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6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유가족들이 광화문 광장에서 단식을 시작한 지 이틀째인 15일. 많은 시민들이 유가족을 응원하기 위해 농성 현장을 찾았다. 광화문을 지나는 길에 잠시 들러 서명을 하고 가는 시민뿐만 아니라 유가족 농성 천막을 찾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온 시민도 많았다.
출근 시간인 오후 9시 전후에 농성 천막 주변은 한산했다. 경복궁을 관람하기 위해 광화문 광장을 지나는 중국인 관광객 무리만이 가끔 유가족 천막을 지날 뿐이었다.
오전 10시를 넘어서부터는 시민들의 지지방문이 이어졌다. 처음에는 1~2명의 시민이 찾아와 서명했지만, 서명 행렬이 이어지면서 너나 할 것 없이 서명용지를 받아들고 서명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서명을 하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광장 주변을 두세 번 맴돌다가 어렵게 찾아와 서명을 하고는 유가족을 한참 바라보다 자리를 뜨는 시민도 있었다.
한 시민은 유가족을 응원하는 편지를 써왔고, 또 다른 시민은 서명을 받는 유가족대책위원회 관계자에게 유가족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었다. 길 위를 바쁘게 가로지르던 직장인 몇몇은 발걸음을 차마 떼지 못하다가 횡단보도 신호를 놓치고 서명을 한 뒤, 다음 신호를 기다리기도 했다.
"차일피일 미루는 특별법 제정... 정부가 지은 죄가 많아서?"
오전 10시에 유가족의 천막을 찾은 최은성(48, 서울 마포구)씨는 광화문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이다. 최씨는 "일부러 시간을 내서 자리를 찾았다"라면서 "천만 명을 목표로 하는 서명인데 현재 서명 인원이 이에 미치지 못해 걱정이 돼 평소에도 페이스북 등 SNS를 통해 주변인에게 서명을 권유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죽은 자식을 살려내라는 것도 아니고, 왜 죽었는지만 알려달라는 건데 국회에서는 왜 차일피일 (특별법 제정을) 미루고만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면서 답답함을 토로했다.
그는 세월호 특별법안이 유가족의 요구안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했다. 최씨는 "현재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는 특별법안의 수위가 너무 미약하다"라면서 "정부가 지은 죄가 많아 사고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 저러는 게 아닌가 싶다"라고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아이와 함께 농성장을 방문한 정현주(미국 뉴저지)씨는 미국에 거주하는 교민이다. 여름을 맞아 아이와 함께 한국에 방문했다고 했다. 정씨는 유가족의 천막을 찾아 서명을 하고 아이와 함께 노란 종이배를 접어 농성장 앞 잔디에 뒀다.
정씨는 "미국에서도 교민들이 뉴욕 등 각지에 분향소를 차리고 조문하는 등 세월호 사고에 관심이 많다"라고 전했다. 이어 "아이를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 보기에 현재 세월호 특별법 처리가 너무 더딘 것 같아 답답하다"라고 걱정했다.
상주에서 서울로 소풍을 왔다고 밝힌 양혜원·황수정·조성희·김재은 등 네 명의 중학생들도 서명하고 종이배를 접었다.
학생들은 "단원고 언니·오빠들의 부모님이 단식까지 하면서 이렇게 고생하시는 줄은 몰랐다"라면서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이어 "천만 서명을 목표로 하는데 서명이 아직 많이 모자란 것으로 안다"라며 "우리 네 명이 지금 서명을 하고, 또 주변 사람에게도 많이 알리면 되지 않겠느냐"라고 다짐한 뒤 자리를 떴다.
"아직도 해결 안 됐다니..." 유가족 보며 놀라는 외국인 관광객들
경복궁을 가기 위해 광화문을 지나가는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몇몇 관광객들이 세월호 사고를 설명하는 피켓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의 외국인 관광객들은 천막을 그냥 지나쳤다.
농성장 앞에 놓여진 노란 우산과 노란 종이배의 사진을 기념으로 찍는 관광객들도 있었다. 하지만 무슨 이유로 노란 종이배와 노란 우산이 놓여져 있는지는 알지 못하는 눈치였다. 세월호 사고를 설명해주고, 지금 유가족들이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고 알려주자 몇몇 외국인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브라질에서 온 엘리사(35, Elisa Poggio Amaral)씨도 그랬다. 엘리사씨는 세월호 사고가 브라질에서도 TV에서도 자세히 다뤄져 알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사진을 찍으면서도 노란 종이배와 노란우산이 세월호 사고와 관련이 있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말했다. 천막을 가리키며 저 아래에 앉아 있는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 피해자의 유가족이며 지금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고 말하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엘리사씨는 브라질에서도 비슷한 사고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브라질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불이나 232명의 젊은이가 숨지는 큰 사고가 있었습니다. 500여 명을 수용하는 클럽에 출구가 하나뿐이었어요. 정말 큰 비극이었습니다. 브라질 사람들도 당시 정부에 사고를 조사하라고 요구했고, 법에 의해서 책임자가 처벌돼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습니다."
중국에서 관광 목적으로 서울을 찾은 카트린 리(19, Catherine Li)씨는 세월호 사고의 해결을 촉구하는 한 시민의 피켓을 유심히 살폈다. 카트린 리씨는 300명에 가까운 피해자를 낸 사고가 아니냐며 중국 TV에서 자세히 방영해줘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 알고 있다고 말했다.
카트린 리씨에게 유가족들이 현재 단식을 하며 정부에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고 설명해줬다. 카트린씨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사고 피해자의 유가족이 거리에 나와 있는 현실에 많이 놀란 눈치였다.
카트린 리씨는 "생각지도 못했다"라면서 "세월호 사고에 대해서 알고는 있었지만, 아직까지도 해결이 되지 않은지는 몰랐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강한 어조로 "정부에서 국민에게 당연히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면서 "사람들이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도록, 사고 피해자를 추모하는 공간도 만들어야 한다"라는 의견을 내놨다.
덧붙이는 글 | 이윤소 기자는 오마이뉴스 제 20기 인턴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