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내 최대 규모 소방설비 기업이 성능에 문제가 있는 무검정 합성수지배관(이하 CPVC배관)을 2000여 세대 신축 아파트 공사현장에 공급해온 것이 취재 결과 확인됐다.
A기업은 우리나라 소방설비 분야 1위 업체로 지난 2011년부터 스프링클러 설비에 사용되는 CPVC배관 생산을 시작했다. 현재는 해당 시장의 한 축을 담당할 정도로 많은 양을 공급한다.
그런데 최근 이 기업에게 배관을 공급받은 건설현장에서 이음부분이 터지거나 균열이 생겨 물이 새는 등 하자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28일 취재 결과 해당 현장에 보급된 CPVC배관은 '소방시설 설치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아래 관련법)에 따라 반드시 받아야 하는 제품검사를 받지 않은 '무검정 제품'인 것으로 드러났다. A기업은 무검정 제품과 정상 제품을 섞어 일부 공사현장에 유통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CPVC배관은 관련법에 따라 '성능인증' 받아야 하는 제품 중 하나로, 성능인증을 받으면 제품 출고 전에 반드시 '제품검사'를 받아야 한다. 성능인증을 받았을 때와 동일한 성능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성능인증은 제조사의 요청에 따라 이뤄지지만, 성능인증을 받은 제조사는 유통 전에 의무적으로 제품검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A기업은 지난 2011년에 성능인증을 받았음에도 제품 검사를 거치지 않은 상품을 시중에 유통했다.
주로 아파트 등 공동주택에 보급되는 CPVC배관은 스프링클러 배관으로 주로 사용되는데, 제품검사를 받지 않으면 그 성능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준공 이후 물이 새거나 배관이 깨져나가면 건물의 총체적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이미 시공된 배관의 경우 제품검사를 받았는지조차 확인하기 힘들다.
보통 CPVC배관은 생산 과정에서 4m씩 균일한 길이로 제작되고 배관마다 합격표시(증지)가 부착되는데, 이때 대부분의 증지가 눈에 잘 띄지 않는 배관 측면에 치우쳐 부착된다.
또한 시공 과정에서는 불가피하게 배관을 절단하기 때문에 합격표시 또한 함께 잘려 나가는 경우가 많다. 스프링클러 배관으로 이미 시공된 현장은 증지 표시방법과 시공 특성 때문에 안전 표시를 눈으로 확인하기 힘들다는 얘기다. 더욱이 천정 마감까지 끝난 현장에서 제품검사 여부를 눈으로 확인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A기업은 취재가 진행되자 일부 CPVC배관이 무검정 상태로 시중에 보급된 사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사후조치를 취하는 등 책임을 다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8일 A기업의 한 관계자는 <소방방재신문>과 만나 "현재 문제가 있는 제품이 보급된 현장을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는 상태"라며 "현장을 파악한 후 적극적인 대처를 취해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또한 이 같은 문제점을 인지한 한국소방산업기술원도 현장 확인을 통해 무검정품 배관이 유통된 사실을 확인한 상태다. 8일 한국소방산업기술원의 한 관계자는 "해당 CPVC배관이 제품검사를 받지 않은 사실을 현장에서 확인했다"며 "현재 성능인증 취소 처분 절차를 밟고 있다"고 밝혔다.
덧붙이는 글 | 본 기사는 27년 정통 소방재난분야 전문지인 소방방재신문 7월 10일자 신문에도 동시 게재되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