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겁나제라." 지난주 토요일(19일) 오전부터 유일수·이애선씨의 아들, 딸 칠 남매와 그 칠 남매의 아들딸들이 다~아 모였어요. 하이구메, 거기다가 허벌나게(많이) 이삐고 귄있고(잘나고 멋지다는 사투리) 귀여운 아이들 세대까지 모다 모였더니 한 60명이 되버렸어요.
서울에서, 부천에서, 안양에서, 대전에서, 정읍에서 새벽부터 출발해서 도착한 곳이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오정자 마을에 있는 '서울떽'네 안골 집이어라. 마을 회관에서도 한참 들어와서 산골짜기에 있다고 해서 안골이라 하거든요.
비가 내리면 무릉도원 저리 가라 할 만큼 냇가에 물이 흐르는 예쁜 곳입니다. 원래 제가 7남매의 막둥이 며느리거든요. 26살에 시집와서 1년 있다가 조카사위를 덜컥하니 보고 또 1년 있다가는 손주를 본 '스피드' 할머니이랑께요.
조카들이 하도 많아서 이름 외우기도 겁난디, 조카마다 이 막둥이 삼촌(남편)을 좋아하다 봉께 신혼 시절부터 가운데 파고들어서 잠을 잔 장난꾸러기들이었어요. 고것도 열댓 명이 합숙을 와서 그랬을 정도 잉게. 월매나 많은 조카들이 자기들 자식을 낳아서 지를 할머니라고 놀려 댔을지 짐작이 가시제라.
안골을 둘러보고 서 있는 저쪽 산등성이에서 누워 계신 울 시아부님과 시어머님이 피시식 웃음 시롱 정담을 나누시고 계셨을꺼구만요.
"워메 우리가 퍼트린 자식덜이 많긴 많아부네, 잉! 안긍가 임자. 허벌나게 많은디 워쪈일로 내가 고로 코롬 아끼던 덕기가 안 와 부렀네." "영감도 참 아! 큰 사우랑 셋째 사우도 안 오고 우리 곁에 온 셋째네 큰딸도 안 왔구만 모르겄오. 잉! 워쪈다고 울 막내네 두 새끼들은 안 왔다냐. 호랭이가 물어갈 것들, 겁나게 보고 싶었는디, 그려도 다 왔능거 봉께 오지고 또 오지구만요. 영감 그체라(그렇지요)."잉! 워메! 시방 내가 여그 저승으로 온 지 20년이 넘게 훌쩍 지나가 버렸응께 손주놈들 얼굴도 몰라 보겄네. 조물조물 저 아그들이 다 증손주들잉겨, 워찌야 쓸까라. 썩을것들이 죠렇게 모여서 울 덜 욕하더라도 내맴은 금방이라도 춤출 것 같구만, 안그요." 아마도 돌아가신 울 시어머니께서는 '앗따 죠것(막내 며느리인 저 서울떽을 가리킴)이 시집올 때만 혀도 라면밖에 끓일 줄 몰라서 반푼이라고 생각허고 우짜케 가르쳐서(고맙고),또 아즘 찮이고만'라고 칭찬하시고 계셨을 겁니다.
시아버님이야 저랑 20년을 넘게 살았응게 며누리의 음식 변천사는 훤히 꿰뚫으셨을꺼고라. 오죽하면 손녀 딸에게 '느그(너희) 작은 엄마는 짐(김치)도 젓가락으로 담았던 사람인디, 봐라 지금은 짐치 장사혀도 되지 않겄냐, 니도 쬐까 노력혀서 잘 혀봐라 잉'하셨을까요.
여름 손님은 배고픈 호랭이보다 더 무섭다는데...
여름 손님은 배고픈 호랭이보다도 더 무섭다는디 어떻게 다 먹고 잠을 잤는지 궁금하시제요. 아이구메, 저도 요로코롬(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묵고 잘 수 있는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겁나게 많아 버린 게 어리둥절 해버리네요.
금요일(18일)까지 해설사 일에, 학원 수업에 겁나게 바빠 가지고 제대로 마음 잡고 음식 준비는 못했거든요. 목요일 날 전북여성농민 대회 마치고 장을 보러 가서는 일단 뼈 없는 닭발 5kg와 닭똥집 2kg를 사왔어요. 그리고 오리 구이용으로 네 마리를 샀는데 한 마리당 2kg정도로 양이 되더만요. 토실토실한 토종닭으로 5마리 사오고 삼겹살은 그냥 한 15근 정도만 사 다 놨어요. 조그만 꼬마 손님들 준다고 소시지도 한 2만 원어치 사 놨지요.
장 보고 집에 오니 한밤중인디 시간이 없다봉께 기냥 뒤뜰에 있는 젠피나무 툭툭 끓어다가 밑에 깔고 닭발을 일단 삶아 냈지라. 냄새부터 없애기 위해서 그랬단 것은 아시제라.
찬물로 헹구면서 젠피나무 잎들이 붙지 않게 하나하나 떼어낸 다음 물기가 빠지면 고춧가루와 고추장과 매운 양념을 넣어 빨갛게 버무려 놉니다. 그다음 양파랑 당근이랑 매운 고추랑 소주랑 마늘이랑 넣고 어울렁 더울렁 비벼서는 숙성 작업에 들어가지요.
다음날 아침 새벽부터는 냉동실 안의 취나물, 머위대, 고춧잎 나물, 시래기 등을 내어서 자연스레 녹일 준비하고요. 고사리는 안골 밤나무 산에서 채취해서 곱게 말려 놓은 것을 한 근을 몽땅 삶아 버리는디 지키고 서서 지대로(제대로) 삶아지는지 봐야 헌당께요.
미식가인 남편이 푸욱 삶아지는 것은 손도 안 대버링게 조심혀야 하지요. 그리고는 후다닥 도서관 운영위원회 회의 갈 준비허고 점심 식사허고 나서 학원에 갈 시간 동안 남은 시간에 <오마이뉴스>에 보낼 글을 써 봤제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글을 쓰기 시작혔는데 이번에 메인에 뜬 기사여라. 후후. (관련기사:
"배추 두 트럭 팔았는데 순댓국 값도 안 나옵니다")
그리고는 5시부터 학원에 기사 수업하고 오후 10시까지 아이들 가르치고 집에 오자마자 드르렁 코를 골고 자 버렸지요.
운명의 토요일, 새벽 5시부터 우려낸 고사리를 지지고 온갖 나물들 된장과 간장에 들기름으로 팍팍 무치고. 일찍 온 이들을 위해 밥도 한 솥단지 앉혀 놓고 시래기국을 끓였지요. 뒤뜰 장독대에 가서 된장과 고추장 퍼다 놓고는 급하게 들어온 해설이 있어서 딸에게 뒷일을 부탁하고 '고추장 익는 마을'에 가서 체험 해설했구먼요. 맴은 콩밭에 나가 있어도 체험오신 분들도 중요 헝께요.
워쪄신가요. 제 행적 따라오기만 해도 허천나게(많이) 바쁘제라. 그런데도 이미 안골 골짝에는 9시 반부터 식구들이 도착하기 시작하면서 시끌벅적 잔치 집이었나 보더라고요. 초록빛 감나무 아래마다 알록달록 텐트가 쳐지고 시제산 올라가는 다리 위에도 텐트가 쳐지고 안골 들어오는 입구에도, 게다가 기계창고에도 치니 총 12대의 텐트들이 있더라고요.
재빨리 집에 와서 봉께, 이미 닭발은 절반 넘게 먹었는지 저를 보자마자 너무 맛있다고 달려와서 앵기는(안기는) 조카들 땜시 발자국을 옮길 수가 없었당께요. 수도마다 호스가 연결되어서 물을 뿜어대고 있고, 쬐깐(조그만) 아이들은 전국에서 단 하나밖에 없는 수영장에서 놀고 있는데... 이 물이 지하 150m에서 퍼 올린 지하수여서 차가워서 입술 시퍼래져졌는데도 마냥 즐거워서 어쩔 줄 몰라 하고요.
모든 음식은 순식간에 사라지고...저보다 덩치도 큰 조카 사우들과 조카들은 비가 오고 난 개울가에서 아예 물속에 엉덩이를 걸치고 마음 편히 앉아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건배하고 있는데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더라고요. 15근 정도된 삼겹살은 저도 맛을 못 볼 정도로 순식간에 없어졌어요. 안골 골짝 끝 모퉁이에 있는 사방댐 근처에서는 완전히 자연 폭포까지 만들어져서 신선이 따로 없었나 보더라고요. 신선탕과 선녀탕에서 물 만난 고기들이었답니다.
알뜰하신 형님(시누이)들께서 아침부터 옥수수를 한 100여 개를 큰 솥단지에서 쪄내셨다는데 너무 맛나더라고요. 이미 아이들까지 한 자루씩 붙잡고 냠냠냠 먹어 치웠던 상태였고요. 오후에는 막걸리 술빵을 네 솥단지를 쪄냈습니다.
안양 사시는 형님이 처음 농사지으신 콩과 함께 쪄냈는데 보기만 해도 겁나게 맛있어 보이지요. 물 속에 있다가 배고프면 나와서 먹고 또 먹고 다~아 없어졌습니다. 맥주가 6박스 이상이 나갔고, 소주가 세 박스 없어졌응게. 안주도 허벌나게 없어졌겠지라.
상상해 보세요. 저녁에는 옻닭 3마리와 닭백숙 2마리가 동시에 상에 올라갔제요. 손 한 번 씩만 갔다 와도 순식간에 사그리 없어집니다. 옻 국물은 전날 저녁부터 삶아서 진한 황금색으로 올라왔으니 월마나 구수하고 맛나겠어요. 그런데도 우리 조카들은 요걸로도 성에 안 찹니다.
제가 해 주는 이것을 못 먹으면 일 년을 못 버팅긴다고 애원하는 음식이 있지요. 닭 국물에 무시(무우) 넣고 보글보글 끓여 주는 것을 밤새도록 우려먹습니다, 닭 고기만 바르고 뼈다귀만 남겨서 국물에 넣어가지고 밤새 무시 넣고 끓여 먹음서 못다 한 이야기를 하며 '건강을 위하여'하고 건배사를 허는디 아조 웃겨부러요.
아이들을 위해 불꽃놀이도 준비했습니다. 그날 생일인 조카를 위해 즉석 막걸리 빵에다가 막대기 꽂아서 생일 축하 노래도 신명 나게 불러주었습니다. 갑자기 앞에 앉았던 조카가 벌떡 일어서더니 깊숙이 저에게 절을 합니다.
"이렇게 행복한 시간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고요. 옆에 있던 조카들이랑 조카 사우들이랑이 술김에 모두 일어나더니 90도 각도로 절을 하고는 엄지를 치켜듭니다. 아조 쑥스럽게 말이죠.
실은 저도 고마웠습니다. 이렇게 많은 식구들이 거의 한집에서 부득이한 경우만 빼고 다~아 모여주는 것도 감사하고, 서로 오순도순 할 얘기도 많아서 웃음꽃 피우는 것도 감사하고요. 특히 아무것도 모르던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새로운 시댁 식구들과 만나서 함께 아우르는 삶을 살게 되어서도 고마웠습니다. 항꾸네(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복 짓는 일이니까요. 작년부터 시작된 이 모임이 이제 자연스레 정착이 돼갑니다.
결혼식장에서 스윽 지나치는 친척 관계가 아니라 추억과 웃음을 공유하는 한 식구가 되어서 생각만 해도 미소가 피어나는 식구들이 되겠지요. 제가 한바탕 일을 꾸몄습니다. 우리 집이라는 텃세를 사용하여 '모다 모여' 해 가지고 공동 사진을 찍었당께요.
시아버님 구순 잔치 때도 못 찍었고 다른 모임 때도 못 찍었던 분풀이를 단체 사진들을 마구 눌러 대는 것으로 해서 했습니다. 어떤가요. 우리 식구들 멋있나요. 행복해하는 모습들은 아무 데서나 찍어도 작품이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습니다.
이 사진들을 보며 내년을 기약해야겠죠. 제사 때랑 모이지만 같이 휴가 보내는 기분하고는 다르겠죠. 아마도 내년에는 더 많은 조카들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아이들이 안 가겠다고 더 놀다 가겠다고 떼를 쓰는 진풍경이 가는 날 아침에 벌어졌으니까요. 북어 해장국에 맛나게 아침을 먹고 모두들 떠난 뒤 마지막에 가시는 울 큰 형님 저 끌어안고 한마디 하십니다.
"기냥 고맙네." "형님, 저도 고마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