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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심여중ㆍ고 학생들이 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개장을 반대하는 피켓팅을 하고있다.
성심여중ㆍ고 학생들이 화상경마도박장 앞에서 개장을 반대하는 피켓팅을 하고있다. ⓒ 용산 경마도박장 입점저지 주민대책위

작년 2013년 4월 말이었습니다. 학교 앞에 3년째 지어지고 있는 멋진 건물(지하7층, 지상18층)이 화상경마도박장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13년 5월부터 학부모들이 도와달라고, 함께 학생들을 지키자고 호소했습니다. 그래서 주민대책위를 구성하고 학교 앞 화상경마도박장 입점을 막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7월. 아직도 싸우고 있습니다.

얼마나 싸워야 할지 가늠하지 못했습니다. 어떻게 싸워야 할지도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아이들의 안전을,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켜야 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학교장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여겼을 뿐입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님들의 반대서명을 시작하면서, 주변 성당과 주변 학교에 반대서명에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면서 그때에서야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것은 민간인 몇 사람으로는 대적조차 힘든 거대 공기업 마사회이며, 그것은 권력의 방패와 금력의 칼로 무장한 골리앗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길 수 없는 싸움을 왜 시작했느냐고 물었습니다. 학교장이 학교일이나 하지 왜 화상경마장 막는 일에 함께 하느냐고도 했습니다.

하지만 화상경마장의 폐해를 보고, 알고 있는 저로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기에 골리앗 마사회와의 싸움은 두려움이 아니라 오히려 "너는 칼과 표창과 창을 들고 나왔지만. 주님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로 구원하지 않으신다. 전쟁은 주님께 달린 것이다"(1사무17,46-47)라는 약속에 대한 믿음을 더 크게 했습니다.

대적하기 조차 힘든 골리앗 - 거대 공기업 마사회

함께하는 학부모님들, 선생님들도, 주민들도 마찬가지 마음이었습니다. 그분들은 가난한 과부(루가21,1-4)처럼 자신의 삶을 통째로 내어놓고 아이들의 교육환경을 지키고자 하셨으며, 기드온의 군사처럼(판관7,5-7) 가진 것이 없었지만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 싸움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강남의 교육구로 옮겨가는 맹모삼천(孟母三遷)보다 더 크게 자신들의 자리에서 아이들의 안전한 교육환경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둘러싼 가정과 지역의 건강한 삶을 지키려는 마음으로 이 싸움을 하고 계십니다. 그 마음은 바로 인간 각자에 대한 소중함을 깊이 이해하고 정의로운 삶의 가치를 지키려는 마음일 것입니다.

싸움의 과정은 어려웠습니다.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여정은 길고 느리고 힘들었습니다. 한 여름 폭염과 폭우를 건너 한 겨울 폭한 속에서 이어진 1인 시위와 기도회와 미사, 구청과 국회와 관련 청문회 장소에서의 기자회견과 항의 시위,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한 지속적인 민원 제기, 대규모 집회와 문화제는 마침내 천막농성으로 이어졌습니다. 이곳에서 사계절을 다 지내고 다시 새로운 시간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사회는 거대한 건물 속에서 여전히 그 힘을 간직한 채, 오히려 주민들을 향해 칼날을 들이대고 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마사회는 주민대책위와의 협의 없이는 개장하지 않겠다고 수차례 천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마사회는 주민대책위와 마사회 간에 진행되었던 3차례의 협의가 양측의 입장 차이로 결렬된 상태에서 지난 6월 28일 '시범 개장'이라는 명목 하에 일방적으로 개장을 강행했습니다. 그것은 마치 99마리의 양을 가진 부자가 자신의 양을 죽이기 아까워서 1마리의 양을 죽여서 손님을 대접하려는 것과 같았습니다.

서민들을 사행심과 중독에 빠지게 하는 경마도박

화상경마장을 건립한 마사회는 농림축산식품부 산하 기관으로 말 산업 육성을 목적으로 합니다. 하지만 마사회는 과천, 부산, 제주 세 곳의 야외 경마장의 경마를 중계하기 위해 서울의 10개를 포함, 전국에 30개의 화상경마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상경마장의 도박중독 유병률은 79.2%로 야외 경마장의 중독유병률 43%보다 거의 두 배에 가까운 중독률을 보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사회가 납부하는 세금과 복지기금은 실상 지역의 평범한 서민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입니다. 도박으로 인해 서민들을 사행심과 중독으로 빠지게 하여 사회적 비용을 증대시킬 뿐만 아니라, 경마도박으로 인해 국민 한 명 한 명의 존엄성은 더욱 파괴될 것입니다.

무엇보다 학생들과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소에 화상경마장을 건립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 지역 주민을 도박에 노출시키는 것일 뿐만 아니라, 주민들의 반대를 무마하기 위해 건물 내에 키즈맘, 공부방, 독서실 등 주민시설을 함께 두겠다는 마사회의 대안은 어릴 때부터 도박 환경에 익숙해지도록 함으로써 잠재적인 도박중독자를 양산할 위험이 큽니다. 또한 마사회가 안전유지를 위해 제안하는 '안전지킴이'와 고화질의 CCTV 설치는 이미 그 스스로 화상경마장 주변의 안전이 위협받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일 뿐 실제적인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주민들의 민원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자 마사회는 '시범개장' 후 '문제'가 발생하면 폐쇄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화상경마장 입장객들에게서 보여지는 욕설이나 폭력 등 문제가 노출되고 있습니다. 이를 두고 학생들과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지만 마사회는 폐쇄는 커녕 오히려 방해금지 가처분신청, 영업방해 고소 등으로 주민대책위를 압박하고 있습니다.

학교가 마을의 등불이 되고자 합니다

성심학교는 혜화동의 신학교가 옮겨가기 전 용산 신학교의 자리에 있습니다. 학교의 한가운데는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가 안치됐던 예수성심성당이 있어 많은 순례객들이 성당을 방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화상경마도박장은 중학교 교실에서 마주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으며, 당고개 순교성지에서 새남터로 이동하는 길의 중간에 위치해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돈이 우리 자신과 우리 사회를 지배하도록 순순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현재의 금융 위기는 그 기원에 심각한 인간학적 위기가 있다는 것도 간과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곧 인간이 최우선임을 부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 냈습니다. 고대의 금송아지에 대한 숭배가 돈에 대한 물신주의라는, 그리고 참다운 인간적 목적이 없는 비인간적인 경제 독재라는 새롭고도 무자비한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복음의 기쁨 55)

돈보다 생명이, 돈보다 아이들의 교육환경이 더 중요하다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기에 학교는 그 상식이 통하는 사회 안에서 건강한 아이들을 길러내는 마을의 등불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 등불 아래서 우리는 아이들을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가르치고자 합니다. 이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또 그들의 아이들이 다시 성심학교를 찾아올 수 있도록 우리 학교가 마을의 등불이 되어 학생들을 지키고자 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의 월간 소식지 <교회와 인권>에도 실렸습니다. 글쓴이는 김율옥 수녀 (성심여중·고 교장) 입니다.



#화상경마도박장#마사회#도박#경마장#성심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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