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사단 윤 일병은 군 입대 후 112일 만에 부모 한 번 못 만나보고 선임병들의 구타로 사망했습니다. 그의 사망을 계기로 육군이 단 18일간 조사한 결과 3919건의 군내 가혹행위가 적발됐습니다.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많은 가혹행위가 자행되고 있다고 추정됩니다. 군이 병영문화를 개선하겠다고 한 지 15년이 지났지만 상황은 여전히 심각합니다. 이제 군에만 맡기지 말고 외부에서 본격적으로 감시하고 개입할 때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병영에 햇빛을' 기획 연재기사를 싣습니다. [편집자말] |
"4월에 터진 이런 엄청난 일이 외부의 폭로로 8월이 다 돼 알려지는 상황, 이게 군대다.""국방장관이 알았어도 이 지경인데 어느 병사가 '나 맞았어요'라고 말하겠나."전역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예비군들은 한결같이 "군은 감추는 것에 익숙하다"고 말했다. 7일 <오마이뉴스>가 '28사단 가혹행위 사망사건'을 주제로 연 좌담회에서 육군 행정병 출신 김아무개(2009년 전역, 취업준비)씨는 "군에서 사건·사고를 처리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하면 윗선에 안 알려질까', '어떻게 하면 감출까'만 고민한다"고 강조했다.
육군 포병 출신 장아무개(2012년 전역, 대학생)씨도 "군은 특성상 닫힌 공간이지만 닫아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본다"며 "이번 사건과 같이 부조리에 의해 죽고 다치는 건 왜 그랬는지 공개하고, 열어야 한다. 감춘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군대 내 부조리를 "악순환 구조"이라고 표현했다.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어렵고, 알린다 하더라도 이른바 "'군 생활이 꼬이는' 일이 벌어진다"는 것이다. 이날 좌담회에서 해병대 보병 출신의 김아무개(2013년 전역, 대학생)는 "이번 사건에 유 하사가 가담해 있듯, 병사를 관리해야 할 간부들도 쉬쉬하거나 오히려 병장에게 '○○○ 일병 안 되겠던데'라고 말하며 폭행 혹은 가혹행위를 조장하기도 한다"고도 전했다.
이들은 "군대가 열리고,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문제해결 방식을 묻는 말에는 "답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부정'보단 '체념'의 의미였다. 그만큼 군대의 '닫힌 문화'가 군 생활을 하는 동안 깊이 박힌 것이다.
실제로 윤 일병의 한 인척은 이번 사건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알렸으나 제대로 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관련 기사 :
인권위는 왜 '윤일병 사망 사건' 알고도 덮었나). 국방부에도 구타, 가혹행위를 신고할 수 있는 국방신고센터가 있으나 이용실적이 1년에 약 1000건에 불과하고 그나마도 전역 후 신고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사단급 내부공익신고센터의 경우엔 1년에 10건 정도의 신고가 들어오는 실정이다(대통령실, <군 고충처리제도 개선방안>, 2006).
아래는 <오마이뉴스>가 한 대학가에서 3명의 예비군과 한 좌담을 요약한 내용이다.
"군대 내 폭행 '봐도 모른척' 분위기"- 각자 군생활 했던 곳을 간단히 소개해달라.포병(아래 포) : 강원도 철원에서 근무, 2012년에 전역했다. 주특기는 포병이었다.
행정병(아래 행) : 경기도 양주에서 행정병으로 군생활을 했고, 2009년에 전역했다.
보병(아래 보) : 2013년 초까지 해병대에서 복무했다. 일반 보병이었다.
- '28사단 가혹행위 사망 사건'을 접했을 때 어떻던가.보 : 구타로 인해 윤 일병이 숨졌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랐다. 하지만 군대라는 시스템이 폭력이 어느 정도 묵인되는 분위기이지 않나. 이번 일이 처음도 아니고. '똑같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또 일이 터졌구나'라고 생각했다.
포 : 하사 한 명이 같이 폭행에 가담했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안타까웠다. 내 군생활을 떠올려보면 지휘관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부대 분위기가 확실히 달라진다. 부조리가 없도록 관리해야 하는 간부까지 가담했다니. 할 말이 없다.
- 혹시 군생활 중 폭력을 당한 적이 있나.보 : 나의 경우 자대배치 뒤 일주일 만에 어떤 선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폭행과 가혹행위 때문이었다. 그래서 폭행이나 가혹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 하지만 눈치만 볼 뿐 지속적인 관찰이 없으면 금방 스멀스멀 올라온다. 사고 이후 한동안 괜찮다가, 어느 날 뒤통수를 때리고, 어느 날 주먹으로 때리고, 뭐 이런 식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유치한데 이등병은 거울 보면 안 된다, 같은 이등병과 말하면 안 된다 등 계급 별로 해도 되고, 해선 안 되는 일이 정해져 있었다. 이걸 지키지 않으면 폭행이나 가혹행위가 있었던 것 같다.
포 : 나도 비슷한 사례다. 가혹행위로 인해 자대배치 뒤 한 달 정도 지나 선임이 탈영하는 사례가 발생해 폭행·가혹행위 분위기가 사그라들었다. 내 친구의 경우 일상적으로 폭행이 있었던 부대에서 근무했는데 이른바 '내리갈굼'을 당하다가 주먹으로 맞아 턱뼈가 부러졌다. 멀리서 달려오라고 한 뒤, 선임이 가슴을 때리려고 했는데 잘못해서 턱을 때린 것이다.
- 군대 내에서의 폭력, 어떤 의미인가.포 : 봐도 모른 척 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에도 44명의 병사가 윤 일병이 폭행당하는 걸 봤다고 하지 않나.
보 : 간부들도 아주 큰일이 아닌 이상 쉬쉬하는 경우가 많다. 이번 사건에도 하사 한 명이 엮여있는데, 내 군생활에 비춰봤을 때 심지어 은근히 폭행을 조장하는 경우도 있다. 병장에게 와서 '너네 요새 빠졌더라?', '야, ○○○ 일병 안 되겠던데' 하는 식의 말을 하고 간다.
행 : 폭행이 일어나면 '잘못을 했으니 맞겠지'하는 이미지가 박혀 있는 것 같다.
"평소엔 소홀하다가 사건만 터지면 '빡센' 인권교육"- 군대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졌나.포 : 정기적으로 '마음의 편지'를 썼다.
행 : 지휘관에게 직접 찾아가거나 화장실에 있는 '소리함'에 몰래 쪽지를 넣을 수 있었다.
- 이러한 것들이 수월했나. 혹은 익명성이 보장됐나.포 : 전혀 안 된다.
행 : 내가 근무한 부대의 경우 마음의 편지를 병사들이 종합해 지휘관에게 보고했는데 이러면 마음의 편지에 이름을 적지 않더라도 대충 누가 썼는지 가닥이 잡힌다. 간부가 직접 관리해도 마찬가지다.
- 만약 공개가 되면 어떤 분위기가 조성되나.보 : 해병대에는 기수열외라고 하는 게 있다. 아예 왕따가 된다. 답이 없다. 그냥 전역할 때까지 그렇게 지낸다.
- 이후 조치는 어떤 식인가.행 : 여러모로 복잡하다. 이런저런 교육을 시작하고, 갑자기 상담을 하고, 생활관도 바뀌고. 이렇다보니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일반 회사면 그만 둬버리고 말지, 군대는 그럴 수도 없다.
포 : 이번에도 병사 인권교육이랍시고 엄청 굴릴 거다. 사실 인권교육, 정기적인 상담 같은 건 평소에도 계속 해야 하는 거다. 평소에 안 하거나, 대충하면서 이럴 때만 '빡세게' 하니 병사들이 인권교육, 상담을 뭐라 생각하겠나. '꼰지른 놈 때문에 이게 웬 개고생'이란 이미지가 박히는 것이다.
- 최근 보도에 따르면 폭행, 가혹행위로 인한 사망 사실이 당시 국방장관이었던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도 보고가 됐다고 한다.보 : 4월 7일에 윤 일병이 숨졌다. 그리고 8일 국방장관이 '중요사건'으로 보고를 받았다. 국방장관은 '전군 부대정밀진단'을 지시했고 군은 이를 11~28일동안 진행됐다. 어쨌든 윤 일병 사건의 진실은 이 과정에서 어느 정도 밝혀졌을 거라 본다. 물론 원칙적으로는 국방장관 보고 전에 다 밝혀졌어야 맞다. 어쨌든 우리가 이 사건을 알게된 건 얼마 안 됐다. 4월에 발생한 이런 엄청난 사건이 8월이 다 돼서 알려진다? 그것도 인권단체의 고발 때문에? 이게 군대다.
포 : 국방장관이 알아도 이 지경인데 어느 병사가 '나 맞았어요'하고 말하겠나.
"이러다가 군 해체하자고 할라"- 군대의 신뢰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다. 포 : 군 특성상 닫힌 공간 아닌가. 하지만 닫아야 할 영역과 그렇지 않은 영역이 있다고 본다. 상식적인 것 아닌가. 군 기밀사항은 닫아야 하는 게 당연하고, 이번 사건과 같이 부조리에 의해 죽고, 다치는 건 왜 그랬는지 공개하고, 열어야 한다.
행 : 행정병을 하다보면 각종 사건사고를 접하게 되는데 군에서 이를 처리하는 걸 보면 '어떻게 하면 윗선에 안 알려질까', '어떻게 하면 감출까' 고민한다. 사안에 따라 다르지만 이러한 폭행 사건은 덮어놓고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 : 사실 간부 입장에서 보면 사건·사고가 알려지면 좋을 게 하나 없다. 진급이 걸린 문제 아닌가.
- 문제해결을 위한 방법은.행 : 답이 없다. 아까 군대가 열려야 한다고 말은 하긴 했는데 그럴 가능성이 없다.
보 : 윤 일병의 인척이 국가인권위원회에도 알렸다고 하지 않나. 그런데 제대로 된 조사가 안 이뤄졌다고 한다. 이번 사건 이후 군대 내부는 물론 외부의 군인권기구나, 외국의 군 옴부즈만과 같은 사례가 보도되고 있는데, 대한민국에서 이게 적용될 수 있을지 상상이 안 된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보 : 국가안보를 중시한다는 정권 아래에서 자꾸 군 문제가 터지니 '안보'라는 말이 허상같다. 부대관리도 못하는데 나라는 지킬 수 있을지 걱정이다. 북한 무인기 청와대 상공 촬영, 노크귀순, 여군 대위 자살, 임 병장 총기난사 등 군 문제가 계속 불거지고 있다.
행 : 이러다가 군대를 해체하자는 이야기까지 나올 것 같다.
포 : MBC <진짜사나이> 같은 프로그램도 각성해야 한다. 물론 예능이니 그럴 순 없겠지만 '리얼입대 프로젝트'라고 하면서 군대의 어두운 모습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건 지나친 미화다. 국방부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투명한 이미지를 얻으려는 것 같은데 미화는 감추는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