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어요!" 7월 28일 수원지방법원 안산지원 401호 법정에 선 필리핀인 가수 알렉스(여)는 4월 16일 오전 세월호 조타실에 막 도착했을 상황을 떠올리며 "그때 놀랐다"고 말했다.
알렉스의 눈에 비친 선원들은 당황하고 혼란스러워 했으며, 허둥지둥 댔다. 그는 고향의 자녀들을 떠올리며 살아야겠다는 생각만 하던 자신과 승객들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선원들의 모습이 다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남편(임마누엘)과 함께 세월호에서 노래를 하던 그는 사고 당시 조타실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인물이다. 알렉스 부부는 사고 당시 오전 9시 45분쯤 해경123정이 세월호 좌현 갑판에 닿았을 때 선원들과 함께 조타실을 빠져나왔다.
그날 그 시각 세월호 조타실 그날 5층 선실에서 자고 있던 알렉스 부부는 배가 기울어진 모습을 보고 침몰을 직감했다. 부부는 서둘러 조타실로 향했다. 예전에 양대홍 사무장(사망)으로부터 그곳에 비상구가 있다고 들은 기억이 떠올랐다. 이들은 그 비상구를 이용하면 손쉽게 선체 밖으로 탈출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알렉스는 "본능적으로" 든 생각이었다고 했다.
복도로 나온 두 사람은 맞은편에 넘어져있는 승무원 정현선(사망)씨를 봤다. 정씨는 자신의 숙소 근처에 있다가 배가 기울어지면서 미끄러져 다리를 다친 듯했다. 하지만 그는 알렉스 부부에게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부부는 다시 몸을 움직였다. 이들은 조타실 근처에서 양대홍 사무장도 만났다. 알렉스의 이름을 부른 뒤 양 사무장은 "괜찮아 괜찮아, 해경이 올 거야"라며 부부를 안심시키려 했다고 한다. 그 뒤 양 사무장은 어딘가로 향했다. 알렉스는 법정에서 "(승객들이 있는) 밑으로 내려가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양 사무장과 헤어진 뒤 조타실 뒤편 출입문에 다다른 부부는 깜짝 놀랐다. 기관부를 제외한 모든 선원이 그곳에 모여 있었다.
해도대(바다 지도) 근처에서 파이프를 잡고 있던 이준석 선장은 몸을 떨고 있었다고 알렉스는 증언했다. 그는 "선장은 매우 긴장한 상태로 파이프를 잡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고 있었고 다른 선원들도 비슷했다, 패닉상태였다"며 "SOS(구조요청) 교신 말고는 (선내 방송이나 퇴선 명령 등을) 특별히 들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당시 김아무개 2등 항해사가 선장에게 여러 번 어떻게 하냐고 물었지만, 이 선장은 별 다른 답이 없었다고 한다.
"선장, 제가 입은 걸 보고서야 구명조끼 지시" 알렉스는 "선장은 제가 구명조끼 입은 걸 보고서야 '승객들에게 구명조끼를 입히라'고 했다"고 진술했다. 자신이 너무 답답해 남편에게 "라이프보트(구명정)"라고 말했더니 이 선장이 김 항해사에게 '라이프보트' 지시를 내렸다고도 했다. 그런데 김 항해사는 라이프보트가 작동하지 않는다고 했다는 것이 알렉스의 증언이다.
그는 "그 얘기를 듣고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 큰 소리로 기도했다"고 말했다. 알렉스는 "선원들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강했고, 그저 구조되기만을 기다렸다"고 했다. '선장이 승객들을 탈출시키라고 하는 모습을 본 적 있냐'는 검사의 질문에는 짧지만 단호하게 "없다(No)"라고 답했다. 그는 "선원들이 제 의무를 다하길 바랐지만, 그들은 스스로를 보호하는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법정에서 한 변호인은 '김 항해사가 여러 번 무슨 조치를 하냐고 물었는데 이 선장이 대답을 못했다'는 그의 증언을 두고 "왜 선장이 대답을 못한 것 같냐"고 물었다. 그러자 알렉스는 "저도 묻고 싶다"며 이렇게 말했다.
"저는 그에게 더 많은 걸 원했어요. 선장이었으니까." 부부 중에는 알렉스가 남편 임마누엘보다 한국어에 능숙했고, 그는 한국어로 말은 잘 못해도 듣기는 약간 가능했다. 이 때문에 7월 28일 법정에는 부부가 모두 증인으로 나왔지만, 신문은 알렉스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증인 신문은 통역을 사이에 두고 한국어와 영어로 진행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