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들은 죽어서도 이승을 떠나지 못한다. 반면에 어떤 사람들은 죽은 이후에 다시 살아난다. 더욱 강해진 정신력과 육체적 능력을 가지고.
물론 이것은 소설 속의 이야기다. 죽은 뒤에 다시 살아난 인간. 이런 얘기를 들으면 좀비나 뱀파이어가 떠오를 것이다. 죽여도 죽여도 다시 살아나는 존재. 죽이기 위해서는 특별한 방법을 사용해야만 하고, 인간다운 감정을 잃어버린 존재.
미국 작가 에이미 틴터러는 자신의 2013년 작품 <리부트>에서 좀더 특별하게 되살아난 존재를 만들어 냈다. 그렇게 되살아난 사람을 가리켜서 '리부트(Reboot)'라고 부른다. 작품의 무대는 미래의 텍사스. KDH라는 치명적인 바이러스가 세계를 휩쓸어서 인류는 멸망의 위기에 놓여있다.
바이러스의 작용으로 되살아난 아이들이 KDH 바이러스에 감염된 적이 있던 사람들 중 일부는 죽은 이후에 다시 살아난다. 대부분 20세 미만의 어린 아이들이다. 이렇게 리부트가 될 때 시체는 사망 전보다 더 굳세고 강력한 육체로 되살아난다.
동시에 냉혹해지고 감정을 잃는다. '생전 모습의 악한 복제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리부트가 되느니 차라리 영원히 잠드는 것을 택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아무튼 이 리부트에게 중요한 것은 죽고나서 살아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길수록 인간으로서의 감정이 더많이 없어지고 육체는 더 강인해진다.
<리부트>의 주인공 렌은 17세 소녀로 5년 전에 리부트가 되었다. 렌이 죽고나서 다시 살아나기까지 걸린 시간은 178분. 그래서 그녀는 '렌178' 이라는 번호로 불린다. 그녀보다 높은 번호를 가진 리부트는 없다. 렌에게 남아있도 인간성도 없다. 그녀의 육체적인 능력은 최상이다.
그녀는 '인발진(인류발전진흥회)'이라는 기관에서 군인으로 일하며 새로 들어온 신입 리부트들을 교육하고 있다. 말이 좋아서 군인이지 사실상 노예나 다름없다. 명령을 거부하면 언제 죽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갓 리부트가 된 '캘럼22'라는 소년의 교육을 담당하게 된다. 캘럼은 처음부터 금발의 미녀인 렌에게 일종의 '작업'을 걸기 시작하고 렌은 여기에 혼란을 느낀다. 자신에게는 더 이상 감정이란게 없는 줄 알았는데.
색다른 디스토피아에서의 인생과 사랑작품을 읽는 동안, 영화 <유니버설 솔저>가 떠올랐다. 이 영화에서는 미국 국방성이 사망한 군인을 재생시킨다. 그리고 더욱 강인해진 육체적 능력을 가진 그들을 대테러작전에 투입한다. <리부트>의 배경도 어찌보면 이와 비슷하다. 단지 저절로 되살아났다는 것을 제외하면.
이렇게 되살아난 사람들이 있다면 정부에서는 어떻게든 통제하려고 할 것이다. 그 방법 중 하나는 일반인들이 하기 싫어하는, 또는 하지 못하는 일을 강제하는 것이다. 그를 위해서 훈련도 시킬테고. 통제대상들이 고분고분 따른다면 별 문제가 없다. 하지만 어느 시점에 그들이 각성하기 시작한다면, 그래서 자신들이 부당한 대접을 받고 있다고 자각하기 시작하면 어떤 일이 발생할까?
소설이건 영화건, SF작품에서 묘사하는 미래는 하나같이 암울한 디스토피아다. 화려했던 도시는 폐허로 변하고 사람들은 질병과 식량부족으로 죽어 나간다. 하늘에는 늘 우중충한 잿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고, 공기와 물에도 온갖 병균이 퍼져있는 것 같다.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는 이유도 다양하다. 질병의 확산, 자연재해 또는 전쟁.
어떤 사람들은 죽은 후에 다시 살아나지만, 이런 환경이라면 다시 살아나는 것이 그다지 반갑지는 않을 것 같다. <리부트>에서는 그래도 되살아난 사람들이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한다. 리부트의 수명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다행스러운 것은 이들이 10대 소년소녀들이라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많은 시간이 있다. 시간이 희망이라면, 희망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리부트> 1, 2. 에이미 틴터러 지음 / 박효정 옮김. 황금가지 펴냄.