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업이 방송작가이기 때문에, 거의 매일 글을 쓴다. 문득 떠오른 아이디어나 발상을 쓰기도 하고, 팀장에게 보여주거나 방송사의 간부가 보기 위한 A4 용지 3~4장 정도의 기획안을 쓰기도 한다.
때로는 30초의 영상에 힘을 더 하기 위한 한 두 문장을 쓰고, 일주일 혹은 격주 단위로 30분 남짓한 영상의 내레이션 대본을 쓴다. 일 관련한 사람들에게 보내는 메일 글쓰기는 하루에도 몇 번씩 있고 일 관련이든 관련이 없든 문자를 보내거나 카페트(카카오톡·페이스북·트위터)에 쓰는 건 더 자주 있다.
글을 쓰는 곳은 노트북 모니터가 가장 많고 점점 늘어나는 건 휴대폰의 메모장과 메모 전문 어플리케이션도 유용하게 쓰고 있다. 안타까운 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내가 좋아하는 갱지 연습장에 볼펜을 손으로 잡고 쓰는 행위가 점점 줄어든다는 점이다. 자랑스러운 우리나라의 글인 한글을 손으로 쓰는 게 점점 힘들어지고 글씨체도 괴발개발 되고 있다.
문제는 글을 어디에 쓰건 얼마나 자주 쓰건 쓸 때마다 쉽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자주 하다 보니 경험에서 나오는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걸 부인할 순 없지만 그건 아마도 익숙함이라고 보는 게 맞다. 지금껏 어떤 식으로든 닥치면 닥치는 대로 그런 대로 써왔으니까 이번에도 어떻게든 쓰긴 하겠지 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일 뿐이다. 마치 군대 시절 '아무리 뺑이 쳐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라고 생각했던 것과 흡사하다.
어떤 글이든 내가 글을 쓸 때 자주 부딪치는 문제들이 있다. 하물며 친구나 형, 누나들에게 문자나 이메일을 보낼 때도 부딪치는 문제들이 있는데, 일 관련한 글들, 특히 작정하고 잘 써야 하는 글을 써야 할 때, 어떻게든 테이프는 끊었는데 계속 달려갈 때 고민과 선택을 하게 만드는 장애물들은 반드시 나타난다.
예를 들면 이런 것들이다. 존댓말로 해야 하나 반말로 해야 하나. '중국에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습니다'로 시작해야 할 지, '중국에 한류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로 첫 문장을 시작해야 할 지 고민한다. 내 글을 보는 대상에 따라 고민 해결은 쉽기도 하고 꽤 오래 가기도 한다. 방송사의 간부들이 보게 될 기획안이라고 할 경우 설득을 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면 존대로 가고 내용으로 승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면 존대를 하지 않기로 한다. 이 얘기는 확실한 기준이 없는 주먹구구식이라는 거다.
또 이런 고민을 할 때가 적지 않다. '이 기획을 제대로 살릴 사람은 단언컨대 김구라다'로 쓸 것인가 아니면 '이 기획을 제대로 살릴 사람은 단언컨대 김구라씨다'로 쓰느냐다. 얘기하자면 참 많다. 미사여구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접속사를 넣을 것이냐, 몇 장으로 할 것이냐, 글씨 크기를 어느 정도로 할 것이냐, 이미지로 보완을 할 것이냐 등등 고민되는 문제들이 계속 튀어나온다.
계속 고민을 했다는 건 일차적으로는 내가 게을러 그 방면의 공부를 안 했다는 것이다. 이차적으로 변명을 하자면 내가 고민하는 것들에 대해 속 시원히 말해주는 책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다. 이 책 <고종석의 문장>을 만나기 전에는 그랬다.
어떤 사람에 대해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데 그 사람을 좀 아는 것처럼 느끼고 있다면, 그 사람은 대단한 사람이다. 어떤 사람에 대해 설명하려고 하면 몇 마디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알고 있는 게 일천한데,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형성되어 있다면 그 사람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
고종석. 솔직히 이 사람이 쓴 글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책꽂이에 이 사람이 무지 오래 전에 쓴 소설 <기자들>이 있는 걸로 볼때 아주 오래 전부터 이 사람에 대한 관심이 있었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억나는 건 없다. 아마도 신문에서 가끔 칼럼을 읽었을 거라 생각하는데 그 마저도 확실하게 생각나는 건 없다.
근데 참 이상하다. <고종석의 문장>이라는 제목으로 이 사람의 글쓰기에 관한 책이 나왔다는 걸 알았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강자가 출현했구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별로 본 적이 없는데 고종석이라는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글에 관해서라면 대단하고 굉장하다는 걸 알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 책에 관심이 많은 내가 사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를 책으로 묶어고종석은 글쓰기 책을 도대체 어떻게 썼을까. 오래 전에 이외수가 쓴 <글쓰기의 공중부양>을 봤을 때 든 느낌과 과연 어떻게 다를까, 자신의 글쓰기 비법을 어느 정도 공개했을까 등 꽤 궁금해 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작년 9월에서 12월까지 숭실대학교에서 글쓰기 강좌를 했는데 그 강의를 책으로 묶은 거였다. 그 강의를 듣지 않아서 확실하게 말할 순 없지만 거의 그대로 옮겼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마치 고종석의 강의를 듣는 것 같았다. 그래서 쉽게 읽혔다. 그렇다고 내용이 부실하다는 건 아니다.
그런데, 반가웠다. 앞에서 얘기한, 내가 글을 쓰며 부딪치곤 하는 문제들에 대해 고종석이 말하고 있는 게 아닌가. '~습니다.'로 쓰느냐 '~다'로 쓰느냐. 고종석의 처방은 간단했다. 강연이나 연설 같은 글이라면 존대가 어울리고 그게 아니면 반말로 하는 게 좋다는 거다.
다시 말해 말글이라면 '~습니다'체, 일반적인 글이라면 '~다'체다. 나의 고민에 적용하면 시청자를 대상으로 하는 방송 내레이션 글은 존대를 해야 할 때가 많고, 일반적인 기획안 같은 글은 존대를 굳이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사람 이름 뒤에 '씨'를 붙이는 것에 대해 고종석도 고민했다는 것이 신기했다. 6년 전에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기자들이 물었을 때 그는 '안창호씨'라고 대답을 했다는데, 원칙적으로 죽은 사람에게는 '씨'를 붙이지 않는다고 한다. 아무리 높이고 싶어도 을지문덕씨, 강감찬씨, 유관순씨라고 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렇게 고종석은 일면식도 없는 나의 고민을 적지 않게 해소해주고 있는 것이다.
글쓰기라는 게 글쓰기 책을 보면 과연 늘까, 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본다. 하지만 확실한 건, 글쓰기는 는다. 그 이유가 글쓰기 책을 봐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글쓰기라는 건 하면 할수록 는다는 건 맞다. 이 책에서는 그 점을 생생하게 보여주는데, 제대로 된 글에 대한 교재를 다른 누구도 아닌 고종석 자신이 오래 전에 썼던 책 <자유의 무늬>로 하고 있는 것이다. 그 책에서 다양한 문장을 시범 케이스로 뽑고 스스로 잘못 쓴 문장이라고 첨삭을 한다. 어떤 문장은 지금의 본인도 전혀 납득하지 못하게 못 쓴 글이라고 자아비판(?)을 한다. 결국 고종석 스스로도 글쓰기 실력이 늘었다는 것이다. 물론, 부단한 글쓰기와 치열한 고민들이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이 책의 단점은 무겁다는 것. 두껍다. 글쓰기에 관해 하고 싶은 말이 참 많으신가 보다. '한국어 글쓰기 강좌 1'로 되어 있는 거로 봐서 최소한 한 권은 더 나온다는 얘기다. 내용을 나누었는데도 이렇게 무겁다는 건데, 난 이해가 안 간다. 서점을 가보면 크고 무겁고 두꺼운 책들을 적지 않게 본다. 인문사회 관련 책들이 상당히 그렇다.
난 그런 책들을 볼 때마다 도대체 읽으라는 건지 장식용으로 사용하라는 건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책은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라도 읽기 좋게 만들면 참 좋겠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감점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출판시장 구조에 대해 전혀 모르지만, 외국처럼 작고 가벼운 책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했는데, 내 맘 같지 않다는 건 잘 안다.
이 책의 장점은 물론 참 많다. 그 중 한 가지만 뽑아보라면 소소한 글쓰기 테크닉은 기본이지만 한국어에 대한 그동안 알고 있는 생각을 적지 않게 뒤집어주고, 상식을 깨는 내용들을 꽤 알려준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명작으로 누구나 알고 있는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통렬하게 알려준다. 궁금하신 분은 책을 보시면 된다.
통계를 바탕으로 하는 얘기는 아닌데, 요즘 글쓰기 책 시장이 꽤 달아오르는 것 같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선두로 <힘 있는 글쓰기>, <작가란 무엇인가>, <삶은 어떻게 책이 되는가>, <글쓰기가 처음입니다> 등 다양한 유형의 글쓰기 책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글쓰기를 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는 뜻일 게다. 글쓰기를 직업으로 하고 있는 22년차 방송작가로서 말하는데, 글쓰기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고종석의 말로 대신한다.
"글쓰기는 압도적 부분이 재능보다 훈련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