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늙어서 결성된 모임이 하나 있다. 초등학교 여자 동창 넷이 가끔 만나는. 모임에 나오기 전, 네일아트까지 받았다는 한 친구의 말에 저절로 튀어나온 나의 한마디.
"고마울 따름이야~"츄리닝(아줌마가 집에서 입으면 츄리닝, 아가씨가 간지나게 입으면 트레이닝복) 차림에 슬리퍼 직직 끌고 나와서 허물없이 만나는 친구도 좋지만, 날 만나기 위해 예쁘게 화장하고 손톱 손질까지 하고 나왔다니 대접받는 느낌이 들어서 좋다.
이렇게 보자면 인도에게는 새삼 미안한 마음이 든다.
프랑스에 갈 때에는 첫 해외여행이랍시고, 파마도 새로 하고 새 옷도 몇 벌 사 입었지만 인도에 갈 때에는 가진 옷 중 가장 낡은 옷들을 챙겼다.
'인도에 가자!' 라고 계획한 순간부터, 꼬질꼬질해진 난닝구(남편이 걸치면 난닝구, 식스팩에 걸치면 러닝셔츠)와 닳아버린 신발을 버리지 않고 인도용(?)으로 모셔 두기 시작했다.
중국이나 이집트, 인도 같은 나라에 갈 때에는 여행 내내 입다가 버리고 올 겉옷과 낡은 속옷을 챙겨 가는 요령을 터득했다. 더구나 전기나 물이 귀한 인도에서는 세탁 서비스가 꽤 비싼 편이다. 속옷을 갈아입을 때마다 세탁기 대신 쓰레기통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니 빨래 안해서 좋고, 짐도 점점 가벼워지니 더 좋고.
남편의 밑창이 닳은 신발은 인도여행을 마지막으로 집으로 돌아와 버려야지, 하고 별렀었는데 인도에서 버리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고 말았다.
뭄바이에 있는 슬럼가 다라비에 갔을 때였다.
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박스를 재가공하는 냄새가 가득하고, 항아리를 굽는 골목에서는 검은 연기가 솟고, 아이들과 닭이 공터의 쓰레기 더미에서 함께 뒹굴고, 1500명이 넘는 주민들이 하나의 공동 화장실을 사용하는 마을. 노란 색소를 풀어 흐르는 물에 밀가루를 반죽하는 빵공장의 냄새만은 고소했지만, '다라비'란 이름을 달지 않고 시장으로 나간다고 했다.
어깨가 닿을 듯 좁고 어두운 골목의 바닥에는 정체 모를 오물이 떠다니는 구정물이 흐르고, 머리 위로는 거미줄처럼 전깃줄이 엉켜 있었다. 띄엄띄엄 놓인 블록을 다리 삼아 지나가는데, 부주의하게도 그만 남편은 시궁창 같은 곳에 첨벙 빠져 버리고 말았다. 신발은 물론 무릎 아래까지 푹 젖고 발목에 심한 상처까지 났다. 파상풍 주사를 미리 맞았던 것은 다행이지만, 신발과 바지는 호텔 쓰레기통으로 직행.
새 신과 새 옷이었다면, 호텔 욕실에 엉거주춤 선 채로 아기 똥기저귀 씻어내리듯 샤워기를 세게 틀어가며 빨았어야 할 터. 마침 여행은 하루를 남겨둔 막바지였으니, 싸구려 슬리퍼 하나 사서 끌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깨끗한 일본이나 유럽에 갈 때에는 좀 챙겨 입더라도 인도에 갈 때만큼은 새 옷, 새 물건 사느라 돈낭비할 필요는 없겠다. 인도에게는 좀 미안한 일이지만.
그나저나 큰일이다. 나이는 들수록 차려 입고 친구를 만나고 싶어지는데, 여행은 할수록 차려 입지 않는 여행이 좋아지니, 폼나게 여행하긴 다 틀려 버렸다.
덧붙이는 글 | 2013년 1월 한달 동안 인도를 여행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