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수백 명 아이들이 물속에 있는데 단 한 번도 회의를 소집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내 새끼라면 그렇게 하겠어요? 어떻게 대통령이 돼가지고 하루 종일 회의를 안 할 수 있습니까!"
김현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분에 못 이겨 소리쳤다.
질타를 받은 이는 김기춘 대통령실 비서실장이다. 세월호 참사 당일 안일한 청와대의 대처를 지적하는 김 의원에게 김 비서실장은 "김 의원 못지 않게 유족보다 아픈 마음 갖고 있다"라며 "결코 가볍게 보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지켜보던 세월호 유가족 사이에서는 탄식이 흘러 나왔다.
지난 10일 세월호 침몰사고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 출석한 김 비서실장은 회의 내내 청와대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부정했다. 그는 "청와대는 상황을 점검하는 곳이지 구조를 지휘하는 곳이 아니다", "대통령이 구조하는 분은 아니다", "현장에서 할 일과 대통령의 할 일은 다르다"라며 세월호 참사 책임에서 박 대통령을 철저히 보호했다.
지난 4월 16일 사고 당일,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자신의 역할을 정말로 다 했을까? 그날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대응을 시간 순으로 정리해보면 '그렇다'라고 말하기 어렵다. 대통령 주재 회의 한 번 열리지 않은 것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고 발생 후 한참 시간이 지나도록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0시 30분부터 16시 11분 사이사고 당일, 청와대 역시 오전 9시 19분 YTN의 최초 보도를 통해 상황을 인지했다. 정식 보고가 올라온 것은 오전 9시 30분. 김기춘 비서실장은 안전행정부와 해경에게 상황보고를 받았다. 박 대통령에게 처음 보고가 올라간 것은 오전 10시 서면보고를 통해서다. 이후 오전 10시 15분 김장수 국가안보실장이 유선으로 또 한 번 보고한다.
보고를 받은 박 대통령이 김석균 해경청장에게 지시를 내린 시각은 오전 10시 30분. 박 대통령은 김장수 실장을 통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력과 장비를 신속하게 총동원해서 구조에 최선을 다하라. 해경특공대도 투입해서 여객선의 선실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해서 단 한 명의 인명피해도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라고 지시했다.
박 대통령의 첫 지시가 내려올 당시 세월호는 완전 전복된 상태였다. 300명의 승객과 선원들이 배 안에 갇혀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이후 오전 11시 1분 MBC에서 '단원고 학생 전원구조 오보'가 나오면서 상황은 혼란에 빠진다. 중앙재난대책본부는 구조인원을 179명에서 368명으로, 또 160명으로 계속 정정한다.
그러는 사이 청와대는 사라졌다. 박 대통령이 오전 10시 30분 해경청장에게 첫 지시를 내리고 김 비서실장이 오후 4시 11분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하기 전까지 5시간 41분 동안 청와대 밖으로는 어떤 공식적 메시지도 나오지 않았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김 비서실장은 그동안 박 대통령에게 세 번의 서면보고와 일곱 번의 유선보고가 있었다고 밝혔다.
이에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야당의원들은 대형 사고가 발생했음에도 대통령 대면보고가 한 번도 이뤄지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있는 시각에 대통령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국민적 관심사였지만, 김 비서실장은 "대통령의 동선과 위치는 경호상 비밀이라 모른다"라고 말했다.
뒤늦은 수석비서관 회의의 의미그렇다면 김 비서실장은 6시간 가까이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대통령에게 서면과 유선으로 보고만 하다가 왜 갑자기 수석비서관 회의를 소집했을까?
그 정황은 청와대 위기관리상황실과 해경상황실 사이의 핫라인 통화에서 드러난다. 현장에서 구조인원 보고가 오락가락하는 사이 청와대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인지하지 못한 모습이었다.
오전 9시 20분 첫 통화에서부터 청와대는 현장화면을 해경에 요구했다. 세월호와 해경의 마지막 교신이 이뤄지던 9시 38분에도 청와대는 "VIP보고 때문에 그런데 영상으로 받으신 거 핸드폰으로 보여주실 수 있습니까?"라고 요구했다. 오전 10시 25분에는 "다른 거 하지 말고 영상부터 바로 띄우라고 하세요"라고 지시하기도 한다.
이후 청와대는 탑승인원과 구조인원 파악에 주력했다. 배가 완전히 침몰해 사실상 현장에서 구조작업이 불가능하게 된 오후 1시 4분 해경은 청와대에 "현재까지 생존자 370명이랍니다, 행정선에 약 190명 승선하고 있었다고 하네요"라고 알렸다. 이 같은 내용은 박 대통령에게도 거의 곧바로 보고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한 시간 후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해경은 오후 2시 24분 통화에서 청와대에 "생존자 166명"이라고 알린다. 중간에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청와대 상황실은 "166명이라고요, 큰일났네, 이거 VIP까지 보고 다 끝났는데"라며 "아까 190명 (추가)구조했을 때 너무 좋아서 VIP께 바로 보고했거든"이라고 말했다.
결국, 해경의 부정확한 상황보고에만 의존한 청와대는 사고 발생 6시간이 다 되도록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했던 것이다. 김 비서실장은 국정조사 기관보고 자리에서 "300명이 배 안에 갇혀 있는 걸 언제 알았나"라는 질문에 "수석비서관 회의 때 알게 됐다"라고 말했다. 결국 사태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던 청와대는 사고 발생 후 8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첫 회의를 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정확하지 않은 상황인식은 중대본을 방문한 박 대통령의 발언에서도 드러난다. 박 대통령은 "구명조끼 입었다고 하는데 발견하기 힘듭니까 지금은?"이라고 질문한다. 승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질문이다. 안행부 2차관이 "갇혀있기 때문에 구명조끼가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라는 말에 박 대통령은 "아, 갇혀있어서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