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찾았던 '작가 박물관'의 작가들 -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사무엘 베게트(Samuel Beckett) - 을 좇아 이들이 재학했던 대학 '트리니티 칼리지(Trinity College)'를 찾았다.
'Grafton Street'를 지나 도심 한가운데, 교통이 혼잡한 곳에 자리잡은 트리니티 칼리지는 1592년 영국 식민지 시기 엘리자베스 여왕의 칙령으로 지어진 대학이다. 따라서 원 명칭은 '더블린에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성스러운, 나눠지지 않은 삼위 일체 대학'. 원래는 도시 외곽에 지은 대학이었는데 어느새 수백 년의 세월동안 도심이 이곳까지 넓어졌다.
오래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데 거리낌이 없고, 복수전공제 도입같은 개혁으로 융통성 있는 대학으로 평가받고 있다. 'The Times Higher Education Supplement' 의 2012년 세계 대학 순위 14위에 들기도 했다고. 그렇다고 이곳이 한국처럼 입시 경쟁이 심한 곳은 아니다. 20세기 말에는 이곳도 대학서열이 한국처럼 심했지만 비교적 최근들어 평준화가 진행되며 큰 경쟁 없이 입학이 가능하다고. 아일랜드 국적을 가지고 있다면 학비도 국가가 전액 대준다고 한다.
대학에 들어서자, 오래된 건물들과 공원 사이의 예술품들, 십자가와 조각상으로 장식된 탑들로 문화유적지를 들어온 듯했다. 학교를 그냥 돌아볼 수도 있지만 투어신청을 하면 입구부터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의 안내를 받을 수 있다. 가이드들은 기사 같기도 하고 성직자 같은 제복을 입었는데, 옛날 교복이란다.
트리니티 칼리지 돌아보기"조교가 되면 앞치마(?)의 길이가 짧아지고, 교수가 되면 가슴까지 올라옵니다!"입구를 지나 팔러먼트 광장 앞, 십자가와 조각상으로 장식된 '컴퍼널(Campanile)'탑이 세워져 있다. 옆에는 학장을 지냈던 '조지 새먼(George Salmon)'의 동상이 서있다. 새먼은 수학자이자 신학자였으며, 아일랜드 교회를 재건시키는 데 앞장섰던 사람이란다. 생전에 여학생들의 입학을 반대했다고 하는데, 여학생들의 입학이 허용된 후 돌연사했다나?(1904년 아일랜드에서 제일 먼저 여학생들의 입학을 허용했지만, 실제 입학은 1970년대부터 가능했다고.)
광장을 지나 신축한 도서관 앞에 이르자 금색의 조형물에 눈이 간다. 'Arnald Pomodoro's Sphere Withih sphere.' 한쪽에 톱니바퀴같은 복잡한 조각들이 구의 내부로 파여져 있는 모습이 묘하다. '트랜스 포머 3:다크 오버더 문'의 달 같기도 하고, '기네스 스토어'에서 보았던 공장의 내부 구조 같기도 하고...
안내투어의 마지막은 트리니티 칼리지 도서관(The Old Library). 이곳에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9세기 필사본 복음서인 '켈트서(The Book of Kells)'가있다. 문양과 동물, 사람 등으로 복잡하게 채워진 종교서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경탄과 하나하나 손으로 쓴 글씨에서 수작업의 경이로움이 느껴진다.
또한 이곳에 유럽대학에서 가장 크다는 '롱 룸(The Long Room)'을 들어가보았다. 건설 이후에 재공사를 하면서 30인치인가를 늘린 덕에 유럽 최대가 됐다고 가이드가 농담섞인 말로 자랑을 한다. 크기의 웅장함에 더해 아리스토텔레스며 역대 철학자들의 조각상들과 이 대학을 나온 작가들이 차례로 배치되어 있는 사이에 무수히 쌓인 고서들을 보며 묘한 신비로움을 느낄 수 있었다.
입구에서 고서가 손으로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고, 내부에서 책들이 무수히 쌓여진 이 지성의 결정체를 보며, 우리들이 삶에서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누리는 현대 문명과 기술의 근본이 이러한 오랜 집단 지성과 역사에 있음을 새삼 돌이보게 되더라.
이곳은 관광지이지만 주민들에게도 과거를 체험하는 소중한 곳이지 않을까 싶다. 지성에 자극을 받고 삶 속에 영향을 주는 어떠한 느낌들을 이곳에서 받을 수 있지 않을는지. 우리에게는 책으로만 남아있는 위인들이 여기에서는 살아 숨쉬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법하다. 이곳의 웅장함과 켜켜히 쌓인 시간들, 지성의 미는 참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도서관 너머에는 오스카 와일드를 비롯 작가들이 묵었던 기숙사가 있다. 건물의 구조와 파이프관들이 이곳이 오래된 곳임을 보여주지만, 이곳이 낡아보이지 않는 게 놀랍다. 왜 우리들의 아파트는 20년을 못가고 이곳의 아파트는 수백 년을 가는지.
가이드가 기숙사의 괴담과 사연들을 소개해 줬다. 저 창문을 통해 사랑 싸움을 하면서 뭐 총격전을 벌였다는, 아일랜드 특유의 빠른 말투와 서부극이 약간 섞인듯한 이야기로 흥미를 더했다.
그런데, 고풍스러운 건물들 사이에 콘크리트로 투박하게 지은 건물이 하나 올라가 있다. 1970년대에 현대화 추세에 맞게 지은 공과대학 건물이라고. 이 검은 이끼가 끼고 색이 변한 건물을 보면서 이 사람들 미감이 떨어지는 건가 했더니, 가이드 왈, 자기네들도 대학의 흉물이란다. 옆에서 아버지의 말씀, "아이고, 저거 딱 우리 한국 대학인데..."
한국 대학들, 많은 경우 건물들이 서로 맞추기라도한 양 네모나게 들어서 있다. 아니, 대학만이 문제가 아니겠다. 길도 강따라 구불구불 그냥 좀 두면 좋을텐데 꼭 '뚝'하고 일직선으로 뚫어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강도 모래톱과 절벽, 습지를 꼭 준설을 해야한다. 대한민국, 직선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나라라고 해야 하나. 사람들이 사는 집만 봐도 이곳에는 조그맣게라도 마당이 꼭 있는 아담하고 산뜻한 색들인데, 우리는 전 국민에 가까운 수가 아파트에 사는데다 시골에 가도 꼭 시멘트로 네모나게 옥상이 있는 집을 지어놓는다. 더블린 거리에서 아버지말씀, "저게 집이지, 아파트가 어디 집이냐?"
단지 트리니티 칼리지만이 아니라 거리에서 골목에서 어느 곳이고 여유로움과 참 사람 사는 곳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우리들의 '공구리 건물'을 일제의 수탈과 전쟁, 빠른 경제개발 때문으로 돌릴 수 있으려나.
최근 우리 사회의 4대강, 세월호를 비롯한 일련의 참사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인가. 삶의 질이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경제 수준이 높고 낮음에 연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이다. 본질은 문화적인 빈곤, 사람다운 삶의 소멸에 있는 게 아닐까. 예술이 넘쳐 흐르고 음악이 들려오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부속들이 연명하는 곳으로 전락한 데에 그 비극이 있지 않은지.
더블린, 정말 작은 도시다. 걸어서 다니기에 이보다 적당할 수 없고, 시설과 거리의 규모와 도심의 크기가 딱 자전거를 위한 공간이라 할 만하다. 자전거 전용 도로가 더블린의 좁은 도로에도 꼭 있고, 서너 블럭 넘어갈 때마다 공용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버스, 트램과 함께 사람들의 출퇴근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고. 보행자에 대한 배려가 배어있어 대중교통수단이 얽혀있어도 여간해서 사고가 없단다.
이렇듯, 도시투어버스나 가이드를 이용하면 하루이틀이면 '쑥~'하고 주요 관광지들을 돌아다닐 수 있는, 관광에도 최적화된 도시임에도 우리는 보름째 설렁설렁 돌아다니는 중이다. 물론 부모님이 일과 관련하여 온 길이라 병행해야 하는 까닭도 있지만, 어찌 보면 참 소모적인 것도 같고 답답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우리는 어디를 가나 그 공간을 그냥 충분히, 온전히 종일 누리는 것이 좋다. 그렇기에 관광지도 하루에 한 곳 혹은 두 곳만 돌아보고, 그냥 공원 같은데 가서 낮잠도 자고, 거리를 오래 걷는다. 여행객처럼 다니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처럼 생활하고 돌아보는 것을 즐긴다고나 할까. 길 모퉁이에서, 혹은 펍에서 사람들을 만나 한참 담소를 나누는 것도 이 여행의 묘미다.
오후 3시. 트리니티 칼리지 옆 자그마한 공원에 누워 있다. 어머니는 두 살배기 아이를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줌마와 한참 인사를 나누고 계신다. 아이를 키운 공동의 경험은 나라가 달라도 참 할 말이 많은 모양이다.
공원 입구 개선문을 줄여놓은 듯한 돌 문에 갈매기가 앉아있다. 풀밭에서 사람들이 빵이며 간식들을 꺼내먹고,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비둘기 무리를 좇는다. 바닷 바람과 함께 풍겨오는 꽃냄새, 풀냄새가 뒤섞인 향기에 몽롱하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여섯 살 학생기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