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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응원단 파견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실무접촉이 지난 1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수석대표인 권경상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이 손광호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인천 아시안게임 북한 응원단 파견문제 등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 실무접촉이 지난 17일 오전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렸다. 수석대표인 권경상 인천아시아경기대회 조직위원회 사무총장(오른쪽)이 손광호 올림픽위원회 부위원장을 만나 인사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

과학철학자 토마스 쿤이 1962년 '과학혁명의 구조'를 통해 설파한 이 개념을 남북관계에 갖다 붙인 것은 이명박 정부 시절의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었다.

그는 2009년 8월 23일 김대중 전 대통령 조문을 위해 서울에 온 북한 조문단과 이명박 대통령의 면담에 대해 "각국 조문단 접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라고 규정하면서 이 표현을 썼다. "남북한은 같은 민족이라는 특수한 관계이지만, 이 틀에서 벗어나서 국제적으로 보편타당한 관계로 발전해야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될 수 있다"며, '국가 대 국가' 관계가 되는 것이 남북관계의 진화라고 주장했다.

이런 기조를 가졌던 MB 정부 대북정책에 대해서는 이미 '잃어버린 5년'이라는 역사적 평가가 내려졌다. 그럼에도 '남북관계의 국제관계화'라는 목표가 박근혜 정부에서도 그대로 이어지면서, 파국상태인 남북관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지난 17일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여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실무접촉에서, 남측은 "선수단 350명과 응원단 350명을 파견할 테니 편의제공을 해달라"는 북측에게 "국제관례와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규정에 따르는 게 바람직하다"고 답했다.

인천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 기획팀에 따르면, '국제관례와 OCA규정'은 선수단과 응원단 체류비를 자국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다. 인천아시안게임의 경우에도 선수 1인당 1일 50달러인 선수촌 사용료를 내야하고, 응원단도 기본적으로는 관광객이라는 관점에서 자비부담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경제력이 약한 나라의 경우 OCA가 나라별로 20명~50명까지 정한 인원에 대해서만 항공비와 선수촌 사용료를 대회 조직위원회가 부담하되, 해당국을 외부로 알리지는 않는다.

회담이 결렬된 뒤 정부는 "(우리 회담 대표단이) 자비 부담 얘기는 꺼낸 적이 없으며 구체적인 문제는 협의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국제관례'라는 말이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 2003년 대구 하계 유니버시아드 대회, 2005년 인천 아시아 육상경기대회 때와는 달리 이번에는 북한 대표단 체류비를 자체부담하라는 뜻임을, 북한 올림픽 위원회 부위원장인 북측의 손광호 수석대표가 알아듣지 못했을 리 없다.

북한의 인천 아시안게임 참가에 국제관례를 적용할 것이라면, 왜 별도의 남북한 실무 접촉을 한 것인가. '남북한이 국가 대 국가 관계가 되는 것이 진화'라면 외교부 내 통일국이 아니라 왜 별도의 통일부가 존재하고,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는 통일준비위원회라는 조직을 만드는 것인가.

이같은 시각은,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의 뿌리인 노태우 정부가 북한과 체결한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북관계를 '나라와 나라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한 관계'라고 규정한 것과도 어긋난다.

북한에 국제관례 적용? 통일준비위는 왜 만드나

북한이 상습적으로 약속을 어기고,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대접받을 만한 행동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반론이 나올 수 있다. 그럼 남한은 계속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행동만을 해왔던가.

대통령 선거 승리를 위해 집권당 의원들과 최고정보기관인 국가정보원이 2012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전문까지 공개해버렸다. 30년 후에나 공개할 수 있게 돼 있는 최고 수준의 문서를 전문 그대로 공개해, 외신들로부터 "한국에선 정보기관이 누설자(Leaker)"라는 망신까지 당해야 했다.

'선수단-응원단 합쳐 700명'이라는 역대 최대 규모 북한 대표단이 육(경의선)해(만경봉 92호)공(서해직항로)을 통해 이동하는 '퍼포먼스'가, 5.24조치를 무력화하는 북한의 선전무대가 될 것이라고 두려워 하는 수준으로, '통일준비'라는 거창한 말을 하기는 어렵다.

현재까지 체육경기에서 최대 규모 북한 대표단은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때 650명이었고, 이들에게 지원된 체류비는 13억5500만 원이었다. 이번 인천 아시안 게임의 경우 700명 전원의 체류비는 가장 많게 잡아도 20억 원 안쪽이다.

오히려 이 정도 돈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물꼬를 틀 수 있다면, 그야말로 '대박'이라 할 만하다.

그간의 1회성 남북정상회담을 뛰어넘어 박 대통령 임기내 2회 이상의 정상회담을 이뤄내려면 박 대통령 집권 3년차이자 분단 70년인 2015년에는 '박근혜-김정은 회담'이 성사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올해 하반기 남북관계 상황이 중요하고, 이번 박 대통령의 8.15 경축사가 중요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박 대통령의 제안이 일방적인 제안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사전 정지작업이 필수적이다. 남북관계 개선이라는 측면에서 이번 인천 아시안 게임이 주목받는 이유다.


#인천 아시안 게임#북한 대표단 체류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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