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꿈을 꿨어요. 식당에서 좋아하는 김치찌개를 시켜 놓고 막 먹으려는데 번뜩 정신이 드는 거예요. '아참, 나 단식중이지'하고. 단식 끝나고 먹게 싸달라고 말 하려는데, 꿈에서 깼지 뭐예요. 얼마나 안타깝던지." 얼굴이 까맣게 탄 전준호 안산시의원이 간밤의 꿈 이야기를 하며 애써 너스레를 떨었다. 지난 28일 오후,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8일째 단식 중인 전 의원을 만났다. 이날은 세월호 참사 104일째였다.
4선 의원이자 전임 시의회 의장도 지낸 전 의원(현 의회운영위원장)은 지난 21일부터 시의회 현관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찌는 더위에 몸은 버틸 만한지 걱정이 앞섰지만 그는 의외로 태연했다. 그는 "그래도 여긴 그늘이라도 있어 유가족들에 비하면 편하게 단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의 단식 이후 22일부터 새정치민주연합 시의원 8명이 앞서거니 뒷서거니하며 릴레이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새누리당 소속 송광승, 윤석진 의원도 동참했다. 여의도와 달리 안산에서는 여야가 없는 셈이다. 안산시의회는 최근 '세월호 참사 피해대책 마련과 안전도시 구축을 위한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다.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약속 위해 단식 시작"
단식을 왜 시작했는지 물었다. 그는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29일 현재 특별법 제정을 요구하며 국회와 광화문광장에서 16일째 단식을 이어가고 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은 7시간 동안 어디에 있었는지 확인이 안 되고, 대면보고도 제대로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이후 단 한 명의 생존자도 구조하지 못하고,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특별법을 제정하자고 해놓고서도 (대통령은) 일언반구도 없다. 이것처럼 우리 정부의 현실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건 없다고 본다."세월호특별법 제정을 놓고 새누리당 안과 새정치연합, 유가족 안이 다르다. 온도차가 커도 너무 크다. 유가족들은 진상규명을 위해 조사위원회에 수사권·기소권을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반면에 새누리당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며 펄쩍 뛰고 있다. 그는 곁에 있는 '철저한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촉구!'가 새겨진 노란색 피켓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특검이나 국정조사 등을 통해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고 책임자가 처벌된 적이 있었나? 없다. 유가족들이 수사권·기소권을 요구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일부 언론에서 가족들이 의사자 지정이나 대학특례 등을 원한다고 하는데, 내가 팽목항(그는 4월 16일부터 5월 3일까지 진도에 머물렀다)에 있을 때나 지금이나 유가족들은 오히려 손사래를 치면서 반대했다. 일부 언론의 왜곡보도가 도를 넘었다."전 의원은 특별법 중 논란이 되는 '의사자'에 대해서도 간결하게 설명했다.
"미국에서는 9.11테러로 희생된 이들과 소방관을 히어로(영웅)로 부른다. 우리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과 민간잠수사들을 기억하기 위해 '의롭게 죽은 이들(의사자)'로 부르는 게 아닐까. 앞으로 살아갈 이들을 위해 본보기로 삼자는 의미다."
특별법 제정과 관련 새누리당은 수사권 문제를 뒤로 한 채 배상·보상 문제를 전면에 부각하고 있다. 반면 새정치연합은 배상·보상 문제와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권 문제를 분리하고, 수사권 문제를 먼저 논의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새누리당은 조사권만 갖는 진상규명위원회와 상설특검을 대안으로 제시됐다. 전 의원은 이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조사만 하고 기소는 안 한다는 것은 재판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유무죄를 다투지 않겠다는 뜻이다. 사실상 조사의 실효성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죄를 지으면 처벌하는 것이 순리다. 진상조사위원회가 기소하든 법무부장관이 기소하든 실정법에 따라 기소해야 책임을 묻고 처벌할 수 있다. 왜 책임자를 처벌하고 기소하려는지 그 의미와 진정성을 공감한다면 방법은 무수히 많다고 본다.상설특검이냐 아니냐 보다 내용이 중요하다. 그동안 특검을 많이 했고, 결과는 뻔했다. 따라서 특검을 하더라도 야당이 추천한 특검이 돼야 한다. 헌데 새누리당은 특정 정당이 추천하는 건 안 된다고 한다. 그럼 현재 특검 임명권자는 누군가? 여당은 정당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에 정부 책임이 크다는 건 박 대통령도 인정했다. 죄 지은 사람에게 죄를 묻겠다는데, 죄 지은 쪽이 죄 따질 사람을 임명한다는 게 말이 되나? 방귀 뀐 놈이 되레 성을 내는 세상을 더는 용납해서는 안 된다." 새누리당은 사법체계의 근간을 뒤흔든다는 명분으로 수사권·기소권을 양보할 수 없다고 못박고 있다. 전 의원은 "새누리당이 국민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기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통령이든 촌부이든 가릴 게 없는 세상이 돼야 한다. 실체를 밝혀야 함에도 장벽을 쳐서 존엄을 건드리지 말라? 청와대와 대통령이 수용 안 해서?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은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유가족은 24일 밤 청와대로 행진하면서 '약속을 지키라'고 절규한 것이다." 그는 "국민들이 공분하는 것은 국가가 국민의 생명을 제대로 지키고 보호하지 못해서 아닌가. 여당의 정책위 의장은 세월호 참사를 '교통사고'에 비유했다. 그러면 (국민은) 왜 국가에 세금내서 내 생명 구해달라고 하나. 각자 알아서 살면 되는 거 아닌가. 주범과 종범은 분별해야 하지만 종범을 주범으로 둔갑시켜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여야가 치열한 공방을 벌이는 가운데 28일 시민단체, 종교계, 학계, 문화계 인사들이 제대로 된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촉구했다. 시민사회는 29일까지 정부 여당이 특별법을 통과시키지 않으면 국면이 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사회적 합의는 가능할까?
"유가족 단식은 목숨 건 싸움, 살아남아야 한다""이웃이 상을 치르면 상갓집에서 상주와 함께 밤을 새우는 게 우리네 미덕이자 예의이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책임이었다. 때로는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위로하고 장지까지 상여도 메고 만장도 들고…. 그런 마음으로 한다면 사회적 합의를 이뤄낼 수 있다고 본다. 상식과 순리, 인정과 마음이 우러나는 나눔으로 풀어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만, 정부여당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지. 그렇지 않으면 사회적 해법 찾기도 난망한 일이된다."그는 언제까지 단식할 생각일까. 단식이 길어지면서 일부 의원들이 불편해 한다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할 일이 산더미인데, 밥 굶고 있을 수만은 없지 않느냐는 지적이다. 그는 이해한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는 부담과 미안함을 더 가지라고 단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어젯밤,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모처럼 집에 들어갔더니 아내가 끓인 죽을 슬쩍 밀어 놓았다고 한다. 아내의 타는 속을 모르지 않지만 씨익 웃으며 집을 나섰단다. 세 딸의 아빠인 그가 중1인 둘째 딸에게 단식 사실을 문자로 보냈더니 "네, 무리하지 마세요"라는 답신이 왔다고 한다. 그에게는 속 깊은 네 명의 든든한 후원자가 있다.
단식은 7월 31일까지로 정했다. 원내에 복귀해 세월호 특위 활동에 주력할 참이지만 상황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다고 한다. 만에 하나, 세월호특별법이 '밀실야합'으로 제정된다면 그것만큼 최악은 없다고도 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질 것이라 했다. 2시간에 걸친 인터뷰 내내 흐트러짐 없이 꼿꼿함을 지키던 그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사실 단식에 동참하면서 극단적인 상황에 대한 우려와 경계가 컸다. 단원고에서 가수의 꿈을 키웠다는 보미 학생의 엄마도 21일부터 국회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틈틈이 통화를 하고 카톡을 하면서 서로 격려한다. 살아남아서 싸워야 한다고. 지금의 (유가족) 단식은 목숨을 내놓는 하는 결단이자, 결사다. 하지만 목숨을 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결단코 벌어져서는 안 된다. 진상규명을 위한 싸움을 위해서라도 살아 있어야만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그래스루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