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춘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10일 재난 컨트롤 타워로서의 청와대 역할을 강하게 부인했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구조활동을 지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김 비서실장은 참사 자체에는 사과하면서도 청와대의 역할을 '상황파악'으로 축소시켜 책임을 회피하고, 일선 구조작업을 지휘하는 해경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국회에서 열린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청와대 기관보고에서 그는 시종일관 "재난 및 안전관리기본법에 의하면 최종적인 지휘본부는 안전행정부 장관이 본부장을 맡는 중앙재난대책본부장으로 되어있다"라며 "법적으로는 안전행정부가 컨트롤타워"라고 말했다. 사고당시 청와대의 부실한 상황대처를 질책하는 위원들의 지적에 적극적으로 반박한 셈이다.
특히 김 비서실장은 의원들의 지적이 계속되자 "청와대는 상황을 점검하는 곳이지 구조를 지휘하는 곳이 아니다, 구조는 현장에 있는 해경이 하는 것"이라며 "해경이 깨고 들어가 학생들 나가라 해야지, 대통령이 구조하는 분은 아니"라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현장에서 할 일과 대통령의 할 일은 다르다"라며 "청와대는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고 대통령께 보고하는 게 역할이지 구조를 지휘한 일은 없다"라고 말했다.
사고시각에 NSC회의 열렸지만 아무 논의도 못해
그러나 청와대는 약 500명 가까운 승객이 탄 여객선이 침몰한 사고에 대책회의 한 번 없이 사실상 장시간 동안 무대응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게다가 사고발생 시간에 청와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NSC(국가안전보장회의)가 열리고 있었지만, 사고 소식이 파악하지 않아 관련 대책을 논의하지 못했다. 또한 현장상황이 해경의 현장지휘만으로 효과적인 구조가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청와대가 해군과 합동작업을 지시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김 비서실장의 이날 보고 내용에 따르면 청와대는 세월호 안에 많은 승객이 갇혀 있다는 것을 사고 당일 오후가 되어서나 알게 됐다. 특히 김 비서실장은 오후 4시 11분에 열린 수석비서관 회의 때까지 사고의 인명피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과 청와대의 핫라인을 통해 해경이 배 안에 300명가량이 갇혀 있다고 전한 오전 11시 41분에서 5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상황 파악이 된 것이다.
김 비서실장은 "배가 침몰했고 300여 명이 갇혀 있다는 걸 언제 알았나"라는 최민희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질의에 "오후 수석비서관회의 때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이는 청와대가 수석비서관 회의가 열리기 전까지는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 시간까지 대면보고 없이, 서면과 유선보고만 받았다는 점에서 정확한 상황을 보고 받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와 함께 청와대는 사고 발생시각인 오전 8시30분부터 9시 20분 사이 열리고 있던 NSC에서도 아무런 대책을 논의하지 못했다. 김현미 새정치연합 의원은 "국정원은 오전 9시20분 간부들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로 세월호 사고를 전달했으나 회의에 참석 중이던 1차장이 메시지를 확인하지 못했다"며 "국방부, 청와대, 국정원 중요 책임자가 회의를 하고 있었음에도 메시지를 확인하지 않아 아무런 논의나 대책 마련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와 함께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야당의원들은 "사고 현장 상황은 해경이 구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해경과 해군이 함께 작업을 해야했는데, 해경은 해군의 접근을 막았다"라며 "해경과 해군이 함께 구조할 수 있게 지휘할 수 있는 곳은 청와대뿐"이라며 청와대의 컨트롤타워역할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비서실장은 "청와대는 행정부수반이자 국가원수인 대통령이 계셔서 '대한민국 모든 일이 청와대에서 다 지휘하지 않았느냐'라는 뜻에서 그런 말 나온 것 같으나 법상으로 보면 재난의 종류에 따라 지휘하는 곳은 달라진다"라며 지휘 책임을 안전행정부와 해경으로 돌렸다. 새누리당 의원들 역시 "컨트롤타워로 법적책임은 안전행정부에 있다"라며 김 비서실장을 옹호했다.
한편, 야당 의원들은 김 비서실장의 사퇴를 거듭 촉구했다. 김현 새정치연합 의원은 "대통령이 다섯번에 걸쳐 사과를 했다면 비서실장이 책임지고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당당하고 떳떳한 것이다. 물러날 의사가 없냐"고 추궁했고, 같은당 우원식 의원도 "김 실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실장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