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는 우리에게서 많은 것을 앗아갔습니다. 구조 실패의 원인뿐만 아니라 사건 발생의 원인에 대해서도 이제 진지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반복되는 재난사고 속에서 왜 우리가 제자리걸음을 반복하게 되었는지 시민들과 함께 공유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세월호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 안전위원회'는 연속칼럼을 통해 '살아남은' 우리의 의무와 우리의 권리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
"막내아들이 중1인데 공부를 잘합니다. 시험 보고 와서는 '우리나라도 싫고 국어도 싫어서 국어시험을 안 봤어' 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그냥 쭉 찍어서 1개만 맞았다고 합니다. 왜 그랬냐고 물어볼 수 없었습니다."세월호 참사로 떠난 단원고 2학년 학생 아버지의 말이다. 국어 답안지에 심술부리는 마음, 왜 그랬느냐 야단할 수 없는 마음들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가족 마음, 그 마음을 보는 국민도 이러지 않을까 싶어졌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90여 일이 지났다. 오는 24일이면 100일이 된다. 진도 앞바다를 바라보던 충격적인 날로부터 속절없이 세고 있는 날짜들이다. 지인은 '자신과 무관한 타인의 일로 이렇게 오래도록 슬픈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분노조차 솟아오르지 않던 무기력은 어땠는가.
사실 나는 그랬다. 온갖 종류의 인권침해를 봐왔지만, 세월호 침몰은 왜 이렇게 눈물이 나던지…. 취임 전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곱게 보이지 않았던 정부가 제대로 구조만 한다면 인간적 실망만은 거두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허망하기도 허망하여라.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다.
살아 나온 이들의 증언은 같았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입니다."그러나 '구조에 전력을 다 하고 있다'는 거짓말이 공식 발표되었다. 공중파 방송을 통해서 전송되었다. 정부 여당 지도자들은 망언을 쏟아냈다. 분노에 찬 가족들이 진도 팽목항에서 걸어 청와대를 향했다. 다시 안산에서 청와대로, KBS 방송국으로…. 서명을 받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으로, 두 아버지는 안산 단원고에서 진도 팽목항까지 십자가를 메고 걷고 있다.
그조차 따라붙은 경찰은 가족들을 미행해서 물의를 빚었다. 국어 시험이 아니라 윤리 시험도 낙제인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13일 국회 본청 앞 기자회견에서 울부짖던 엄마는 "거지 같은 이 나라에서 떠나고 싶지만 죽은 내 새끼 놔두고 갈 수 없어, 여기 있다"고 말했다. 참혹한 시간이다.
단식 시작한 부모들... "죽는 한 있더라도 딸 원한 풀겠다"14일 미지 아빠, 지성 엄마, 소영 엄마, 수진 아빠, 예은 아빠, 슬라브 엄마, 동수 아빠, 준우 아빠, 현우 아빠, 혜화 아빠, 빛나라 아빠, 준영 아빠, 창석 아빠, 예지 아빠, 유민 아빠가 단식농성을 시작했다. 국회 앞 노숙농성 이틀째, 아침부터 내리쬐는 험악한 뙤약볕 밑에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단식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대한변협, 국민대책회의와 함께 작성한 특별법을 통과시켜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세월호 사건 조사 및 보상에 대한 조속 입법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면서 가족들의 참관조차 거절했다. 가족은 "우리 가족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으니 특단의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며 단식농성의 입장을 밝혔다.
가족들이 요구하는 진상규명 특별법은 지금까지 법과 다르다.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 수사권과 기소권을 특별위원회에 주자는 내용이다. 위원회 구성은 정치권이 참여하는 비율과 국민이 참여하는 비율을 동수로 하자는 것이다.
왜 그런지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참사 이후 수많은 시간을 실망과 무능, 의도된 조작과 거짓말로 버틴 정부와 정치권을 봐왔기 때문이다. 산이라도 옮겨줄 것처럼 약속했던 얼굴들이 모든 것은 내 책임이라고 말했던 눈물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바꾸겠다며 거리로 나섰던 손과 발들이 어떻게 가족들을 배신하고 국민들을 우롱했는지 겪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내용 없는 '연구용역 계약서' 같은 일부 법안을 들고 특별법이라고 주장하는 정부 여당에게 진실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이 가족들의 입장이다. 새누리당은 여당 지지 성향이었던 가족들조차 돌아서게 한 모욕적 시간들을 감당해야 한다. 14일 단식 농성에 앞서 소영 아빠 우주용님은 이렇게 말했다.
"딸 보내고 거의 한 달 이상을 방황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정말 너무 보고 싶어서…. 시화 바닷가에 가서 새벽까지 울다가 집에 들어가고 그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도저히 집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딸 생각에 잠을 못 자고 거의 뜬눈으로 밤을 보내곤 했습니다.이래선 안 되겠다 싶어서 정신 차리고 저희 딸이 왜 죽었는지 왜 이렇게 되었는지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시 정신 차리고 서명운동을 다녔고, 오늘은 국회에서 단식을 시작하는데 단식을 해서라도, 제가 죽는 한이 있더라도, 사건을 밝혀서 저희 딸 원한을 풀어줘야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단식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 특별법 제정이 첫걸음국회와 정부는 국민을 대의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 국민들은 "우리는 평범한 부모였습니다"라고 늘상 이야기하는 희생자 부모들에 의지하고 있다. 뒤돌아보면 어느 누구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하나하나 이뤄온 것은 희생자 가족이었다. 가족 잃은 슬픔만으로도 버거운 그들을 거리로 내몬 것만으로도, 그러한 사회를 지탱시키는 것만으로 우리 모두 죄인이다.
늦지 않았다. "이게 나라인가" 했던 탄식을 잊지 않는다면, 국가의 빈자리에 4·16특별법을 채워, 존엄과 안전이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어야하지 않겠는가. "2014년 4월 16일 이전과 이후가 똑같았다"라는 역사의 문장을 남기고 싶지 않다면, 지금 슬픔에 빠진 희생자들이 앉은 눈물겨운 벤치 곁에 앉아달라. 350만의 기적 같은 서명으로 가족을 위로해주었던 이름 없는 당신만이 지금 국가의 본모습이다.
14일 세월호 참사 국정조사 파행과 특별법 제정에 대한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장의 입장이 발표되었다.
"성역 없는 조사가 가능한 법안을 마련해야 합니다. (중략) 조사위원회에는 반드시 조사권과 기소권을 비롯한 사법권한과 함께 독립성과 공정성 확보를 위해 시민과 희생자 가족들의 참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여야는 물론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모두 희생자 가족들이 제안한 '4·16 참사 진실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가칭)'의 조속한 제정을 위해 힘을 모아주시길 촉구합니다."입장 글 마지막에는 "한 시대를 제대로 평가하는 유일한 방식은 그 시대가 인간 삶의 충만함이라는 진정한 대의에 어느 정도 도달했는지를 묻는 것이다"(로마노 과르디니)라는 말씀이 붙어 있었다.
누군가의 부모였으며, 누군가의 자식이었고, 누군가의 사랑하는 연인과 친구였던 죽음 위에 우리가 쌓아올릴 것은 인간 존엄의 충만함이어야 한다. 그 역할을 못한 국가의 부재를 채울 특별법 제정이 첫걸음이 아닐까. 막내아들 국어시험지에 정답을 기재할 수 있는 날을 만들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지금, 우리 앞에 국어 시험지가 놓여 있다.
덧붙이는 글 | * 글쓴이는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입니다.
* 세월호 가족들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특별법은 다시는 이러한 참사를 막기 위한 절대적인 과제입니다. 정치인들이 협상할 것이 아닙니다. 16일 폐회할 예정인 국회에서 가족과 국민이 참여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있도록 함께, 끝까지 함께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