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신이 되어 버린 붓다는 그때, 사람이었다. 신을 믿는 사람들을 멀리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 오로지 깨달음으로만 진리를 파악하려 하였다. 그런 그가 죽은 후 불교에는 많은 변화가 생겼다. 해탈과 열반의 궁극은 무시되고, 대신 왕생극락과 같은 윤회가 크게 각광받았다. 수많은 신이 생겨났고, 화려한 의례가 꽃피었으며 사원이 모든 중심으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붓다 시기의 세계나 이후 대승의 세계에 대한 관점을 관통하는 이치는 여전하였으니 그것은 연기(緣起)에 대한 사고다. 이것이 있으면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생기면 저것이 생기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이 멸한다라고 하는 이치가 연기다. 주는 것이 있으면 받은 것이 있고, 받은 것이 있으니 주는 것이 있다. 달걀이 있으니 닭이 있고, 닭이 있으니 달걀이 있는 것이다.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를 살피는 것은 무의미하다.
세상 모든 것은 연기에 의해 나타나기도 하고 숨기도 한다. 아름다움은 추함이 숨을 때 나타나는 것이다. 옳고 그름의 관계 또한 마찬가지다. 한 집단 내에 작은 집단이 있는 것이고 그 작은 집단은 그 안에 또 더 작은 집단·개체가 존재한다. 이렇게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인드라망이다. 철저히 상호의존적 관계다. 세상만사는 네 탓도 아니고 내 덕도 아니다. 우리 모두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그러니 특정 인자 하나만이 진리의 근원이 될 수 없다. 매우 철학적이면서 매우 과학적이다.
사진 또한 마찬가지다. 빛이 들어와야 잔상이 생긴다. 필름이 있어야 그 잔상은 새겨진다. 그 새겨진 것은 일정한 화학약품 등을 사용하여 진행하는 인화-현상의 단계를 거쳐야 비로소 사진이 된다. 이 맥락에서 더 중요한 것은 사진은 반드시 대상이라는 어떤 것이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이미지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그림이나 글 혹은 언어보다 원인과 결과가 적확하게 맞아 떨어지는 매우 과학적 현상이다. 이것이 사진의 특장이자 한계다.
사진의 행위자는 누구인가? 그것은 카메라인가 카메라를 누르는 자인가? 아니면 그 대상인가? 아니면 그 장면(을 세팅하는 자)인가? 사진은 그림과는 달리 이 모든 것이 망(網)으로 연계되어 있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사진이 갖는 제1의 의미는 이러한 연망을 복원하는 것이다. 이른바 소통이다. 사진을 찍을 때, 그 대상의 존재에 대해 감사하고, 그 대상의 배경에 대해 경외를 가지며 그렇게 돼서 나온 사진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그 연망들이 서로 소통을 이루어야 한다. 아름다움의 미학이나 이데올로기의 확산이나 예술의 추구는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사진가 임종진은 사진을 이러한 사람 사는 세상의 연망에서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이다. 그가 사진을 하는 것은 사람들과 삶을 함께 느끼고 울림을 서로 나누기 위해서다. 그래서 그는 스스로를 사연 전달자라 불리기를 좋아한다. 작가 세계나 예술의 도구가 아닌 귀한 삶 하나하나의 사연을 전달하는 사진을 하기를 소망한다. 느리고 작지만 아름답고 부드러운 힘이 있는 사진의 세계다. 사진으로 이어진 사람 사는 세상, 이 어찌 아름답다 하지 않겠는가?
그가 최근에 낸 사진집 <캄보디아: 흙 물 바람 그리고 삶>(오마이북 펴냄)은 그가 사진을 사람과 자연 속에 존재하는 만유를 소통하는 쓰임으로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보여주는 '가장 사진다운 사진'이다. 그는 사진 찍기 위해 캄보디아를 가지 않았고,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 카메라를 들지 않았다. 그는 흙, 꽃, 바람 속에 사는 사람들의 삶을 함께 하기 위해 그곳에 갔다. 마치 점령군처럼 행세하는 엔지오 활동가로 간 것이 아니라 이웃 나라에서 온 친구로 가서 살았다. 사진 기자로서 직업적으로 찍는 (혹은 기록이라는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진이 아닌 그들과 그냥 웃고, 울고, 놀고, 쉬기 위해 찍은 사진이다.
그가 사진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곳이 '달팽이 사진 골방'이라는 사실이 바로 그가 가진 사진 세계관이다. 달팽이 같이 사는 삶, 달팽이를 닮은 그가 하는 사진, 이것이 사람의 사진이다.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하는 사진이 아닌 그냥 그 자체가 삼라만상의 우주가 되는 사진, 그 안에 아름다운 사람 사진가 임종진이 있다. 그가 찬 바람이 불면 또 하나의 짝을 만나기로 되어 있다 한다. 결혼도 꼭 달팽이 같이 하는 임종진에게 축하와 존경의 이 글을 오마주로 바친다.
덧붙이는 글 | <캄보디아: 흙 물 바람 그리고 삶> / 임종진 저 / 오마이북 펴냄 / 2014.06.20 / 5만 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