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도 대통령 될 수 있는 세상…. 글쎄요,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요. 우리가 정말 '더 이상은 못 살겠다' 싶을 때, 언젠가는." 어쩌면 예견된 패배였다. 야당 국회의원이 3선을 하며 지역 기반을 다져왔고, 집권여당의 후보도 '새 인물론'을 펼치며 나선 7·30 재보궐선거 경기도 평택시을 선거구. 이런 상황에서 지역민들에게는 이름조차 생소한 '노동자 후보'가 출사표를 던진 것은 무모한 선택일 수 있었다.
그러나 김득중 무소속 후보(금속노조 쌍용차지부장)은 선거일까지 자신의 자리를 지켰고, 그를 지지하고 그가 지지하는 사람들을 위한 예의를 지켰다. 노동당·녹색당·정의당·통합진보당이 지지하는 '진보단일후보'였던 김 후보는, 30일 선거 결과 5.63%(3382명) 득표율을 기록해 '아름다운 패배'를 맞았다(유의동 새누리당 후보 52.05%로 당선 확정,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기준).
개표결과가 생방송으로 발표되던 30일 오후 10시께, 평택 합정동에 있는 선거사무소에는 낮은 침묵이 흘렀다. 김 후보를 비롯해 선거대책본부(아래 선대본) 관계자 10여 명과 지지자 10여 명이 전광판 앞에 모여 선거 방송을 지켜봤다. '재보궐 선거 축 당선' 문구가 적혀 있던 선거일정표는 결과적으로 공수표가 됐지만, 지지자들은 김 후보에게 "그간 수고했다"라며 격려하는 모습이었다.
'목숨 뺏는 정치를 끝내고 살리는 정치를 하겠다, 노동자 손으로 직접 바꿔내겠다'며 출마선언을 했던 김 후보. 30일 오후 8시, 개표 직전 사무실 근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이번 선거에 대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본다"라면서 "다만 지역 곳곳에 계신 주민들의 얘기를 충분히 듣고 싶었는데 시간이 짧아 아쉬웠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2주 넘게 곡기를 끊고 '특별법 제정 촉구'를 외치고 있는 세월호 유족들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김 후보는 "세월호 문제가 쌍용자동차 노조가 겪었던 과정처럼, 여야가 시간을 끌다가 결국 유야무야되지 않을까 우려된다"라면서 "그걸 막기 위해서는 전체 야당이 함께 목소리를 내고 싸워야 한다, 적당하게 '상생'이나 '통합'을 얘기해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투표일 오전, 평택 원평동 제1투표소(평택초등학교)에서 만난 자영업자 이아무개(45)씨는 김 후보를 언급하며 "노동자도 대통령 될 수 있는 세상이어야 하는 건 맞지만 그게 어렵지 않느냐"라고 말했다. 이 얘기를 전하며 김 후보에게 '언제쯤 그런 세상이 올 것 같냐'고 물어봤다. 그는 "'정말 더 이상 못 살겠다' 싶을 때, 언젠가는 오지 않겠냐"라며 씁슬하게 웃었다. 다음은 김득중 후보와 만나 나눈 일문일답 내용이다.
"'의미 있는 완주'했다"
- 투표일이었다. 오늘 하루는 어떻게 보냈는지.
"오전에 어머니를 모시고 함께 투표소에 가서 투표했다. 전반적으로 조용하고 차분하게 보냈다. 노동자 밀집 지역의 득표율이 높게 나오길 바랐는데, 운동을 하고 돌아다니며 보니 아무래도 어려운 일이더라. 구조적으로도 그렇게 돼 있는 것 같다."
- 지난 선거운동 기간을 스스로 평가한다면.
"충분히 의미 있었다고 본다. 다만 13일이라는 기간(7월 17~29일)이 짧았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평택 지역이 넓어서 절반도 다 못 돌았고, 농촌 지역은 거의 못 간 게 아쉽다. 특히 운동 기간 장애인 분들을 몇 분 만났는데 그분들이 생계의 어려움 등 하소연을 많이 하시더라. 제가 쌍용차 해고자로써 노조 운동을 할 때도 누군가 우리 얘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것처럼, 그분들의 얘기를 충분히 들어드리고 싶었는데 시간상 그게 힘들었다."
- '노동자 후보' 출마에 대해, 공장에 있는 동료 노동자들의 반응은 어땠나.
"많이들 응원해줬다. 그런데 진보정당의 내부 갈등이나 분열에 대해 불신이 큰 것을 봤다. 도시인들의 삶이 다 피폐해지고 있다고 하는데, 노동자들의 삶과 감정도 그렇게 메말라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지역에서 대중과 관련한 활동이나 교육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 취재과정에서 만난 김 후보 지지자들은 '의미 있는 완주'라는 말을 많이 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한다. 김득중의 완주는 저만의 완주가 아니라, 함께해준 모든 분들의 완주다. 정영신(용산참사 유가족)씨가 수행 팀에서 함께 하는 등 보이지 않게 힘써준 숨은 공신들이 많다.
일각에서는 '사표'가 된다며 말렸지만 지지하는 사람들의 판단은 다를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새정치민주연합 측에서도 공공연히 그런 얘기를 했고, 3~4일 전부터는 지역 신문도 여야 양당 구도로만 다뤘다. 그러나 저를 지지하는 분들에게는 정부 여당은 물론 야당이 보여 온 무기력함에 대한 분노가 깔려 있었고, 또 '저 사람이 (당선이) 되지 않는다 해도, 나의 문제를 공론화하고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것에 대한 공감대가 있었다고 본다."
- 지지자들은 '다음에 또 기회가 있다'고 얘기하기도 한다. 혹시 차기 출마에 대해 생각해봤나."생각해보진 않았다. 다만 이곳 평택이 노동자 후보를 내세우면서 진보정당과 시민단체가 함께 준비해왔는데, 선거 후에 그대로 흩어지는 게 아니라 꾸준히 함께 고민하고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노동자들의 야당에 대한 불신과 외면을 깨뜨리는 과정이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후보는 제가 아니더라도 좋은 분들이 많지 않나(웃음)."
"전국에서 모인 1억 이상의 후원금... 함께해준 분들 있어 행복했다" - 지난 14일에 국회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찾은 후보를 봤다. 현재 유족들은 계속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며 17일째 단식농성 중인데.
"예전에도 드린 얘기지만, 자꾸 세월호 문제에서 쌍용자동차 노조가 겪었던 과정을 본다. 당시 야당이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시간을 끌었고, 여당도 국정조사를 하네 마네 하다가 결국 유야무야되지 않았나. (세월호 유족들이 말하는) 특별법 제정 문제도 그런 전처를 밟지 않을까 자꾸 우려가 된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면 새정치민주연합 뿐 아니라 정의당, 통합진보당 등 전체 야당이 목소리를 내고 나가 싸워야 한다. 광화문과 국회에 유족이 있을 게 아니라 야당 의원들이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냥 적당하게 '상생' '통합' 문제로 가는 순간, 유족들의 절박한 목소리는 묻히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런 식으로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 쌓여온 것 아닌가."
- 지지자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전국 여러 곳에서 후원금을 많이 보내주셨다(선대본에 따르면 7월 30일까지 1억1000만 원가량의 후원모금이 모였다 - 기자 주). 전국에서 많은 분들이 힘을 모아주시고 마음을 포개주셔서, 이제까지 정말 행복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 통근버스 등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만나느라 매일 오전 4시쯤 일어나야 했지만, 몸은 힘들었지만 즐겁게 할 수 있었다.
첫 출발은 이것이었다. 노동자와 농민 등 서민들의 아픔과 고민을 정말 진정성 있게 담아 얘기할 수 있는 정치인이 필요하다는 것. 앞서 말했듯 많은 분들이 모아준 힘 때문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지지해주신 분들의 마음을 기억하며 앞으로도 지역 사회에서 함께하려고 한다. 지지자 한 분 한 분의 소중한 마음을 잊지 않고 간직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