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치민주연합의 비대위 구성을 앞두고 민형배 광주 광산주청장이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결과를 분석하고, 새정치민주연합의 진로를 고민한 글을 보내왔다. 민 구청장은 두 번의 선거에서 국민이 보낸 메시지는 여의도 독과점 정치 타파와 정치복원이었다고 분석했다. [편집자말] |
새정치민주연합이 완벽하게 졌다. 11:4다. 순천·곡성에서는 새누리당 당선자까지 나왔다. 권은희가 출마한 광주 광산을 투표율은 22.3%로 서울 동작을의 절반 수준이었다. 광주시민은 '떨어뜨릴 수 없는 후보'를 맞아 투표 거부라는 '전략투표'를 감행했다. 뺨 때리면서 당선 시킨 셈이다. 사실상 11:3이다.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이런 결과를 놓고도 지지자들의 분노, 아쉬움 같은 게 뒤따르지 않는다. 차라리 잘 됐다, 시원하다는 정서다. 만세를 부르는 사람까지 있다. 화끈하게 져서 좋다는 것이다.
조성된 국면은 '정부여당 심판'이었다. 그런데 국민은 야당을 심판했다. 분명하고 화끈한 패배를 야당의 품에 안겼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이 아니라 국민에게 진 것이다. 왜 그랬을까. 무슨 의미일까.
분명한 패배 안기며 성찰 강요이번 7·30재보선을 치르기 직전 2년 동안 굵직한 선거가 세 번 있었다. 2012년 총선, 2012년 대선, 2014년 지방선거다. 이긴 것도, 진 것도 아니라는 게 세 선거의 특징이었다. 정확히 하자면 '우리'가 그렇게 평가하고 싶어 했다.
2012년 총선은 공천 실패로, 2012년 대선은 개표 실패로, 2014년 지방선거는 전략 실패로, 대충 그렇게 얼버무리고 싶어 했다. 대략 49:51로 승패가 갈린 모호한 선거결과가 이런 모호한 평가를 용인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설혹 졌다고 인정하더라도 '공학'의 차원에서 졌다고 여겼다. 민주, 민생, 도덕에서 결코 뒤지지 않는데, 단지 선거를 못해 졌다고 스스로를 위로한 것이다. 명백한 패배를 패배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면 성찰도 없다. 실제로 성찰하지 않았다. 야권은 지도부 교체 정도로 패배 논란을 봉합했다. 이번 7·30의 분명한 패배는 그래서 의미가 크다. 지고 또 져도 패배를 인정하지 않으니까, 진심으로 돌아보지 못하니까, 분명한 패배를 통해 성찰의 기회를 준 것이다.
그나마 1년 반 뒤 총선에서 '조정할 수 있는' 이번 재보선을 칼로 삼아 '확실한' 패배를 안겼다. 역량 손실을 최소화 시키면서 패배의 신호를 강하게 보낸 유권자들의 전략적 행동에 감사할 따름이다. 정치인들이, 정당이 유권자들의 지도를 받고 있는 셈이다. 모름지기 정치인을 자임한다면 먼저 부끄러워 할 일이다.
국회의 과잉, 정치의 빈곤성찰하지 못하면 다음 선거도 없다. 민주주의는 더 멀리 후퇴할 것이다.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하는 건 이론의 여지가 없다. 다만 그 책임은 도의적인 것일 뿐이다. 지도부의 사퇴가 괜찮은 내일을 보장해 주지는 못한다.
지난 총선부터 이번 재보선까지(아래 4대 선거) 내리 졌다. 지려 해도 지기 쉽지 않은 선거에게 계속 졌다. 근본적이고 거대한 흐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새누리당이 선거를 더 잘해서 우리가 패배했다는 분석은 '위선'이다. 새누리 '선거능력론'은 시대의 파고를 의도적으로 부인하거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백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철저하게 '중앙(당) 중심'이었다는 것이 4대선거의 공통된 특징이었다. 지역도, 지역정치인도, 지자체도 없었다. 국회의원만 있고, 그 나머지 선출직은 모두 실종됐다. 당원과 지역정치인은 동원 역량으로, 국민은 여론조사의 수치만으로 존재했다. 여의도는 블랙홀처럼 정치자원 전부를 끌어갔다. 그리곤 확대재생산하는 게 아니라 고갈 시켰다.
DJ-노무현 시절에는 그렇게 해도 됐다. 그 때는 '87년체제'의 자기장이 힘을 잃지 않은 시절이었다. 정치권이 핵심전선을 형성하면 학생운동, 민중진영, 시민사회 등이 자기역할을 설정해 지원사격을 했다. 제도정치+비제도정치 영역(학생/민중/시민사회 등)의 연합전선이 87년체제를 움직였고, 거기서 성과가 나왔다. 정당(민주당)은 그 지원사격을 직접 조직하기도 했고, 조직하지 않더라도 비제도정치 영역의 자발적인 움직임이 활발했다.
국민의정부-참여정부를 거치면서 비제도정치 영역은 사라졌다. 물론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역량이라기보다는 여론과 문화의 형식이다. 참고하고 주시하되 여든 야든 그 시절처럼 압박 받지는 않는다. 형식은 존재할지언정 실질적으로는 사라진 것이나 다름없다.
상당수의 비제도정치 역량은 제도정치권으로 흡수됐고, 제도로서 민주주의의 성숙은 비제도정치 활동의 근거지인 비합법 공간을 대폭 축소 시켰다. MB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파동,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저항 양상이 확인시켜 주는 사실 하나는 바로 이 비제도정치 영역의 최소화 혹은 부재이다.
비제도정치 영역의 축소는 제도정치의 역할을 대폭 확장 시켰다. 국회든 지자체든 시민사회든 주어진 현안은 모두 제도와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만 한다. 포스트 87년체제의 특징이다. 문제는 이처럼 커진 제도정치의 역할에서 '의사결정' 부문을 여의도 정치가 죄다 가져가 버렸다는 데 있다. 광역단체장에서 동네 기초의원까지 모두 여의도가 결정하는 무한 독점구조다.
여의도 정치만 정치이고, 나머지는 정치가 아닌 것으로 치부되고 있다. 국회의원보다 훨씬 더 많은 지역자원을 지니고 있는 광역단체장(경우에 따라 기초단체장 포함)도 정치를 할 수가 없다. 법이 그렇게 제한했고, 한국의 정치문화가 그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다. 지방자치는 여의도 정치의 하부단위, 동원역량의 의미 이상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정치와 생활정치가, 국가정치와 국민정치가, 국회의원 정치와 비국회의원 정치가 거의 완벽하게 분리되고 말았다. 아니다. 앞의 정치가 뒤의 정치를 죽이고 있다.
정치를 여의도로 한정시키고 독점함으로써 사실상 '정치'가 사라진 것이다. 국회의원의 동원역량으로 전락한 지역정치는 정치라 할 수 없다. 정치의 요체, 민주주의의 근본은 수평적인 참여다. 위계와 동원에는 정치도 민주주의도 숨을 쉴 수가 없다. 당원을 대접하지 않는 정당, 지지자의 의지가 투영되지 않는 의사결정은 정치의 기반을 잠식 시킨다. 수구세력보다는 민주개혁진영의 정치를 파괴한다. 권은희의 최저투표율 당선, 순천·곡성에서 새누리당 이정현 당선이 그 징표다.
87년체제의 늪에서 빠져나오는 게 '새정치'지역구는 있으되 '지역'이 없다. 민생·민주 구호는 있으되 '현장'이 없다. 전략은 없고 '전략공천'만 있다. 이른바 '큰 형님'으로서 무너진 야권 전체에 대한 관심은 없고, 생존한 야권들과 제한적인 연대가, 겨우 전략이다. 지난 '4대선거'에서 적나라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 여의도 정치의 생얼굴이다(그 와중에도 가까스로 피어난 꽃이 지역과 현장 매개성이 강한 '무상급식' 담론 같은 것이었다).
상징적으로 표현하자면, 박원순이라는 성공한 모델을 두고도 여의도 정치는 박원순을 활용하지 않는다. 광주 광산구의 당원은 6만~7만에 육박한다는데 권은희의 득표수는 2만2천표에 불과했다. 기초지자체가 발굴한 숱한 미래가치들은 여의도로 흘러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여의도는 정권교체만 외치고 있다. 정확히는 대통령 교체일 것이다. 여의도는 '지방정부'도 정권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애써 외면하고 있다. 대통령까지 교체할 필요성은 분명하나 대통령만 교체한다고 해서 우리 사회의 문제가 자동으로 해결되는 것 아니다.
이 즈음 무엇보다 시급한 근본적 과제는 여의도 정치의 독과점 구조를 깨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정치를 복원하자는 이야기다. 포스트 87년체제에 호응하는 여의도 바깥의 정치역량을 부활 시키자는 주장이다. 현재의 한국정치에서 가장 의미 있는 여의도 바깥의 정치역량은 지방자치의 정치역량이다. 광역 및 기초 장과 의원, 그리고 당원이 독립적인 정치주체로서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들은 건강이나 취미 동호회부터 준정치조직까지 수많은 지역 자원과 구체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이들이 마을과 골목, 즉 현장의 대변자들이다.
국민들은 이미 지자체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고 있다. 차기 유력한 대선 후보가 광역단체장 중에 거론되는 여론의 흐름이 그 한 예이다. 나와 세상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정치'는 이미 전방위적으로 확산되고 있고, 지역정치로까지 옮겨왔는데 현실정치는 여전히 여의도에 한정되어 있다. 여의도의 국회의원들이 그렇게 붙들고 있다.
포스트 87년체제는 이미 문턱을 넘어 버렸는데 우리 정치는 87년체제의 마당에서 제자리 걸음하고 있는 것이다. 그 제자리 걸음의 결과가 '4대선거'의 실패다. 87년체제의 마당에서 함께 서성이며 구별짓기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 즉 탈정치, 황폐화된 정치의 사막이 수구정당의 존립 근거이다. 우리가 그들보다 선거를 못해서 진 것이 아니라, 지금처럼 정치가 실종된 지형에서는 어떤 선거를 하더라도 질 수밖에 없다는 현실을 정면 응시해야 한다. '정치'가 침몰할수록 새누리당은 더 강력해진다.
권은희를 공천하지 않았다면, 김종철과 연대했다면, 야권연대가 조금 빨랐다면.... 이런 분석조차도 여의도 중심주의, 공학정치의 산물이다. 오히려 '선출직 단체장이 미국처럼 정치적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면과 같이 더 근본적인 상상력이 필요하다. 아주 근본적인 상상력으로부터 출발하지 못하면 우리는 87년체제의 마당(지금은 늪이 되어 버린)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87년체제의 문턱을 넘는 정치 패러다임의 전환이 새누리당과 우리를 구분해 낼 유일한 기준점이다. 이른바 '새정치'의 출발점이 여기다. 아쉽게도 지난 '4대선거'에서 '새정치'는 약속, 겸손, 양보, 품격 같은 행태논리에 집중되어 있었다. 여의도 독점 타파는 지방선거 정당공천 배제라는 왜곡된 형태로 여론화되었다. 그나마도 '민주당-안철수' 통합을 계기로 훨씬 강력한 형태의 정당공천이 작동해 부정적으로 회귀했다. 유권자의 요구로서 '새정치'의 시대정신을 파악했으나 그 내용을 마련하는 데는 지혜도 용기도 부족했다.
지자체 역량으로 정치 복원해야 정치의 복원이라고 이야기했다. 실상은 복원할 것도 없다. 정치는 이미 광범위하게 진행되고 있다. 비제도정치 역량은 안철수 현상이라는 모습으로 등장했다. 새누리당은 당 차원에서 이준석이나 손수조를 내세웠다. 당 차원의 젊은 역량을 야권이 내세우지 않으니까 야당 후보들의 아들 딸들이 뛰었다. 이미 확산되고 있는 정치의 일반화를 여의도 야권이 인정하지 않고 있을 뿐이다. 지난 4대선거에서 야권의 지지자들은 작은 상처를 주면서 끊임없이 여의도 독과점 해체와 정치복원의 신호를 보냈다. 여의도가 수용하지 못하니까 이번에 큰 칼질을 했다는 것이 7·30 참패의 메시지로 읽어야 한다.
정치복원이라는 과제가 너무나도 지난해서 애써 외면하고 '한 방'을 기대했던 게 지난 시절 우리들의 정치행태는 아니었는지 반성이 필요하다. 우리의 성공을 준비하지 못하고 저들의 실패를 발판 삼아 '어부지리' 정치를 꾸몄던 게으름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이 게으름을 국민들은 '무능'이라고 비웃으며 경고하고 있다.
정당, 지자체, 노조, 시민사회, 대안사회운동, 지식그룹, 국제연대 등 우리 주변의 다종다양한 '정치력'을 재구조화 시켜라, 지난 '4대선거'의 메시지다. 한꺼번에 시작하는 건 어려울 것이다. 당장은 당원과 지자체 역량에서 정치복원의 닻을 올려야 한다. 가장 현실적이면서 실질적인 역량이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 구성 기준 제안
지난 3일 국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권선택 대전시장, 이시종 충북지사 등 광역·기초단체장, 시·도의회 의장, 시·도당위원장 등이 참석한 비대위 구성 관련 단위별 비상회의가 열렸다. 여의도 역량과 지자체 역량이 한 데 모인 것이다. 선거 참패 이후가 아닌, 선거 기획 과정에서부터 지자체 역량이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해 본다.
가장 중요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조만간 구성될 비상대책위원회에 현직 국회의원은 최대한 배제해야 한다. 지난 4대선거 실패의 1차적인 책임자가 현직 국회의원이다. 국회의원 개개인의 역량이야 어떻든 간에 한 묶음의 '여의도'가 분명하게 1차적인 책임단위이다. 수술을 당해야 할 환자가 메스를 들고 선다면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도 힘들고, 수술이 제대로 될지도 의문이다. 사고는 여의도가 치고 책임은 '전당원'이 함께 지는 기형적인 권한-책임 분배 구조부터 바꾸는 게 '비상대책'의 시작이어야 한다.
분야별 대표성을 가진 인물이 비대위 구성에 꼭 포함되어야 한다. 원내 및 원외 위원장, 광역 및 기초 단체장, 광역 및 기초 의원, 평당원, 유관단체 및 조직 등 새정치민주연합의 이름으로 아우를 수 있는 모든 영역이 비대위 의사결정 주체로 참여해야 한다. 이 때 현직 국회의원은 '원내'라는 1/N 단위의 참여권 보장이 바람직할 것이다. 너무 많은 숫자를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안건 숙성 단위와 의결 단위로 분리하면 될 일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비제도 정치 영역의 역량의 복원되기 시작할 것이다.
역량 복원에 꼭 필요한 물적 조건이 연수원과 매체다. 10년 동안의 집권 경험을 가진 제1야당이 당세를 모으고 확장하는 물리적 공간 한 군데가 없다. 당과 국민이 광범위하게 소통할 수 있는 여론조성과 학습 매체도 없다. 특별한 제안이라기보다는 '비정상의 정상화' 차원에서 비대위가 꼭 검토했으면 한다.
당 혁신 일정을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제시한다. 2016년 총선까지 큰 선거는 없다. 남은 기간 동안 현역 국회의원들은 대여관계에 역량을 집중하고, 비대위는 비대위대로 당의 근본적인 체질변화를 꾀하는 투 트랙 체제로 차분하게 가자는 것이다. 내년 초 전당대회가 아닌 2016총선과 2017대선을 염두에 둔 정치와 정당의 패러다임 전환을 과제로 비대위 활동을 전개하는 게 옳다는 생각이다.
이번 7·30재보선 결과의 의미는 재보선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4대선거'의 최종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결론이 지시하는 바는 정치와 정당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하라는 주권자들의 경고이자 동시에 제안이라고 본다. 근본적이면서 새로운 상상력이 요구되고 있다. 새로움의 기본방향은 '여의도+알파'다. 이 알파의 내용은 여의도독점 타파이자 동시에 확장이고, 궁극적으로 정치의 복원이다.
주역은 '復(국민에게 돌아가라)'과 '同(동지를 모으라)'을 정치의 방법으로 제시한다. 맞는 말이다. 새누리당을 이기고 민생·민주를 정상화 시킬 수 있는 길은 '정치능력'의 강화다. 동지를 규합해 국민을 향하는 것이 정치이다. 선거능력은 정치능력에서 파생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민형배 광주 광산구청장은 노무현 대통령 비서관 출신으로 지난 6·4지방선거에서 전국 최고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