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7일, 소청산장에서 칼잠을 자고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났다. 아니 저절로 잠이 깬 것이다. 그렇게 극성을 부리던 바람도 거짓말처럼 잠잠했다. 설악산의 날씨는 이렇게 조석으로 변한다. 소청산장에서 바라보는 아침 풍경도 어제와는 사뭇 다르다.
밤새 강풍 속에서 으르렁거리던 용아장성릉이 파노라마처럼 고요하게 펼쳐져 있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도 이곳에 서서 용아장성릉을 바라보았을까? 선덕여왕 13년(644년)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는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실 길지를 찾아 이곳저곳 순례 길에 나섰다.
그러던 어느 날 자장율사 앞에 아름다운 빛을 내는 봉황이 나타나 스님을 인도하였다. 봉황은 설악산 깊숙이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멈추더니 바위 꼭대기를 선회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봉황이 사라진 바위를 바라보니 바위 모양이 마치 부처님의 모습과 같았고, 산세는 봉황이 알을 품고 있는 정수리와 같은 형국이었다. "바로 이곳이로구나!" 마침내 자장율사는 이곳이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실 곳임을 깨닫고, 그 자리에 5층 석탑을 세워 불뇌사리((佛腦舍利) 7과를 모시고 작은 암자 하나를 세웠다. 그리고 암자이름을 '봉황이 부처님 이마로 사라졌다'는 의미를 가진 '봉정암(鳳頂庵)'이라 명명했다.
그곳이 바로 용아장성릉이 시작되는 해발 1224m 지점으로, 부처님 이마를 닮은 바위를 중심으로 좌우에 일곱 개의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오늘날 설악산 봉정암은 불교신자라면 살아생전 꼭 한 번 참배하고 싶은 불교성지의 메카나 다름없다. 1년 내내 수많은 참배객들이 끊임없이 찾아오고 있다.
봉정암 5층 석탑에서 참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아스라이 보였다. 사람들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듯 장엄하게 뻗어있는 등허리에 서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침 7시, 소청산장을 출발하여 다시 중청으로 올라갔다. 오늘은 중청에서 끝청을 지나 서북능선을 타고 한계령으로 내려갈 예정이다.
멀리 귀때기청봉 위로 운무가 신기루처럼 둘러져 있었다. 운무 위에 멈추어 있는 한 가닥 검은 구름이 히말라야 설산을 방불케 한다. 운무는 요술을 부리듯 시시각각으로 그 모습을 다르게 연출을 했다. 설악산은 언제 보아도 신비하고 아름답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지난 5월 27일 설악산을 등반한 기행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