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칠레에서 군사쿠데타가 일어났을 때 칠레 가톨릭교회는 잠시 주저하다가 곧 희생자 편에 섰다. 한편 아르헨티나 가톨릭교회는 1976년 군사쿠데타가 일어나자 80여 명의 주교들이 모여 어떻게 대응할지를 논의했다. 투표 결과 반수가 넘는 주교들이 다음과 같은 태도를 취하기로 뜻을 모았다 "침묵으로 상황을 주시한다." 역사에서 두고두고 비웃음을 사게 될 결정이었다. -교황과 나 58쪽 <교황과 나>는 해방신학자 김근수가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개혁가 프란치스코 교황과 개혁교황 탄생의 배경, 교황청의 역사, 한국 사회와 종교가 선택해야 할 길을 짚어주며 가톨릭 교회와 평신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가난한 성자였던 앗시시의 프란치스코의 이름을 통해 교황이 지향하는 자기 정체성을 분명히 했다. 권위주의와 권력에 둘러싸인 교회가 아니라 예수의 실천을 따라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 고통 속에 위로가 필요한 이들의 손을 잡아주겠다는 의지를 실천하며 "종교는 가난한 이들 위에서 누렸던 부와 권력을 내려놓으라"는 메시지를 통해 교황청의 선택을 분명히 했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진 개혁가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을 찾는다. 교황의 한국 방문은 신자와 비신자를 떠나 커다란 관심사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세월호 유가족과 만날 예정이다. 어떤 형태로든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는데 도움되면 좋겠다. 박근혜 대통령도 율리아나라는 세레명이 있고 중학교부터 대학까지 교황 프란치스코가 속한 예수회에서 세운 학교를 다녔으니 말이다.
세월호 사건은 세월호 희생자만의 일도 아니고 가난한 사람들만의 일도 아니며 좌우 이념이나 정치적인 문제도 아니다.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고 대한민국에 사는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대한민국은 세월호 사건을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걸음을 내딛을 수도 민주주의와 인권이 후퇴한 암울한 시대를 살아갈 수도 있는 중대한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됐다
"그냥 사고인 줄 알았고 방송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었어요. 그런데 하루하루 지나면서 자꾸만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는 거예요. 만일 세월호 침몰이 사고고 정부가 떳떳하다면 무엇이 두려워서 내 아이가 어떻게 왜 희생되었는지 알려주지 못하는 건가요? 난 그저 남들과 똑같이 살았어요. 나라 욕한 적도 없고 정부에 뭘 요구한 적도 없어요. 지금도 우리는 정부한테 뭐 해달라는 거 없어요. 사실대로 진실을 알려주고 책임자 처벌하고 다시는 우리와 같은 아픔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거예요 그런데 지나가면서 '그만 좀 해라. 그만하면 됐다. 생업으로 돌아가라'고 하네요. 내가 살아있는 것도 아이에게 미안하고, 뭘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모르겠어요. 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야겠어요. 돈 없고 배운 거 없다고 국민을 이렇게 대접해도 되나요? "단원고 희생자의 아버지가 울며 절규하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를 주장하면서 사회 현실이나 진정 연대의 손길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종교가 가야 할 길이 아니다. 저자는 온건한 해방신학자인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향하는 '종교민주화의 흐름을 놓친다면 우리는 우리 시대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교황 프란치스코는 교회 밖으로 나가라고 우리는 재촉하고 있다. 교회가 앞장서서 가난과 억압, 불평등과 배제가 넘치는 역사의 현장으로 가라는 뜻이다. 교회가 있을 곳은 교회 안이 아니라 역사의 현장이다. '갈릴래아로 가라'는 예수의 말씀이 바로 이것이다.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살던 갈릴래아. 권력자와 정치가들과 배운자들로부터 소외되었던 갈릴래아 그곳에서 진정한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참된 혁명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고 이 시대는 다시 한번 '갈릴래아로 가라'는 예수의 애타는 음성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울려퍼지고 있다.
지금 가난한 이들 곁에 누가 있는가. 보통 사람들에게 종교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가. 21세기는 종교민주화의 시대가 될 것이다. 민주주의 원리와 가장 거리가 멀 것 같은 가톨릭 교회에서, 그것도 가장 군부적인 것 같은 교황의 거리에서 민주주의의 씨앗이 움트고 있다. 그 흐름을 놓치는 자는 우리 시대를 놓치게 될 것이다.
2014년 대한민국 역사의 현장인 갈릴래아는 어디인가. 바로 세월호 유가족이 단식하는 광화문 광장이다. 가장 큰 아픔을 위로받아야 하고, 따뜻하게 손잡아 줄 이들을 간절히 기다리는 갈릴래아 사람들은 세월호 가족만이 아니다. 나와 당신 자신이 바로 갈랄래아의 한 복판에 서 있는 이들이다.
이제 우리 모두 광화문 광장에서 서로의 손을 잡고 서로의 아픔을 보듬어 위로하자. 세월호라는 상처를 온전히 치유하자. 우리의 미래인 아이들이 꿈을 수장당하지 않고 안전하고 건강한 사회에서 마음껏 날개를 펼칠 수 있도록 튼튼하고 촘촘한 사회 안전망의 그물을 우리가 힘 모아 함께 짜 나가자.
덧붙이는 글 | 교황과 나/ 김근수 지음/ 메디치/ 14,5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