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0일 순천 팔마체육관에서 진행된 7·30 재보궐선거 순천 지역 개표에서 순천선거관리위원회 K사무국장이 이날 오후 10시께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들에게 '(투표용지를) 한 장 한 장 넘기지 말고 개표하라'는 내용을 방송으로 지시해 한 관람인의 항의를 받는 일이 발생했다.
개표 과정을 지켜보던 한 관람인은 "한 장 한 장 넘기며 개표하면 시간이 너무 지체되니 다른 표가 섞여 있는지만 보라"라는 사무국장의 방송을 듣고 그를 만나 왜 그렇게 방송했는지 물어봤다.
이에 K사무국장은 "투표지 분류기가 100% 정확해서 그랬다"라면서 "매뉴얼에도 투표지 혼입 여부만 확인하라고 돼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에 관람인은 "투표지 분류기가 그렇게 정확하면 미분류표가 왜 많이 나오겠느냐?"라고 반문하면서 "투표지를 두세 번 철저하게 검열하도록 돼 있는 개표 취지에 맞개 개표해달라"라고 요구했다.
이날 K사무국장의 방송이 있은 뒤 심사집계부 개표사무원 상당수는 투표지 묶음을 한 손으로 잡고 다른 손 엄지 손가락을 사용해 빠르게 투표용지를 넘기며 개표 작업을 진행했다.
순천선거관리위원회 관리계장은 기자가 참관하던 7번 심사집계부에 와서 투표지 묶음으로 빠르게 넘기는 시늉을 하면서 "여기도 이렇게 개표하라"라고 지시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투표용지를 확인하다가는 개표 시간이 지연되기 때문에 개표 속도를 높이라는 뜻이었다.
이와 같은 개표 방식은 선거관리위원회가 관행적으로 해오던 개표 방식이라는 지적이다. 평소 '투표지 분류기는 개표의 보조수단'이라고 강조하면서도 실제 개표 현장에서는 투표지 분류기의 개표 결과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기자는 참관인 자격으로 이의제기를 했으나 다른 조치는 없었다.
심사집계부 개표 다음 절차인 위원 검열 단계에서 위원 중 상당수는 바구니에 담겨 배달된 투표지를 살펴보지 않은 채 개표상황표만 훑어보고는 날인을 했다.
기자는 "최소한 투표지를 만져보는 성의라도 보여야 하는 것 아니냐"라며 이의제기를 했지만, 소용은 없었다. 오히려 잠시 뒤 K사무국장은 기자를 따로 만났을 때 "위원들은 학식과 덕망을 갖춘 분들로 선관위가 위촉한 분들"이라면서 "그분들은 여러 차례 교육을 통해 개표과정을 잘 알기 때문에 알아서 검열하시도록 해달라"는 취지의 당부를 했다. 이날 곡성·순천의 개표는 자정을 조금 넘겨 마무리됐다. 이는 타 지역에 비해 개표가 늦게 마무리된 축에 속한다.
공직선거법에 의하면 위원장이 후보자별 득표수를 공표하려면 출석한 구·시·군선거관리위원회위원 전원이 먼저 득표 수를 검열하고 개표상황표에 서명하거나 날인해야 한다(공직선거법 178조 3항). 검열이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검사를 위해 열람하는 일'이다.
2012년 '18대 대선 개표관리매뉴얼'에는 심사집계부 업무를 "개표사무원이 전량 육안으로 2~3번 번갈아가며 정확히 재확인·심사함"이라고 규정돼 있었다. 그런데 '6·4 지방선거 개표관리매뉴얼'에는 "개표사무원이 번갈아가며 정당·후보자별 투표지 혼입여부를 재확인함"으로 문구가 바뀌었다.
지난 7월 31일 순천선관위 K 사무국장에게 전화로 "개표 과정에서 방송으로 '한 장 한 장 보지 말고 혼표 여부만 확인하라'고 방송했는데 왜 그랬느냐"라고 물어봤다. 그는 "예전 매뉴얼(3~4년 전)에는 '낱낱이 보라'고 돼 있었으나 근래 개정됐다, 예전 방식대로 개표하다가는 날을 새워도 다 못할 상황"이라면서 "분류기를 신뢰하고 100매 단위를 투표용지를 잡고 두세 번 넘기다 보면 칸(지정된 후보자의 칸)에 (도장이) 안 찍혀 있으면 (혼표) 확인이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자가 "현재 매뉴얼에 '한 장 한 장 보지 말라'는 내용도 없지 않느냐"라고 묻자 "그건 내가 진행하는 방식"이라면서 "(개표) 방식이 바뀌었다, 법에 위반되는 것은 없다"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