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한 명 죽으면 도서관이 하나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적게는 칠십년 많게는 백년 가까이 축적해온 지혜와 경험이 사라지는 것을 비유하는 것처럼 나에게는 가게가 하나 사라진다는 건 추억이 없어진다는 걸 의미한다.
2011년부터 자주 드나들던 카페가 하나 있었다. 다른 지역에서 유명해져 장소를 옮겼다는 이 가게의 가장 큰 특징은 핸드드립을 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창기 인테리어는 바가 있어 바리스타가 내려주는 커피를 보면서 시음할 수 있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은 베이커리 메뉴가 풍성하다는 점이었다. 대부분의 대형체인점 카페는 디저트류를 직접 만들거나 조리하지 않지만 이 집은 베이글부터 샌드위치까지 직접 다 만들었다. 그 덕분에 견과류가 가득 박힌 베이글과 신선한 샐러드 그리고 따끈따끈한 샌드위치를 즐길 수 있었다. 게다가 커피와 세트메뉴로 즐기면 단 돈 5000원에 한 끼를 때울 수 있을 정도로 저렴했다.
'저래가지고 뭐가 남을까?'나는 그래서 늘 궁금했다. 직접 만든 샌드위치와 커피를 저렴한 가격에 팔아 대로변에 위치한 가게 세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있는지를. 그리고 다소 한산한 가게내부를 볼 때면 나만이 알고 있는 맛집인 것 같아 좋으면서도 누군가에게 알려줘야 '나만의 맛집'이 사라지지 않고 명맥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모순적인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의 우려와는 달리 나와 같은 단골손님이 꽤 있어 가게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그렇게 4년을 동행만 바꿔가며 나는 같은 자리를 지켰다. 창가에서 세 번째 자리는 나의 지정석이었다. 밖도 적당히 잘 보이면서 의자도 두 개 뿐이라 혼자 가도 눈치가 안 보이는 자리. 심심할 때면 책 하나를 골라 이곳에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절하던 바리스타 한 명이 갑자기 안 보이고 주인언니 혼자서 서빙을 하기 시작했다. 얼마 뒤 묘령의 남자가 찾아오더니 둘은 계약서를 주고받았다. 표정으로 보나 분위기로 보나 좋은 일은 아닌 듯했다. 알고 보니 주인언니가 차를 팔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메뉴의 가격도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듣기로는 대로변에 위치한 그 가게는 결코 넓지 않았지만 월세가 150만 원에 육박한다고 했다.
'그럼 도대체 커피를 몇 잔을 팔아야 해?'그리고 얼마 뒤, 그 카페 근처에 대형체인 커피숍이 들어섰다. 그때 나는 직감했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는 걸. 이제 시간문제라는 걸. 몇 번을 더 드나들었을까? 주인언니의 통화는 점점 더 내용이 심각해져갔다. 그리고 얼마 뒤 캐나다로 여행을 떠난단다.
'문을 닫나? 설마?'그리고 몇 달 뒤인 2014년 어느 날, 다시 찾은 카페는 예전의 그 모습이 아니었다. 주인도 바뀌어 있었다. 같은 메뉴에 같은 인테리어였지만 오묘하게 맛은 달랐다. 더 좋아졌건 더 나빠졌건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그날 가게를 나오면서 생각했다.
'아 나의 또 하나의 추억이 사라졌구나.'노인의 죽음을 아쉬워하듯 나는 나의 추억이 사라진 걸 아쉬워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