 가본 곳이 없어요. 근데 바뀌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니..." 라고 답답해했다.
지난 3월 6일, 최준식 한국전력공사 광주전남건설지사장은 주민들과의 대화에서 "주민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어렵고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여수 쪽에 석유화학공단이 있어 전력을 많이 필요로 한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개통을 할 수밖에 없음을 이해해 달라"고 의견을 밝힌 바 있다.
위성초 투쟁위원장의 말을 듣던 한 할머니는 "사람이 크지, 돈이 큰가. 죽는 한이 있어도 포기 못한다"고 말했다. 동네 입구의 컨테이너에서 들은 말이 다시 들리는 듯 했다.
"이런 마을이 어디 있다요. 우리가 새다요? 국민 없는 국책사업이 어디 있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