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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하받는 이정현  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된 뒤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축하받는 이정현 7·30 순천·곡성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출마한 새누리당 이정현 후보가 30일 오후 전남 순천시 새누리당 전남도당 사무실에서 당선이 유력시된 뒤 조충훈 순천시장으로부터 꽃다발을 받고 활짝 웃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이정현(전남 순천·곡성) 당선인은 사석에서 앞으로 선거에 출마할 일은 없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당시 이 당선인은 청와대 정무수석이었다.

"50살 넘어 국회의원이 되면 재선까지만 하기로 결심했다. 재선이 안되더라도 재선 임기인 8년만 정치권에 남기로 했다. 오래된 결심이다."

이 당선인은 불과 1년 전 19대 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해 39.7%라는 '놀라운' 득표율을 기록한 참이었다. 비록 떨어졌지만 새누리당 후보로서는 대단한 선전이었다. '광주에 재도전 안할 것이냐?'라는 질문에 이 당선인은 "국회의원을 하면서도 그렇게 했는데도 안됐다, 청와대에 근무한 후에 도전하는 것은 더 힘들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했는데도 안 됐다"라는 말에서는 섭섭함이 다소 묻어났다. 18대 국회에서 '호남 예산 지킴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호남을 위해 노력했는데 광주 지역 유권자들의 선택받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도 들렸다.

이 당선인은 또 "4년 후 총선 출마에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청와대에 근무하면 모든 초점을 선거에 맞춰놓고 일을 할 텐데 그렇게 일하면 안 된다"라고 말했다. 사실상 박근혜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임기를 같이 할 것이라는 이야기였다. 

이 수석은 이날뿐만 아니라 다른 모임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해왔다. 박 대통령의 두터운 신임을 고려할 때 이 당선인이 타의로 청와대를 떠날 가능성은 많지 않던 시절이었다.

인적 쇄신 '칼' 맞은 이정현... 재보선 출마도 우여곡절

하지만 세월호 참사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청와대 인적쇄신은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박 대통령은 책임론의 정점에 섰던 김기춘 비서실장 대신 자신의 복심으로 불리던 이 당선인을 청와대 밖으로 내보냈다.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이 당선인이 서울 동작을 보궐선거에 출마할 것이라는 '차출설'과, 이어질 개각에서 입각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지면서 '꼼수' 인적 쇄신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새출발을 하겠다'는 청와대의 진정성도 빛이 바랬다.

게다가 한쪽에서는 이 당선인이 청와대 내부 권력다툼에서 밀려 경질된 것이라는 말도 설득력을 얻어갔다. 새누리당의 한 핵심 인사는 당시 기자와 만나 "박 대통령이 (지난 3월) 유럽 순방 출국 전에 이정현 수석을 불러 김황식 전 총리의 서울시장 후보 출마와 관련해 자신이 오르내리는 것을 두고 엄청 깼다"라면서 "이 수석이 부들부들 떨 정도였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 서울시장 경선에서 김황식 전 총리를 민다는 '박심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이 당선인을 지목해 호되게 혼을 냈다는 것이다. 이 당선인은 지난해 연말 "'자랑스러운 불통' 등 자신의 발언이 호된 비판을 받고 여러 잡음이 불거지자 올해 들어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 "언제든 물러날 수 있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고 한다.

박 대통령 '살아 돌아오라' 미션... 호남행 택한 이정현

 지난 7월 18일, 7.30 재보선 선거운동기간 중 이정현 후보를 알아본 한 시민이 다가와 "이번엔 꼭 이길거라"라고 말하며 이 후보의 손을 추켜세우고 있다.
지난 7월 18일, 7.30 재보선 선거운동기간 중 이정현 후보를 알아본 한 시민이 다가와 "이번엔 꼭 이길거라"라고 말하며 이 후보의 손을 추켜세우고 있다. ⓒ 이주빈

청와대를 나온 뒤 재보선 출마 결심을 굳혔지만 이 당선인을 둘러싼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박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 당선인이 동작을 등 수도권에 출마할 경우 지방선거 보다 박근혜 정부 심판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터져 나왔다.

당시 유력한 당권 주자였던 김무성 의원은 "이 수석이 출마한다면 이 정권에 대한 치열한 중간평가 선거가 될 것"이라며 "이 수석이 누구보다도 대통령에 대한 충정이 강한 사람이라 출마를 선택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라고 공개적으로 반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이후 이 당선인은 모든 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다. 이 당선인의 고민 과정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본 한 인사는 "좋으나 싫으나 박 대통령의 최측근 인사인데 함부로 움직일 처지가 아니다"라며 "박 대통령으로부터 '어디를 나가든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는 미션은 받은 것 같다"라고 전했다.

고민 끝에 이 당선인은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당 안팎의 논란이 불가피한 수도권을 포기하고 가장 살아 돌아오기 힘든 순천·곡성 출마를 선택했다. 지더라도 정치적 부담이 적고 박 대통령을 향한 후폭풍이 최소화될 수 있는 여당의 불모지로 들어간 것이다.

이 당선인의 호남행이 알려지자 당시 청와대의 한 핵심 인사는 기자와 만나 "이 수석의 충성심만큼은 따라갈 사람이 없는 것 같다"라며 "당선은 안되더라도 평균 이상의 득표만 해준다면 청와대로서는 고마운 일"이라고 말했다.

이 당선인은 '살아 돌아오라'는 박 대통령의 미션을 성공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책임은 물론 영남 편중 인사 등으로 박근혜 정부 심판론이 가장 강하게 불었어야 할 순천·곡성 선거를 야당 심판의 장으로 만들어 버렸다. 새누리당의 역량이 아니라 철저하게 바닥 민심을 파고드는 이 당선인의 개인기로 연출해 낸 '이변'이기는 하지만 박 대통령으로서는 생각지도 못했던 정치적 선물을 받은 셈이 됐다.

정치적 무게감 달라진 이정현... 새로운 친박계 구심 되나

지난 1988년 이후 새누리당이 단 한 차례도 국회의원을 배출하지 못한 전남에 새누리당의 깃발을 꽂은 이 당선인의 정치적 무게감도 한층 커지게 됐다. 국회의원 당선은 18대 비례대표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이지만 당내 존재감은 재선급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평가다.

견고한 지역주의에 역사적 균열을 낸 새누리당 내 유일한 호남 지역구 국회의원이라는 타이틀은 누구도 갖지 못한 정치적 자산이자 무기다. 이미 새누리당 내에서는 호남 몫 지명직 최고위원으로 이 당선인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만약 박 대통령의 의중을 가장 잘 읽어낸다는 이 당선인이 '김무성 체제'에서 지도부에 입성하게 된다면 당·청 관계 전반을 조율하는 핵심 역할을 맡을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박 대통령의 최측근으로서 당내 친박계의 새로운 구심으로 떠오를 가능성이 크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사실상 청와대에서 내쳐진 사람이 보란 듯이 살아 돌아왔다"라며 "이 당선인의 당내 입지가 탄탄해 질수록 껄끄러워질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으로 여권 내 파워게임의 양상이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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