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 지방선거를 앞두고 발족한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선거방송심의위원회(아래 6·4선거심의위원회)가 지난 4일 공식 일정을 마쳤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선거 때마다 정당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등의 추천을 받아 '선거방송심의위원회'를 구성한다. 하지만 선거방송심의위가 관련 업무를 모두 총괄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올릴 심의 안건을 분류하는 등의 업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무처가 담당한다.
6·4선거심의위원회는 지상파와 종편, 종합유선방송 등에 대해 37건의 심의를 진행했으며 이중 24건에 대해 법정제재 혹은 행정지도를 내렸다. 종편 채널은 총 8건이 심의 위반으로 징계를 받았는데, 채널A가 5건, TV조선이 3건이었다. 6·4선거심의위원회가 불공정한 선거판을 만들었던 방송들에게 적절한 수준의 징계조치를 취한 것일까?
민언련은 6·4지방선거를 앞두고, 종편 채널들을 모니터 해 방송이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등을 위반하며 선거에 개입한 행태에 대해 심의를 요청했다. 총 13건의 심의 민원을 넣은 것 중 법정제재인 경고와 주의가 각 1건으로 나왔고, 행정지도인 권고와 의견제시도 각 1건이었다. 나머지 9건에 대해서는 심의위원회의 논의를 거쳐 '문제없음'으로 처리되거나 정식 회의에는 올라가지도 못한 채 각하됐다. 사무처가 자체 판단으로 각하한 건수만 6건, 절반에 달한다.
방통심의위 사무처의 각하, '제멋대로 기준'
지난 5월 말, 6·4 지방선거를 일 주일 앞두고, 새누리당은 서울시장 선거의 공격 포인트로 '농약급식' 이슈를 들고 나왔다. 1년 전, 서울시가 감사원에 친환경 급식에 대한 감사를 요청했는데, 감사원이 선거를 코앞에 둔 시점에 그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보고서에는 "123건 중 2건에서 기준치를 초과하는 잔류농약이 포함돼 있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이때 검찰이 서울친환경농산물센터를 전격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농약급식' 논란과는 전혀 상관없는 오세훈 전 시장 시절 벌어진 직원 비리 문제였다. 이러한 검찰의 행동은 선거를 앞둔 시점에 '농약급식' 논란을 확대·과장·재생산 시킬 위험이 높다는 지적이 일었고, 이에 대해 검찰총장은 수사중단을 지시했다.
선거 국면에서 특정 후보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는 이슈를 다룰 경우 언론은 기사의 핵심을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 이 사안과 관련해 언론은 검찰의 압수수색이 '농약급식'과 관련된 것인지 파악하여야 하며, 전혀 무관한 사항이라면 시청자들의 연상효과를 차단하는 방향으로 편집이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5월 28일 TV조선 <뉴스쇼 판>은 <"농약 급식"…"관권선거" 공방>(최우정 기자)에서 "검찰이 두 후보의 쟁점 사안인 '농약급식' 문제와 관련해 서울친환경유통센터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해 논란이 일었다"고 보도했다. 검찰의 압수수색이 직원 비리가 아니고 '농약 급식'때문이라고 오보를 낸 것이다. 이에 민언련은 선거방송심의규정 제12조(사실보도) ①항 위반으로 심의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 사안은 정식 회의에도 올라가지 못한 채 각하됐다. 방통심의위 사무처는 "▲ 대다수의 언론에서 "검찰이 '농약급식' 논란과 관련해 서울친환경유통센터를 압수수색한다"고 언급된 점 ▲ 야권과 박원순 시장 후보 역시, 해당 수사가 '정치수사', '관권개입'이라고 규정짓고 문제 삼고 있으며, 이에 검찰이 수사보류를 결정하는 등의 관련 내용 역시 해당 리포트에서 자막과 멘트 등을 통해 언급된 점 등이 함께 감안되어야 할 것"이라며 방송심의규정상 위반 여부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사무처는 같은 형태의 오보를 냈다는 '대다수의 언론'이 어디인지 분명하게 밝히지 않았다. 백번 양보해 사무처의 주장대로 대다수의 언론이 같은 오보를 냈다면, 오보를 낸 모든 언론에 대해 심의를 하는 것이 방통심의위의 역할이다. 대다수가 오보를 냈기 때문에 TV조선도 문제 삼을 수 없다는 주장은 매우 위험한 논리비약이다.
세월호 참사 때 대다수 언론이 '전원구조' 오보를 냈다고 해서 모두 '무고'로 간주해야 되는 것인가? 대다수 언론의 오보로 희생이 커졌음을 벌써 잊었는가? 또한 민언련이 심의를 요청한 것은 '사실'이 아닌 내용을 보도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방통심의위는 엉뚱하게 야권과 박원순 시장의 의견을 리포트에서 다룬 점을 감안하여 각하했다고 주장한다. 심의를 낸 이유가 '사실관계의 오류'임에도 불구하고 공정성과 형평성 차원을 들먹이는 방통심의위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대해 "잘못하면 진보진영에게 어부지리를 안겨줄 수 있다. 참고하시라", "(보수진영의) 역선택이 우려된다"는 등 노골적으로 보수진영의 결집을 요구한 발언도 정식 회의에 올라가지 못한 채 사무처에 의해 연이어 각하됐다. "일부 보수층들의 우려를 전달한 수준"이라는 것이 사무처의 판단이다. 이렇듯 사무처가 '제 멋대로' 기준을 내세워 선거 심의 요청을 '각하'하는 것은 사무처의 업무를 벗어난 월권이다.
심의에 올라가도 '문제없음' 허다
방통심의위 사무처에서 '각하'되지 않고 안건에 상정되어도 6·4선거심의위원회의 심의 결과가 어처구니 없이 나오는 경우도 많다. 선거심의위원회는 회의에 올라간 7개 사안 중 3건에 대해 '문제없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지난 5월 18일 TV조선 <돌아온 저격수다>에서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여권이 지면, 박 대통령의 국정장악능력이 떨어져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해운 마피아 등의 문제가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는 방송매체를 이용해 "여권이 승리해야 한다"고 역설한 새누리당 선거운동원의 발언으로 간주할 수밖에 없는 불공정행위의 극치다.
TV조선의 노골적인 선거운동은 이뿐이 아니다. 5월 12일 TV조선 <뉴스1> 앵커는 서울시 박원순 후보가 '조용한 선거'를 제안한 내용을 언급하며 "어떤 문제를 덮고 넘어가자 그런 취지로도 들린다", "유권자가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없다"는 식의 멘트를 연달아 내놨다.
그러나 이 건들에 대해 심의위는 "세월호 참사 등으로 인해 국정 운영이 난항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여당의 지방선거 승패여부가 정부의 국정 운영 능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취지의 전문가적 견해를 제시한 수준으로 볼 수 있다", "서울시정을 위한 치열한 논의의 필요성을 언급한 것으로, 그 대상이 특정 후보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련 후보자들 모두에게 바람직한 선거운동 방향을 제시하려는 전문가적 견해로 볼 수 있다"며 문제없음으로 처리했다.
민언련의 민원 보고서는 세월호 참사가 국정운영능력에 영향을 미친다는 분석을 문제 삼은 게 아니다. 선거기간 중에, 박 대통령과 여당만이 해운 마피아 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편향된 주장으로 여론을 호도하여 새누리당의 손을 들어준 불공정한 행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이는 '전문가적 견해'가 아니라 방송을 이용한 명백한 선거운동이다. <뉴스1> 앵커 또한 대담자로 출연한 출연진이 '유세차 없는 선거' 등에 대해 지지 의사를 보이자, 반복적으로 부정적 답변을 이끌어 내기 위한 질문을 이어갔다. 이런 앵커의 발언을 두고 '전문가적 견해'라니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좌파가 집권하면, 대한민국 마비"가 고작 '의견제시'?5월 15일 TV조선 <뉴스1>에는 이영작씨가 출연해 노골적으로 새누리당 선거운동을 했다. 이씨는 "이번 선거에서 만약에 좌파가 이기면 대한민국이 완전히 마비된다", "대통령에게 힘을 실어줘야지 다음 거의 4년을 우리가 헤쳐 나갈 수 있는 것"이라며 새누리당이 이번 선거에서 이겨야 한다고 주장했다.
앵커들은 이씨의 발언을 제지하거나 반론을 제시하기는커녕, "좌파들이 4년 내낸 분노 마케팅을 할 것이다"라는 이씨의 말에 "정권 초기부터 그랬다", "(좌파들의)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이다"는 등 적극 호응했다. 대낮 뉴스프로그램이 대놓고 새누리당 선거운동을 한 것이다. 특히 '보도'라고 분류된 프로그램에서 정치적 중립과 공정성 등을 무시한 선거에 직접 개입하는 행위는 강력한 제재를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이렇게 심각한 사안에 대해 선거심의위원회는 고작 '의견제시'라는 가장 낮은 행정지도 처분을 내리는 데 그쳤다. 그러나 이 보도는 경고와 주의를 받은 보도보다 오히려 더 심각한 수준으로 대놓고 선거운동을 하는 수준이었다. 이러한 보도에 대해 고작 '의견제시'를 내린다는 것은 앞으로 뉴스 프로그램에서 이렇게 대놓고 선거운동을 해도 된다는 메시지를 준 것이나 마찬가지다.
상반기 재·보궐선거의 선거방송심의위원회(위원장 허영)가 지난 6월 23일 구성돼 운영 중이다. 재보궐 선거 후보자들이 확정되고 선거운동이 본격화되자 또다시 종편 프로그램의 선거편파 보도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광주 광산을에 출마한 새정치민주연합 권은희 후보자에 대해 공정성과 객관성을 위반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논란이 된 권 후보자의 변호사 시절 위증교사 의혹을 언급하며 "선량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피해 여성을 두 번 울리고 두 번 죽였다"며 비난하고(채널A <직언직설>(7/16)), 국정원 수사 외압의혹을 다루면서는 "권 후보자는 팩트가 틀린 얘기를 해서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놨다. 야당에 편승해 국회의원 달려고 하는 것"이라고 폄훼하기도 했다.(TV조선 <이봉규의 정치옥타곤>(7/12)) 그러나 해당 프로그램에서 권 후보자의 반론권은 보장되지 않았다.
이러한 사안들에 대해 선거방송심의위원회는 어떤 결정을 내릴까? 또다시 사무처의 '각하'와 심의위의 '솜방망이' 처벌로 불공정한 선거판을 만들고 있는 이들에게 면죄부를 줄 것인가? 제 역할과 구실도 못하고 '면죄부'만 날리는 심의위라면 없는 게 낫다. 재·보궐 선거 심의위원회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 두 눈 부릅뜨고 지켜봐야 할 때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