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하루 동안 두 명의 관심병사가 부대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오후 22사단 전투지원중대 소속 신아무개 이병이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돼 응급 치료를 받았지만 한 시간 만에 사망했다. 3사단에서도 화장실에서 목을 맨 박아무개 이병이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역시 숨졌다.
숨진 두 명의 병사는 모두 '자살고위험군'인 A급 관심병사였다. 신 이병은 입대 전 자살을 시도한 경력이 있어 신병교육대에서부터 특별관리 대상이었고, 박 이병도 역시 전입 후 우울증 증세로 A급 관심병사로 분류됐다.
현재 A급 관심병사와 중점관리 대상인 B급 관심병사는 전 군에 약 1만 7000명~2만 명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지난 6월 22사단에서 총기를 난사해 동료 병사 5명을 숨지게 했던 임아무개 병장도 당초 A급 관심병사에서 B급 관심병사로 하향 분류된 후 실탄을 다루는 GOP 경계근무에 투입되었던 터였다.
B·C급 관심병사도 GOP 근무 가능... "투입 여부 지휘관에 맡기는 건 문제"표준인성검사(KMPI)를 통해 이루어지는 보호관심병사 제도가 마련된 것은 지난 2005년 장병 8명이 숨진 28사단 GP 총기난사 사건 이후부터다. 당초 육군은 관심병사를 실탄과 수류탄이 지급되는 GOP근무에 투입시키지 않았지만 최근 병력 감축이 계속되면서 A급 관심병사를 제외한 B·C급은 GOP 근무가 가능토록 변경했다.
그러나 최근 잇따른 병영 내 사건·사고들은 관심병사의 분류와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은 "2011년 해병대 총기 사건 이후 병무청 신체검사, 훈련소 입소, 자대 배치 직후 한 번씩 인성검사를 받도록 3중 필터 제도를 만들었다, 문제는 여기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더라도 지휘관이 심리학적인 전문성이 없기 때문에 A를 줘야 할지, B를 줘야 할지, C를 줘야 할지 잘 모른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임 소장은 또 "관심병사의 근무 투입 여부 판단을 지휘관의 재량에 맡긴다는 것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며 "지휘관을 포함한 전문 상담관과 군의관이 함께 평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방부도 현재의 보호관심병사 제도에 허점이 많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지난달 22사단 총기 난사사건 직후 국방부 관계자는 "현재 대대장 이상 지휘관이 임의대로 관심병사 등급을 변경해왔던 관행을 개선할 계획"이라며 "앞으로 관심병사 등급을 변경하려면 전문 심사관의 심의를 반드시 거치도록 제도를 변경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회전반적인 출산율 저하로 병역 자원이 줄어들면서 군대에 필요한 병력수급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는 가운데, 징집기준을 계속 완화시켜 현역복무자 수를 유지해온 군 당국의 태도가 군내 사건·사고의 한 원인을 제공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이런 사실은 병무청 현역 판정 비율이 잘 설명해주고 있다. 지난 1980년 45.4%, 1990년 64.2%로 점차 증가해온 현역 판정 비율은 2000년대 이후 90% 안팎으로 유지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현역 복무 부적합 판정을 받았을 사람들까지 군대에 오게 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는 대목이다.
지난해 병무청 국정감사 송영근 새누리당 의원이 병무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신검 인성검사 이상자 현황'에 따르면, 2012년 신체검사 대상자 37만5525명 중 7.4%에 해당하는 2만7836명이 인성검사 이상자로 분류됐지만, 이 중 4216명만이 현역복무를 하지 않는 4급·면제·재검 등 판정을 받았다. 85%에 해당하는 나머지 2만3620명은 모두 현역병으로 입대한 것으로 드러난 것.
병력수급 점점 어려워지는데... 비용 적게 드는 '대규모 징집병' 고집물론 군도 할 말은 있다. 우리의 안보를 위협하는 북한의 군사력이 대규모 지상군 위주여서 이에 대비하기 위해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기술군 중심의 해·공군을 증강시키기보다 대규모 징집병을 유지하는 것이 비용이 훨씬 덜 든다는 이유도 있다.
이런 인식은 신임 한민구 국방장관의 언급에도 잘 드러나 있다. 한 장관은 지난 20일 KBS '일요진단'에 출연해 "현재의 64~65만 명의 의무복무병사 체제가 비용이 가장 적게 들어가는 체제"라고 설명했다.
앞으로 군 인력 수급상황은 점차 어려워질 전망이다. 통계청 추계에 의하면 저출산의 영향으로 18세 남성 인구는 2010년 36만 명 수준에서 2020년 26만 5000명, 2030년 20만 9000명, 2040년 18만 2000명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나타났다. 오는 2040년이면 2010년 대비 절반이 감소하게 되는 것이다. 병역자원 감소에 따른 군대 규모 축소는 우리 사회가 처한 불가피한 현실인 것이다.
한 장관도 "2006년부터 국방개혁을 추진한 이유는 저출산 추세를 고려해 병력 수준은 감축하고 그 대신 질적으로 전력수준을 높여 유지한다는 그런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3월 국방부는 우리 군의 상비병력을 52만 명 수준으로 줄이고 이 중 40% 이상을 간부로 편성하는 것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방개혁 기본계획(2014-2030)'을 발표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우리 군의 상비병력은 현재 63만 3000명에서 오는 2022년까지 52만 2000명으로 11만 1000명이 줄어든다.
해군(4만 1000명)과 공군(6만 5000명), 해병대(2만 9000명)는 병력규모에 변화가 없지만, 육군은 현재의 49만 8000명에서 38만 7000명으로 줄어든다. 줄어드는 11만 1000명 모두가 육군 몫이다.
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 임기 중 감축되는 병력은 1만 명 남짓이다. 나머지 10만여 명을 다음 정부에서 줄여야 하는데, 국방부 계획대로라면 차기 정부 5년 동안 매년 2개 사단에 가까운 병력을 줄이겠다는 얘기다. 안보전문가들은 이런 계획은 다음 정부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김종대 <디펜스21 플러스> 편집장은 "최근 중국과 일본, 북한 등 동북아시아의 모든 군이 병력 감축과 혁신의 길을 가는데, 우리 정부만 전작권과 예산을 핑계로 이를 회피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떠안은 다음 정부는 재앙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무엇보다 군 병력 감축이라는 냉엄한 현실 앞에 군 당국의 인식은 너무 안이하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그 단적인 예가 바로 전방 철책지역에 무인 감시장비를 설치해 경계근무에 필요한 병사의 수를 줄일 수 있다는 GOP 과학화경계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현재 병사들이 육안으로 감시하고 있는 휴전선의 경계를 중거리·근거리 카메라 등 최신 감시장비와 철조망에 설치하는 감지장비 등을 활용하는 경계체제로 바꾸는 것이다.
군 당국은 이 사업이 완료되면 최전방 철책선 경계근무를 맡는 병력이 현재의 절반 수준인 5000여 명으로 줄게 된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 2007년 10월 22일 국회 국방위 육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당시 박흥렬 육군참모총장은 "현재 10여 개 사단, 1만여 명이 맡던 경계근무를 수 개 경비여단, 5000여 명이 담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하지만 당초 계획과는 달리 무인감시시스템이 설치되어도 최전방 병력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3일 육군본부 관계자가 종합편성채널 JTBC에 "적 침투 등 비상시 투입인원과 시설 유지·보수 인력 등이 필요해 병력감축이 어렵다"고 밝힌 것.
무인감시시스템 도입되면 GOP 경계에 필요한 병력을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라 관심병사 투입도 줄이려던 계획이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한 예비역 인사는 "싫든 좋든 뼈를 깎는 국방개혁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할 수밖에 없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는 국방개혁이란 말 자체가 사라져버렸다"면서 "철책을 감시하는 병력을 줄일 수 있다는 이유로 엄청난 예산을 들이고도 병력은 여전히 그대로 필요하다는 얘기를 한다는 것은 군의 안이한 인식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인사는 또 "고위 지휘관들은 국방개혁을 '고양이 목에 방울달기'로 치부하고 있는데, 지금 정부에서 미뤄놓은 국방개혁이 다음 정부에서는 폭탄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