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복이 지나면서 아침저녁 부는 바람결이 한결 선선해졌다. 대낮 뙤약볕은 여전하여 따가울 정도지만, 부드러워진 바람은 계절이 바뀌고 있음을 속삭이고 있다. 꼭 이맘쯤이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12년 전, 복날이라고 복달임한다며 시끌벅적하던 식당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사무실로 돌아왔을 때, 오른손에 하얀 붕대를 칭칭 감고 사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그녀는 40대 중반의 중국동포 이춘란(가명)씨였다.
그녀는 지난 초복 때 식당에서 일을 하다 오른손가락 검지와 중지를 잃었다고 했다. 워낙 많은 손님이 들락거렸던 그날, 주방엔 식기를 세척하기 위해 일당 일을 하는 아주머니들이 네 명이나 있었고, 이씨는 손님들에게 뜨거운 돌솥 삼계탕을 주방에서부터 혼자 날랐다고 한다. 주방과 홀을 바삐 오가며 식탁을 치우고, 정리하는 일까지 도맡아야 했던 이씨는 손님들이 많이 들자, 평소와 달리 그릇을 치울 때는 쟁반에 돌솥을 겹겹이 쌓아 올려 나르기 시작했다.
평소 같으면 손님이 뜸했을 시간까지 손님들은 미어 터졌고, 그럴수록 이씨는 달리다시피해야 했다. 사고는 한 무리의 손님들이 나가고 난 후, 빈 그릇을 쟁반 수북이 쌓아 들고 주방으로 뛰어 들어갈 때 일어났다.
일당제 일을 하러 왔던 아주머니 중 한 분이 주방 벽 가까이 놓여있던 선풍기를 그릇을 씻는 곳으로 옮겨놓으면서 바닥에 깔려 있던 전선이 들리게 된 것. 이 사실을 모른 이씨가 급하게 움직이다 전선에 걸려 넘어진 것이었다. 주방에 있던 선풍기는 날개가 철재로 돼 있는데다, 지름이 30인치인 공업용 선풍기였다. 그 큰 선풍기가 넘어지는 이씨를 덮쳤고, 이씨는 무의식적으로 선풍기를 막는다고 손을 내밀었다가 두 손가락을 싹둑 잘렸다.
손가락이 잘리고 피를 뚝뚝 흘리며 주방에 넘어진 이씨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일당 일을 하던 아주머니들도 손발만 벌벌 떨며 이씨를 돕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그 순간 주방에서 무슨 일이 있다고 여긴 식당 주인이 뛰어들었다. 나중에 식당 주인에게 들은 바로는, 이씨는 손가락이 잘린 손을 꽉 움켜쥐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장님, 남의 집 영업장에서 피 흘려서 죄송해요."사장은 다친 사람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며 이씨를 다독인 다음, 재빠르게 잘린 손가락을 찾아 찬 물에 씻고, 이씨를 자신의 차에 태웠다.
다행히 병원에서는 접합수술이 잘 되었다. 그래도 이씨는 병원비 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원비를 걱정하는 이씨에게 식당 주인은 병원비는 본인이 부담할 것이고, 일 못하는 동안 보름치 일당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렇게 모든 일이 원망 없이 마무리될 줄 알았다.
보름간의 입원 후에 퇴원하던 날, 의사는 이씨에게 앞으로 한 달 동안 통원 치료를 할 것과 치료가 다 끝나도 손가락이 구부려지지 않는 굴절 장애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했다. 두 손가락 모두 선풍기 날개에 잘렸다가 접합한 곳인 두 번째 관절부위 연골이 없어져서 모양은 크게 이상 없지만, 구부릴 수 없는 상태가 돼 버렸다는 것이었다.
퇴원 후에 며칠을 눈물로 보내던 이씨는 "이 나이에 병신이 되어야 하느냐"며 이주노동자쉼터를 찾았다. 사고 경위와 사고 후 처리 과정 등에 대해 들으면서 '접시 물에도 빠져 죽는다'는 말이 있듯이, 사고란 것이 전혀 예기치 않은 곳에서, 상상을 초월해서 일어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넘은 어른이 선풍기에 손가락을 잘렸다고 하면 쉽게 믿겠는가마는, 그 사고로 평생 손가락에 장애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 사람을 앞에 두고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찌됐든 이씨는 자신이 평생 안고 살아야 할 장애로 인해 상심해 있던 터라, 그 부분에 대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우선 식당 주인에게 전화를 해 봤다. 식장 주인은 이씨가 퇴원한 사실을 알고 있었고, 치료가 잘 됐는지를 물었다.
치료는 잘 됐지만, 굴절 운동 장애를 안고 살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산재신청을 해 줄 것을 부탁했다. 그러자 식당 주인은 "우리 같은 데서 무슨 사고가 있겠다고 그런 보험 들었겠어요? 해 주면 우리도 맘이 편하고 좋죠"라며 산재 가입을 하지 않아 어렵다는 답변을 했다. 그에 대해 산재는 다른 보험과 달리 사후에도 처리가 가능하다는 사실과 함께, 산재 처리를 할 경우 어찌어찌해야 한다는 사실을 전하고 전화를 끊었다.
며칠 후 이씨가 다시 찾아왔다. 붕대를 감지 않은 손엔 수박 한 통이 들어있었다. 식당 주인이 산재신청을 해 주기로 했고, 병원에서는 장애보상을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말과 함께, 이씨는 "굴절장애라는 게, 운동장애라 열심히 물리치료하면 굴절 정도가 완화된대요. 여러 가지로 고마워요"라며 눈물을 글썽거렸다.
남의 눈치를 보며 일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사고를 당하고도 "사장님, 남의 집 영업장에서 피 흘려서 죄송해요"라고 해야 했던 이씨는 그 후, 남편이 한국에 오면서 심신의 안정을 찾았다.
그 사건 이후 나는 선풍기에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겼다. 특히 식당에서 종종 에어컨 앞에 놓고 바람을 날리는 공업용 선풍기를 볼 때면 한동안 이씨의 울먹거리던 얼굴이 떠올라 가슴아파하곤 했었다. 그래도 바람결이 바뀔 때면 수박 들고 환한 웃음으로 찾아왔던 이씨의 얼굴이 더 떠오르기도 하는 걸 보면, 세월이 약인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