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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같은 자세로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진압곤봉 들고 대기 중인 군 병력 최근 28사단 병사폭행사망사건으로 군 사망사고 문제 여론이 확산 되고 있는 가운데,군 사망사고 피해 유족들이 6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마치고 호소문을 전달하기 위해 영내 진입을 시도하자 닫힌 정문 뒤로 병사들이 곤봉을 같은 자세로 들고 대기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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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는 필요악'이라는 말을 종종 듣는다. 종전이 아닌 휴전으로 여전히 북한과 대치 중인 상황에서, 신체 건강한 한국 청년들이라면 누구나 입대해야 하는 것이 2014년인 오늘날에도 여전한 현실이다. 수십 년간 이어진 군대의 폭력성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태도는 악습이 순환되는 고리를 더욱 강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였다.

그런 이유로 부대 안에서 생활하다 보면, 구타나 가혹행위의 현장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는 원하지 않더라도 직접 겪거나 행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런 일이 없기를 바라지만, 군이라는 집단 안에서의 생활은 때로 인간으로 하여금 원하지 않는 상황에 놓이게 한다. 애초에 입대한 것부터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누군가는 "소원수리함(고충건의함)이 있는데 왜 가만히 있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군 부대는 필적조회까지 해가면서 소원수리함에 신고용지를 투서한 사람을 기어코 찾아내기도 한다. 군대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알 만한 상황이고, 듣는 순간 눈 앞에 선하게 떠오르기도 것이다.

'소원수리' 적어낸 고발자 색출하던 풍경

나도 그랬다.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나도 구타를 당했고 다른 이가 괴로워하는 모습도 봤다. 그럼에도 나는 침묵했고, 곁에 서서 함께 그 장면을 바라보던 많은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다. 누구 하나 나서서 말리거나 이후에라도 보았던 것을 상부에 보고하는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결국 목격한 것을 알린 사람까지도 밝혀져 같이 피해를 입는다는 것을 학습했기 때문이다.

"적으려면 적어라. 그런데 이거 하나만 기억해 두라고! 몰래 적으면 아무도 모를 것 같지? 니들이 여태까지 적어냈던 서약서 행정반에 다 보관하고 있다. 하나하나 대조해서 누군지 찾아낼 거야!"

맞다. 부대에서는 각종 교육 및 병사들이 의무적으로 작성하는 '서약서' 형식의 서류들이 많았다. 반드시 자필로 쓰게끔 지시를 받고 마지막에는 본인의 서명까지 기입한다. 그런데 그게 나중에 투서에 대한 '보복성 필적감정'에 이용될 것이라고 짐작한 적은 이전에는 한 번도 없었다. 차마 믿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지만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굴욕적인 복종을 강요 당하는 순간이었다.

그런 협박에도 누군가 소원수리함에 '쪽지'를 접어서 넣었다면, 그 이후에는 부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행정보급관을 필두로 부대의 간부들은 진상파악을 하겠다며 '소원수리'에 이름이 오른 대상자들을 찾아서 따로 불러냈다. 그 와중에 불려간 병사들과 친한 '실세'들, 주로 상병과 병장들은 내부고발자를 찾는 데 혈안이 되었다. 구타나 가혹행위보다도, 그런 피해를 발설한 것이 더욱 큰 죄라는 듯이 말이다.

술렁이는 부대 안 분위기는 일말이나마 희망의 불씨를 살려내는 듯했다. 어쩌면 이 기회에 부대 안에서 주먹을 마구 휘두르는 사람을 찾아내서, 다시는 그 발길질에 맞는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고단한 군생활도 한결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도 들었다. 그러나 미처 기쁜 내색도 못한 상태에서, 그런 희망은 모두 헛된 것으로 판명나고 말았다.

결말은 씁쓸했다. 상병들은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당시 일병이었던 나와 동기들, 이등병들을 집요하게 추궁했고, 소원수리의 '장본인'을 밝혀냈다.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은, 행보관에게 불려갔던 인물들이 또 다시 소원수리함에 투서했던 이등병의 멱살을 잡고 숙소 건물 뒤의 공터로 끌고가는 모습이었다. 결국 누구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고, '소원수리'가 불러온 후폭풍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고나서 모두 굳게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빠져나갈 구멍 없는 폭력, 결국 대물림된다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윤 일병 집단 구타 사망사건과 관련해, 군 헌병대가 윤 일병 사망 5일 뒤인 지난 4월 11일 실시한 현장 검증 사진.
ⓒ 군 수사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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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발생한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 당시 윤 일병이 겪었던 구타와 가혹행위의 수위만큼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사건의 주범이었던 이 병장도 사실 이등병이었던 시기에 선임의 폭언에 '소원수리'를 썼다가 배신자로 낙인 찍혀 전출되었던 경력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일을 겪은 이 병장이 가혹행위의 주범이 된 것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결국 빠져나갈 구멍이 없는 폭력의 늪에서, 분노와 악습은 방향만 바뀐 채로 대물림된다는 서글픈 반증이 아닐까?

부대 전입 순간부터 죽기 전까지 구타와 가혹행위를 당하고, 따돌림과 놀림을 매일같이 겪어야만 했던 피해자들. 뉴스에 드러난 것은 단지 일부에 불과할 뿐이고, 더 많은 희생자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고통을 겪고 있을 것이다.

서열로 매겨진 '역할'이 악용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하는지 최근의 사건들로 드러난 셈이다. 군대 내에서 '소원수리'로 불리는 고충 건의가 익명성이 보장돼야 함은 기본이다.

동료가 폭행 당하는 순간에 지켜보기만 했던 44명의 병사들도 결국 자신도 피해자가 될까봐 두려웠을 것이다. 윤 일병이 사망하기 직전에 "윤 일병이 부대원들과 함께 음식물을 먹다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가 됐다. 병원으로 후송됐는데 상태가 안 좋다. 몸 곳곳에 상처와 피멍이 발견됐다"는 내용의 진정이 제기되었지만 인권위가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결국 비뚤어진 권위의식과 내부고발의 무력화, '질서유지를 위해서라면 그래도 된다'는 잘못된 인식이 만나 화학작용을 일으켜 군대 내의 악습이 계속되는 것이다. 결과물인 폭력의 악순환을 만나게 되면, 끝내 평범한 사람들도 분노를 거침없이 표출하는 잔인한 존재가 되어버리는 현실이다. 분노의 대상조차도 부당한 처사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공권력의 그림자에 숨어서 더욱 만만한 약자를 상대로 발산하게 된다.

인권의 유린, 순식간에 녹색성장한 '폭력'

종합하자면, 대안은 '군인 인권 개선'과 '군 시스템 투명성'을 보장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상식이 거세되고 소통이 단절된 공간에서 주어진 권력은 개인의 일탈행위를 부추길 우려가 크다. 지난 몇 차례의 군 폭력사건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볼 수 있었듯이 말이다.

지금도 정부와 여당은 책임자 해임과 가해자 엄벌을 내세우며 들끓는 여론을 잠재우려는 듯 하다. 그것이 사건의 마무리를 이끌어낼 순 있겠지만 재발을 막을 대책으로 과연 적절한 것일까? 비록 잘못은 개인에게 있을지언정 이러한 상황을 낳을 때까지 시스템을 정비하지 못한 국가의 책임도 절실히 인정해야 마땅하다. 그런 역할을 위해 정부가 존재한다는 것을 떠올린다면, 관리소홀로 인한 비판을 더욱 겸허히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 다른 윤 일병의 이름으로 국민이 희생되는 일을 예방하자면, 일단 개인을 악마로 묘사하는 태도부터 멈추어야 한다. 단순한 시각은 사안을 대하는 가장 쉬운 방식이지만 핵심을 살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군이 병폐를 걷어내고 새롭게 태어나려면, 사회구성원 모두가 아픈 상처를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어디선가 다시 누군가가 잘못된 방향으로 억압된 분노를 분출하거나, 부당한 폭력 앞에 힘없이 스러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변화를 위해 얼마나 많은 희생이 더 뒤따라야 하는가.


#군대 내 폭력#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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